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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강경화·김현종 중 양자택일하라

중앙일보 2019.09.24 00:26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국제외교안보담당 에디터

김현기 국제외교안보담당 에디터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의 트위터 한 방에 날아간 직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내놓은 첫마디는 “전혀 놀랍지 않다”였다. 환하게 웃는 게 마치 앓는 이 빠진 듯 후련한 모습이었다. “그와 의견이 다른 적이 많았다. 그것은 사실이다”라고도 했다. 얼마나 기뻤을까. 1년 반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면초가 외교에, 내부는 감정싸움
둘 다 이쁘다고 붙잡아둘 상황 아냐
한쪽에 힘 실어 외교 혼선 차단해야

미 정부 고위관계자에게 들은 비화다. 때는 지난해 5월 초. 1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를 정하는 내부 회의. 싱가포르를 민 폼페이오 장관에 볼턴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싱가포르? 거긴 사실상 중국이 장악한 곳 아닌가. 왜 그런 곳에서 북한과 정상회담을 열어야 하느냐.” 폼페이오도 발끈했다. “지금 무슨 근거로 중국이 싱가포르를 장악했다고 말하는가. 바로 근거를 대 봐라.” 머뭇거리는 볼턴에 폼페이오는 마무리 펀치를 날렸다. “내가 볼 때 거긴 우리 CIA가 장악했다.”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은 늘 충돌했다. 스타일부터 달랐다. 볼턴은 ‘네’ 아니면 ‘아니오’(Yes or No)였다. 반면 폼페이오는 ‘넵’, 그리고 가끔 ‘넵, 그런데요…(Yes, but)’였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의 갈등은 정책이나 의사결정을 둘러싼 것이었다는 점이다. 견제의 작동이다.
 
이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웃지 못할 장면이 지난주 한국에서 벌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지난 4월 대통령 순방 때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 다퉜느냐”는 질문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F’로 시작하는 모욕적 단어를 쓰며 영어로 욕설했다는 이야기가 돌자 김 차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물러섰다. 자료 맞춤법 갖고 시비를 걸고, 또 그걸 동네방네 소문내는 저질 코미디극이 대한민국 외교 수뇌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가관이다.
 
먼저 강 장관. 아무리 김 차장과 스타일이 안 맞고 불만이 쌓여 있어도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말해선 안 됐다.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늘 활발한 토론을 한다”는 모범답안을 말했어야 했다. 적어도 외부에 불거지지 않게 해야 했다. 그게 현직 외교장관의 자세다. 폼페이오도 볼턴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건 볼턴이 그만둔 다음이었다.
 
서소문 포럼 9/24

서소문 포럼 9/24

다음은 김 차장. 아무리 강 장관 스타일이 답답하고, 또 자기 생각이 옳다는 신념이 강하다 해도 상식과 절차를 따라야 했다. 그게 차관급 국가안보실 2차장의 자세다. FTA 재협상을 성공시킨 장관급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에, 문 대통령 신임이 아무리 크다 자신한다 해도 그건 별개다. 만약 자신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이라도 옷을 벗으면 될 일이다.
 
다음은 정의용 실장. 아무리 김 차장 기세가 등등하고, 그런 귀찮은 문제에 엮이고 싶지 않다고 해도 부하의 언동을 방관하지 말았어야 했다. “실장 위에 차장”이란 우스개가 항간에 나돌아도 나 몰라라 하는 정 실장의 소극적 자세, 직무유기가 작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궁극적 책임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 두 사람의 마찰음이 경계수위를 넘어섰음을 일찍이 알고서도 방치했다. 물론 의견이 다르면 언쟁을 벌일 수 있다. 아니 정책과 관련한 논쟁은 치열할수록 좋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갈등이 정책에 대한 이견보다는 사소한 스타일 차이, 감정싸움, 관할 싸움이라는 게 핵심적 문제다. 이미 두 사람 문제는 서울에 있는 외국 외교관들의 비아냥 거리, 술안줏거리로 전락했다. 이미 우리 외교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북한 어디도 우군으로 확보하지 못한 ‘오면초가(五面楚歌) 상황에 빠져 있다. 당장 트럼프가 언제 동맹을 내팽개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외교 수뇌부란 사람들은 내부에서 티격태격 총질이나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비친다. 이런 적이 없었다.
 
문 대통령이 강경화와 김현종 중 한 사람을 택할 때가 왔다. 둘 다 이쁘다고 붙잡아둘 상황이 아니다. Yes or No의 김현종을 외교부 장관에 보내건, Yes, but (일각에선 Yes뿐이라고도 한다)의 강경화에 보다 큰 힘을 실어주건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만 가중된다. 제3의 인물을 택하는 옵션도 있다. 마침 볼턴 후임자가 한반도 문외한이라 미 국무부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이니만큼 카운터파트인 외교부에 힘을 실어줄 필요성도 생겼다.
 
조국도, 강경화·김현종도, 제발 놔줘야 할 사람은 빨리 놔주자.
 
김현기 국제외교안보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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