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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사이트] 아베 물러나도 대한 강경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

중앙일보 2019.09.25 00:03 종합 26면 지면보기

일본의 9월 개각과 아베의 선택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1일 개각을 단행한 뒤 새 내각 각료들과 함께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도쿄 EPA=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1일 개각을 단행한 뒤 새 내각 각료들과 함께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도쿄 EPA=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계속된 선거 승리로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다. 아베의 선거 전략은 고이즈미 준이지로(小泉純一郞)총리 이후 자민당이 무당파의 공략에 매달리는 것과는 달랐다. 아베노믹스와 우파적 주장을 통해 기존의 자민당 조직표를 결집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자민당내 온건파 인사를 포섭하여 당내 지지기반을 안정화하는데 주력하였다. 아베야말로 우파의 상징이지만, 인사에서는 포섭적인 인사로 장기집권을 이끌어내었다.  
  

4선 도전 않고 킹메이커로 남을 듯
임기내 개헌은 실현 가능성 낮아
후계 경쟁은 기시다와 스가 유력
혐한 분위기 득세로 친한파 퇴조

아베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민당 간사장이다. 아베는 자신의 잠재적 라이벌을 간사장에 기용함으로써 자민당 분열을 막을 수 있었다. 지방의 지지를 얻고 있어 아베와 경쟁했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리버럴이면서 아베의 신념과는 맞지 않았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楨一), 노련한 파벌 정치가로서 반(反)아베로 돌아설 수 있었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를 간사장에 기용함으로써 아베는 경쟁자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아베는 2015년의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무투표 재선에 이어 3선까지 무난히 할 수 있었다.
 
지난 11일 개각과 자민당 인선이 끝나면서 일본정국은 ‘포스트 아베’를 둘러싼 경쟁에 들어갔다. 9월 개각은 아베가 장기집권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를 점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포스트 아베의 행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아베 총리는 9월 개각에서 헌법개정의 길을 닦는 대신 개헌은 차기 정권의 과제로 남겨두면서 자신은 정계 킹메이커로 남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개각과 함께 시작된 포스트 아베 경쟁
 
일본에서는 아베가 행한 9월 개각을 ‘우파 친구 내각’이라고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아베가 정국 안정의 길을 택했다고 평가한다. 즉 아베는 임기내 헌법개정을 추구하기 보다는 집권 후반기를 위해 자민당내 기반을 다졌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 예로 아베는 인선에서 빠진 정치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다음 개각에 임명할 수 있다고 내비치면서 레임덕 방지를 위해 노력하였다는 후문이다.
 
일본 정계에서는 아직도 아베가 4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베 4선 주장은 7월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한 이후 니카이 간사장이 "많은 국민들이 기대를 하고 있다”고 부추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 본인이 4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더 이상은 확산되지 않았다. 아베는 4선을 하더라도 자신의 최대 관심사인 헌법 개정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최근 아베 총리가 “헌법개정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자민당 정무조사회 회장)시대에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한 발언에서 아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숙원인 개헌은 차기 총리에게 넘길듯
 
기시다(左), 스가(右)

기시다(左), 스가(右)

일본 정치권에서는 “아베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여 퇴진할 수 있다”는 말이 떠돈다. 아베의 최우선과제는 헌법개정이고 정권 말기까지 헌법 개정의 미련을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헌법개정에 소극적인 상황에서는 아베의 의도대로 헌법개정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베가 헌법 9조를 제외한 헌법개정을 시도하더라도 아베 임기중에는 국민투표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아베는 헌법 개정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번 개각에서 자신의 후계자 구도를 명확히 하려고 했다. 아베는 “1년 후에는 기시다를 간사장으로 할 것이다”고 말하면서 ‘기시다 띄우기’에 열심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스가 관방장관은 ‘레이와’ 연호 발표 후 지명도가 급격히 상승을 하면서 포스트 아베 후보자 1위가 되었다.
 
자민당내 온건파인 기시다를 후계자로 지목하는 것에는 아베의 헌법개정에 대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 기시다와 같은 자민당내 비둘기파가 헌법개정에 적극적이어야 헌법개정이 실현될 수 있다고 아베는 판단한 것이다. 2017년 아베가 기시다를 정무조사회 회장에 기용한 것도 자위대를 명기한 자민당 헌법개정안을 확정시키기 위해서라고 전해진다. 반면 스가 관방장관은 아베 정책을 계승하여 자신이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번 자민당 인사에서 니카이 간사장을 유임시킨 것도 자민당내 역학관계가 변화되면 기시다의 후계자 구도가 뒤틀릴 수 있다는 아베의 우려가 작용했다는 소문이다.
 
아베의 의도대로 스가나 기시다가 ‘포스트 아베’가 될지는 미지수이다. 전후 최장기 집권을 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총리의 사례를 보더라도 변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사토 총리는 자신의 후계자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를 염두에 두었지만 결국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처럼 아베 총리가 자민당내 지지기반을 유지한다면 아베의 의도대로 후계자가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아베 파벌이 가장 큰 파벌이며, 아베의 정치적 의향을 거슬려서는 총리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민당 온건파도 한국에는 강경론
 
문제는 포스트 아베가 누가 되더라도 대한(對韓)정책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최근 한·일관계가 경색되면서 아베는 한국을 배제한 동북아 전략을 노골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즉 ‘신뢰할 수 없는 한국’을 배제하면서 동북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여야 한다는 아베의 주장이 확연히 강화되었다. 현재 아베 정권은 미국을 설득하여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인도태평양전략에 열심이다. 여기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데는 소극적이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는 적극적이다.  
 
중·일관계의 개선은 미·일관계 악화에 대한 보험의 성격과 함께 한국을 견제하는 카드로 고려한 것이다. 특히 북한과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 제시는 남북을 이간질하며 이익을 취해온 전통적 투코리아(Two Korea) 정책의 전환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아베의 강경자세가 일본 국민들로 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본 정치권의 대한 강경 흐름은 자민당내 온건파라고 해도 아베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 예로 고노 타로(河野太郞)방위대신(전 외무대신)은 한국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가였다. 그러나 외무대신 시절의 발언을 보면 아베의 우파적인 생각을 그대로 대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반한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다. 일본 정치권의 친한파들은 더 이상 한국문제에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혐한 분위기를 부추기기조차 한다. ‘한국의 친구’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일본 국민들의 아베 지지는 장기 침체로 인한 경기 회복 열망, 국제관계에 대한 위기의식, 그리고 한·중의 역사인식에 대한 반발과 관련된 일본 사회의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 한국에서 포스트 아베는 아베와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일본 사회의 변화를 간과한 것이다. 현재 일본 정치권은 국민의 혐한 분위기 확대로 친한파는 사라지고 아베의 정책에 동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베의 지지율이 57%로 치솟는 상황에서 포스트 아베도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어졌다. 지금처럼 일본에서 한국 불신이 정착된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과연 한·일관계가 정상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 강한 우려가 있다.
 
포스트 아베에 기대를 건다고 해도 한·일관계가 개선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부터라도 아베 정권과 대화 통로를 만들어 서로의 불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이해시켜야 한다. 지금의 상대가 최악이라고 피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냉정한 전략이 필요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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