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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문재인 정부 대신 쓰는 경제 반성문

중앙일보 2019.09.25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는 그간 고용참사에 대해 “체질 개선에 따른 고통”이라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침체의 수렁이 깊어지자 “경제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하더니 최근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실은 따로 있는 8월 취업자 수 증가를 근거로 내세우면서다.
 

“우리 경제 올바른 방향 간다”지만
한국경제 깊은 침체 수렁 빠져들어
버려진 자식 맞다면 각자도생 처지

지금 한국 경제의 처지를 직시한다면 이런 말이 나올 때가 아니다. 임기의 반환점이 임박한 만큼 정책 성과를 점검하고 오류에 대해선 과감하게 반성해야 할 때다. 하지만 쇠고집처럼 ‘마이웨이’다. 그렇다면 언론이 대신 반성문을 쓸 수밖에 없다. 언론의 책무인 정책 비판과 견제가 충분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다.
 
우선 고용에 대한 반성이다. 지난달 신규 취업자 45만2000명 중 86.5%인 39만1000명은 60세 이상의 노인 일자리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취업자 수가 3000명 증가에 그친 데 따른 기저효과에다 초단기 노인알바가 최근 일자리 성과의 실체라는 얘기다. 고령화에 맞춰 노인 일자리는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지만 세금을 퍼부어 만든 노인알바로는 한국 경제의 추락을 막지 못한다.
 
국가의 허리인 3040 세대의 일자리가 계속 줄어도 “일자리 정책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더구나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 여파까지 겹쳐 저소득층 근로소득이 6분기 연속 줄어도 “우리가 (재정을 투입하고) 노력해 그나마 충격을 완화했다”고 공치사하는 건 국민 기망극에 가깝다.
 
한 마디로 이 정부 경제정책(J노믹스)은 총체적 실패에 빠졌다. 소득주도 성장은 경제 활력을 떨어뜨렸고, 공정경제는 경제의 주력인 대기업의 목을 조였고, 혁신성장은 승차공유조차 제대로 못 하는 파탄 상태다. 무엇보다 소득주도 성장의 폐해가 막심하다. 일자리 창출에 3년간 77조원을 투입했지만 노인알바만 늘고 청년은 취업빙하기에 갇혔다. 특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중산층 비중을 50%대로 떨어뜨렸다. 소득 하위 20% 국민은 분배쇼크까지 맞아 이제 희망과 의욕도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정책 책임자들은 그래도 ‘마이웨이’다. 재분배를 확대해 격차를 좁혀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사상누각의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성장률이 3년 내리 2%대로 주저앉고 규제에 짓눌린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와 보호무역 확대로 수출이 둔화하는 내리막길 경제구조에서 무슨 수로 재원을 마련하겠나.
 
그러자 역대 정부가 지켜왔던 국가부채 비율 40%를 흔들고 있다. 문 대통령이 “40%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022년에는 국가채무비율이 45%까지 올라갈지 모른다”며 재정 확대의 불가피성을 예고했다. 한국은 미국·일본처럼 돈을 찍어댈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까지 겹쳐 확장적 재정은 나라의 곳간을 허무는 행위다. 이 길로 가면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라 쇠퇴와 추락의 길로 가기 십상이다.
 
부동산 정책도 민망하다. 융단폭격식 가격통제로 정상적 거래조차 막히고 분양가 상한제까지 동원되면서 공급이 줄자 집값 뜀박질이 심해지고 있다. 거래 실종으로 이사·도배·수리 등 서민계층의 생계는 벼랑 끝에 몰렸다. 이런 정책실험에 앞장섰던 청와대 참모들은 1년 만에 집값이 5억원 안팎씩 오르고 재개발지구 딱지를 사들여 부자가 됐다. 국민의 염장을 지른 일이다.
 
탈원전 역시 사과드린다. 원전을 줄였더니 미세먼지가 악화하고 원전 수출이 삐걱대면서 원전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에너지 기업들은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다. 이 정부 임기에는 “안심하라”고 했지만, 결국 전기요금 폭등이 불가피한 점도 송구하다.  
 
정부가 기어코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고 박용만 상공회의소 회장 말처럼 “경제가 버려진 자식”이라면 결국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반성도 각자도생도 국민 몫이라는 게 서글프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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