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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이 쓰라린 계급의 사회

중앙일보 2019.09.24 00:23 종합 32면 지면보기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논의가 있어 왔지만, 최근처럼 이것이 ‘국민 정서’로 부각된 적은 없다. 그것은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된 여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한국 사회의 계급의 문제가 드디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한 계급구조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고, 계급이동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사회가 되었다.
 

계급 문제 드디어 임계점에 도달
개천 아닌 금수저 집에서 용 나와
국회·검찰의 국민 신뢰는 바닥

계급의 유동성이 사라진 사회는 한 마디로 ‘미래’가 없는 사회, ‘희망’이 없는 사회다. 개천에서 (죽어라 공부해) 용이 나오던 시대는 갔다. 이제 용은 개천이 아니라 금수저 집안에서만 나온다. 개천이고 금수저 집안이고 모두 죽어라 공부해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의식이 지배적이므로, 노력에 비례해 성적을 올리던 시대는 지났다.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시 관련 ‘정보’이고, 특화되고 전문화된 입시 ‘기술’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누구나 알다시피)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
 
2016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들이 쓴 ‘학생 잠재력인가? 부모 경제력인가?’라는 공동 논문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논문에 따르면 강남과 강북 학생들이 지능·노력·유전 등 ‘잠재력’의 측면에서 서울대에 합격할 확률은 1.7배 차이가 났지만, 2014년 실제 서울대 합격률은 20배 이상 차이가 났다. 논문의 저자들은 “학생들의 대학 합격률 차이의 8~9할 이상이 타고난 잠재력 차이보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치장법(사교육, 선행학습, 특수고 진학)’ 차이로 설명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사실은 다른 통계들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매년 시행하는 ‘신입생 특성조사’ 자료에 의하면,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서울대생 중 부친의 직업이 농·축·수산업인 학생은 1~3%, 비숙련 노동자는 1~2%, 무직은 1~3%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부분 전문직 혹은 관리직의 자녀들이란 이야기다.
 
2017년 7월, 한 보수 언론사조차 “서울대 학생의 75% 이상이 월 소득 900만원 넘는 부유층 자녀”라고 보도하면서 헤드라인에 ‘그들만의 리그’라는 제목을 넣었다.
 
같은 해, 같은 달,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200대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 중 70%가 소득분배 상위 25% 출신이라고 한다. 국가 단위의 의료보험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엉터리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세계는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고,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위시한 주요 국가들의 불평등 지수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2015년 10월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20세 이상 성인 기준으로 자산 상위 10% 계층에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포함한 전체 부의 66%가 쏠려 있으며, 하위 50%가 가진 것은 전체 자산의 2%에 불과하다. 전체 자산의 2%를 놓고 하위 50%의 국민들이 아웅다웅 파이 싸움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아수라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무슨 통계가 더 필요한가.
 
이제 한국 사회도 부의 ‘원천적 분배’든 ‘재분배’든 어떤 식으로든 불평등의 문제를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태로운’ 국면에 와 있다. 다수 국민이 난공불락의 카스트 아래에서 신음하며 계급의 끝없는 재생산 트랙 안에서 희망과 미래가 없는 삶을 살 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를 넘었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그것은 인구대비 전체의 평균치일 뿐, 그것의 대부분을 상위계급의 소수가 차지하고 그리하여 전체 자산의 2%를 놓고 50%의 국민이 서로 싸워야 한다면, 그런 현실은 문자 그대로 헬(지옥) 아닌가.
 
문제는 제도권 안에서 ‘법적으로’ 이런 것을 해결해야 할 주체들의 능력과 그들에 대한 신뢰도다. 작년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실시한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 의하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2.0%, 국회는 1.8%에 지나지 않는다. 매해 여러 기관에서 국가사회기관의 신뢰도를 조사하는데, 최하위는 항상 국회와 검찰·경찰이 도맡아 차지한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어 다수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행복지수를 높여야 할 국회는 개혁은 커녕 파업상태에서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한다. 각종 이권과 권력의 생산 기계로 전락해온 검찰 역시 요지부동이다.
 
통계가 정확하다면, 국민의 98% 이상이 이런 국회와 검찰을 믿지 않는다. 이제 좀 변화할 때도 되지 않았나.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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