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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에서 한걸음 물러나…다시 빛나는 브래드 피트

중앙일보 2019.09.25 00:02 종합 23면 지면보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스타의 스턴트 배우 역으로 출연한 브래드 피트.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스타의 스턴트 배우 역으로 출연한 브래드 피트.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나는 늘 남의 시선으로 나를 의식하며 웃는다. 나의 시선은 언제나 출구를 향해 있다.”
 

이혼 아픔 딛고 연이어 신작 개봉
‘애드 아스트라’에선 고독한 우주인
‘원스 어폰 …’에선 스타의 대역 연기
“나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19일 개봉한 SF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고독한 우주비행사 로이 맥브라이드의 독백은 평생 스타로 살아온 제작자 겸 주연 배우 브래드 피트(56)의 내밀한 고백처럼 들린다.
 
제작을 겸한 SF ‘애드 아스트라’에선 50대가 된 그의 주름진 얼굴이 자연스레 드러난다.[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작을 겸한 SF ‘애드 아스트라’에선 50대가 된 그의 주름진 얼굴이 자연스레 드러난다.[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할리우드 미남 스타의 대명사 브래드 피트의 낯선 모습을 담은 영화 두 편이 잇달아 찾아온다. 20년 지기 친구 제임스 그레이 감독과 함께한 ‘애드 아스트라’에서 그는 실제 삶의 고뇌를 실어냈다. 이어 25일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하 원스…)’에선 아예 스타 뒤에 한발 물러선 스턴트 대역 역에 나섰다. 1987년 데뷔 이래 그동안 최정상 배우로 살아온 그가 이런 ‘그림자’ 같은 역할을 맡아, 지금까지와는 다른 브래드 피트를 보여준다.
 
◆50대에도 탄탄한 근육·액션 실력= ‘원스…’는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영화다. 1969년 미국을 발칵 뒤집은 실존 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사건을 기상천외하게 비틀어 당대 할리우드 황금기에 경외를 바쳤다.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가상의 인물인 한물간 액션스타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랜 스턴트 대역이자 운전사·경호원·집사·친구이기도 한 클리프 부스 역을 맡았다.
 
각본을 겸한 타란티노 감독은 미국 연애 매체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서 “브래드의 캐릭터 클리프는 평생을 아낌없이 할리우드에 바쳤지만, 그 헌신이 대중에겐 잘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이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클리프가 젊은 시절 이소룡(한국계 미국 배우 마이크 모가 연기했다)과 촬영 막간 대련을 벌이고, 릭의 집 안테나를 고치기 위해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라 웃통을 벗을 때면 여전히 탄탄한 근육이 눈에 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의 첫 공동주연인 이 영화는 지난 7월 먼저 개봉한 북미에서 타란티노 영화 역대 첫 주말 최고 흥행성적(약 490억원)을 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그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오른쪽)와 처음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그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오른쪽)와 처음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실제 삶의 고통, 영화로 승화시켜=미국 오클라호마 시골, 트럭회사를 운영하는 집안의 맏아들로 자란 그는 무작정 LA로 간 뒤 스트립 쇼걸의 리무진 운전사부터 냉장고 배달, 단역까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스물여덟 살에 처음 세간에 주목받은 작품이 풋풋한 히치 하이커를 연기한 영화 ‘델마와 루이스’였다.
 
1991년 출세작 ‘델마와 루이스’에선 카우보이 청년을 연기했다. [사진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1991년 출세작 ‘델마와 루이스’에선 카우보이 청년을 연기했다. [사진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이제 출연작만 80편이 넘는 그는 2001년 영화사 플랜B를 설립하고 제작자로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첫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옥자’와 그해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거머쥔 퀴어 영화 ‘문라이트’를 바로 그가 제작했다. 직접 주연을 겸한 좀비물 ‘월드워Z’론 전세계 6000억원 넘는 흥행수입을 올렸다.
 
‘애드 아스트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레드카펫에 선 모습.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애드 아스트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레드카펫에 선 모습.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 중 ‘애드 아스트라’는 그에게 더욱 각별하다. 부인이자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의 이혼으로 힘겨워하던 시절 그를 다잡아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그는 올해에야 마무리된 이혼소송의 요인 중 하나가 음주 문제였다고 털어놨다. CNN 인터뷰에선 “이혼의 고통을 추스르기 힘들어 마약·술·넷플릭스·군것질까지 안 해본 게 없다”고도 했다. 2005년 액션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로 만난 두 사람은 여섯 자녀를 키우며 2014년 혼인신고 이전부터 10년 넘게 사실상 부부로 살았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우주비행사 로이는 16년 전 우주에서 실종된 아버지(토미 리 존스)를 찾아 태양계 끝으로 향한다. 죽을 고비를 넘긴 여정에서 영웅이라 믿었던 아버지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감춰왔던 감정, 연약한 상처들을 드러낸다. 다소 공허한 줄거리를 채우는 건 광활하고 아름다운 우주 풍광, 그리고 자신을 옥죄어온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며 섬세하게 변화하는 브래드 피트의 표정 그 자체다. 얼굴이 스펙터클인 셈이다.
 
“나는 항상 강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는데, 헛수고가 따로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 아이들, 자신을 위해 마음을 열려면 자기 안의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자기 의심과 연약함까지 부정하지 말고. 강점만 인정하려는 건 자신의 나머지 부분들을 부정하는 것과 똑같다.” 그의 말이다. 그가 삶에서 배운 것들은 그렇게 영화 속에 녹아들었다.
 
◆제작자 피트, 배우 명성 넘을까=배우로서 그는 최근 히어로물 ‘데드풀2’에서 투명인간으로 깜짝 출연할 만큼 흥미로운 시도에 거듭 뛰어들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부 다 정확히 안다고 생각하면 끝장”이란 지론대로 제작자로서 새로운 작품을 쉬지 않고 발굴하고 있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디파티드’,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 등이 잇따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으며 ‘제작자’ 브래드 피트가 ‘배우’로서의 그를  앞지르는 추세다. 다음 달엔 그가 제작한 티모시 샬라메 주연 사극 영화 ‘더 킹: 헨리 5세’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라틴어로 “고난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Per Aspera Ad Astra)”란 말의 줄임말 ‘애드 아스트라’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브래드 피트의 세계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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