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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기득권 아니다"는 386, 어쩌다 우리사회 꼰대가 됐나

중앙일보 2019.09.24 01:40
'386 세대유감' 저자 3인방(심나리·김정훈·김항기, 왼쪽부터) 인터뷰가 지난달 28일 중앙일보 9층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386 세대유감' 저자 3인방(심나리·김정훈·김항기, 왼쪽부터) 인터뷰가 지난달 28일 중앙일보 9층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때린 놈은 자기 손에 피를 보지 않고서는 남을 때린 줄도 모른다.”

[창간기획] 386의 나라 대한민국 ②

출간 두달여 만에 3쇄를 찍은 책『386 세대유감』는 386세대를 ‘때린 줄도 모르는 가해자’로 지칭한다. 입시지옥 개천에서 용은 멸종되고, 질 낮은 일자리의 비중이 늘어나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면 취업 낭인이 되기를 감수해야 하며, ‘노오력’만으로는 내집을 구할 수 없는 지금의 ‘헬조선’은 누구 탓인가. 이 책은 386세대에게 ‘미필적 고의’를 따진다. 지금의 50대의 얼굴에서 희생과 연대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시위를 벌이는 청년의 모습보단, 경제적 부와 권력을 사랑하는 ‘기득권 꼰대’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386 세대유감』의 세 저자 김정훈(1978년생·CBS 기자)·심나리(1981년생·서울대 박사과정)·김항기(1987년생·국회의원 비서관)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7월 출간된『386 세대유감』은 기득권 세력이 된 386세대를 비판한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웅진 지식하우스]

지난 7월 출간된『386 세대유감』은 기득권 세력이 된 386세대를 비판한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웅진 지식하우스]

 
- 386 세대는 어쩌다 우리사회의 ‘꼰대’가 되었나.
김정훈=386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장기집권’이다. 386세대는 20대 때부터 60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스피커를 쥐고 있다. ‘관성화된 헤게모니’의 상황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만들었고, 세상의 중심은 자신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랫세대가 보기에는 ‘이제 우리도 좀 주도권을 가져볼 때가 됐는데’하며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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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대’라는 소리를 듣고도 386은 끄떡없는 것 같다.
김정훈=명사(名士)들은 기꺼이 조롱을 감수한다. 일종의 너그러움인데, 386이 그런 너그러움을 갖게 된 것은 이 세상에 자신의 경쟁세대가 더 이상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보다 이전 세대는 이미 퇴출됐고, 아랫 세대는 존재감이 없다. 386세대를 견제할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조롱해라, 나는 어차피 버틸 거니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CBS 기자 김정훈 씨. 임현동 기자

CBS 기자 김정훈 씨. 임현동 기자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386이 늘지 않았나.
심나리=이전의 후배들은 위에서 찍어 누르면 순응을 했는데 이제 더 아랫세대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 386세대로부터 ‘90년대생들과 일하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다. 그들도 ‘후배들을 이해하지 않고서 지금 같은 자세를 계속하면 안 되겠구나’, ‘내 구미에 맞게 일을 시키고 이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얘네들을 잘 활용해야 겠구나’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의 386세대를 만든 사건 한 가지를 꼽는다면.
김항기=IMF사태의 충격이 386세대가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는 분기점이 됐다고 본다. 그 이전까지 386세대는 사회의 가치나 변화, 정의와 혁명 등의 담론을 주도했지만 여기서부터 ‘생활인’으로 변모한다. 입으로는 정의를 말하지만 몸으로는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환경이 조성됐고, 그 안에서 386은 주도적인 세대였다. IMF가 없었다면 386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
 
국회의원 비서관 김항기 씨. 임현동 기자

국회의원 비서관 김항기 씨. 임현동 기자

 
-386세대의 끈끈한 네트워크의 비결은 뭘까.
김항기=동년배들끼리의 사회문화적 자본을 쌓는 데 경제구조적 조건이 중요했다고 본다. 70년대 이후 세대로 내려갈수록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386세대는 성장률이 10%가 넘는 경제호황기를 누렸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경쟁자라는 생각보다는 나의 동료라는 인식이 조금 더 강했고, 연대감이 더 커질 수 있었다.
 
-머지않아 386이 60대가 된다. 그들의 정년 이후의 삶은 어떨까.
심나리=산업화 세대나 더 윗세대에서도 60대를 넘어 70대 이후에도 명예교수나 공공기관 감사를 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이야 그 수가 많지 않지만, 386이 686·786이 되어서 이를 답습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에 큰 부담이 될 수 있고, 아래세대의 저항을 부를 수 있다. 60대 이후의 삶을 맞는 이들에게 어떤 사회적 역할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서울대 박사과정 심나리 씨.임현동 기자

서울대 박사과정 심나리 씨.임현동 기자

 
-30·40대 정치신인의 탄생은 왜 요원한가.
심나리=과거에는 운동권이라는 우물에서 정치신인을 파 내는 식으로 발탁이 이뤄졌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나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각각 ‘DJ키즈’ ‘YS키즈’를 키웠다. 하지만 지금의 386세대는 후배세대를 키우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슨 기득권이냐’‘우리 세대에서 대통령이 안 나왔다’며 자신들은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반면 젊은이들은 정치혐오가 크다. 그들에게 정치권은 꿈을 갖고 능력을 키워 들어가 일해보고 싶은 희망찬 환경이 아니라 흙탕물이다.
 
-386세대 중에는 ‘밑으로 헤게모니를 넘긴다 한들, 받을 사람이 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김정훈=당연히 못 받는다. 386 이하의 세대는 시행착오의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386세대가 종신집권을 하다가 갑자기 물러나면 우리 사회는 권력의 진공상태가 돼 버린다. 그러니까 그 위기가 닥치기 전에, 다른 세대도 시행착오를 겪어볼 기회를 필요한 거다. 그 위기가 닥쳤을 때 논의하면 늦다. 지금 논의가 필요하다. 386세대만 살고 버릴 사회가 아니지 않은가.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