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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변신…대담하고 자유로웠다

중앙일보 2019.09.24 00:02 종합 25면 지면보기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2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지휘자로 첫 무대에 올랐다. 지휘와 협연을 동시에 하는 무대였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2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지휘자로 첫 무대에 올랐다. 지휘와 협연을 동시에 하는 무대였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22일 오후 경남 통영의 통영국제음악당. 피아니스트 조성진(25)이 오케스트라 앞에 섰다. 피아노 의자에 앉는 대신 선 채로 손을 들어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시작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스산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바로 조성진이 오케스트라에 사인을 주자 놀랄 정도의 크고 강렬한 소리가 나왔다. 대담하고 드라마틱한 조성진식 모차르트의 시작이었다.
 

통영국제음악당서 지휘자 데뷔
나흘간 ‘친구들’과 다채로운 공연
마지막 무대서 피아노 협연·지휘
“옛 콩쿠르 영상, 끔찍해 다시 못 봐”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동시에 맡은 조성진은 모차르트에서 서두르다시피 달려나갔고, 갑작스러운 작은 음과 드라마틱한 큰 소리까지 구사했다. 연주자로서 자유로움을 시험해보는 듯했다.
 
이날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지휘 데뷔 무대였다. 조성진은 피아노에 지휘를 곁들인 수준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색을 분명히 드러내며 용감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갔다. 공연 후 만난 조성진은 “지휘를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은 전혀 없지만 즐길 수 있었다. 아주 자유로웠다”며 “사실 내가 자유롭지 않았던 적은 쇼팽 콩쿠르 때뿐이었다”고 했다. 다음은 조성진과의 일문일답.
 
모차르트 협주곡 해석이 대담했다.
“이 곡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페라 ‘돈 조반니’처럼 드라마틱한 곡이다. 느리고 서정적인 2악장 중간 부분은 굉장히 활기 넘친다. 모든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이 곡이 제일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해왔다. 지난해에 낸 이 곡 녹음도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지난해 지휘자 야닉 네제 세갱과 녹음한 음반도 드라마틱했지만, 오늘 직접 지휘할 때는 더 다이내믹했다.
“7월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도 이 곡을 연주했는데 그때는 이런 식으로 하진 않았다. 이번에는 무대에서 에너지가 더 나왔다. 지휘는 할 수 있겠는데 리허설이 힘들었다.”
 
어떤 점에서 힘들었나.
“지휘 가르쳐주신 분이 계셨는데 단원들과 리허설에서 하고 싶은 얘기 10개 중 하나만 하라고 했다.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주 어려웠다.”
 
지휘자로서 또 어려웠던 점은.
“내 뜻을 전달하는 것 자체보다는, 내 뜻을 스스로 결정해야 되는 게 힘들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홀마다 달라서 힘들었는데 오케스트라는 더 힘들더라.” 
 
피아니스트는 무대 위에서 순간적 판단에 따라 본능적으로 연주하지만 지휘는 단원들과 약속하는 거다. 어떻게 보면 두 스타일이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독주회 때가 제일 자유롭다. 하지만 협연이나 실내악은 함께 뭔가 만들었다는 느낌이 있어 정말 좋다.”
 
이번 연주를 보며 느꼈는데, 전체적 스타일을 강조하면서 작은 부분에서의 완벽함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바빴다.(웃음) 지휘하느라, 피아노 치느라. 생각보단 쉽지 않았다. 이번엔 한번 통으로 보자 이런 생각을 했다. 베토벤은 이 곡을 너무나 좋아했다. 베토벤은 흔히 돌직구를 던지고, 그리고 중간이 없는 작곡가다. 서정적일 때는 아주 서정적이고 막 나갈 때는 정말 갑자기 폭풍처럼 몰아치고. 이것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독특한 해석이 낯선 청중도 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다. 공연장에 비평하러 오는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다. 음악을 즐기러 와야 한다. 티켓 사서 와서는 모차르트를 듣고 ‘아 너무 다르네, 클라라 하스킬의 모차르트 음반 듣는 게 낫겠다’ 하는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도 연주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곡인데 오늘 무대에서 음악적으론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생각해보면 저는 늘 자유로웠는데 쇼팽 콩쿠르 때만 자유롭지 못했다.”
 
어떤 뜻인가.
“자유롭다는 건 몸이 긴장이 덜 된다는 뜻이다. 심장 박동수와 호흡이 일정한 것, 그게 중요하다. 그런데 콩쿠르 때는 그렇지 못했다. 너무 떨리면 토할 정도로 떨린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4년 전 쇼팽 콩쿠르 때 정말 속이 안 좋았다. 그래서 그때 영상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어려운데도 잘했기 때문에?
“아니다. 어떻게 이걸 했지 너무 끔찍해서. 영상을 보면 쇼팽 전주곡 3번을 치는데 손에 땀이 났고 손도 더러워서 건반 군데군데에 검은색이 묻어 있었다. 쇼팽 장송 소나타를 치는데 눈 속에 땀이 고였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쇼팽 협주곡을 칠 때는 ‘이번엔 콩쿠르가 아니다’하면서 너무 신난다. 오늘도 그랬다.”
 
앞으로도 지휘를 더 할 계획인가.
“그건 모를 것 같다. 향후 2년간 일정이 모두 잡혀 있는데 여기에 지휘 계획은 없다.”
 
이번 통영 무대는 통영국제음악재단과 함께 나흘 동안 한 ‘조성진과 친구들’ 마지막 공연이었다. 첫날은 현악4중주단(벨체아 콰르텟)과 5중주, 둘째 날은 성악가(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독일 가곡, 셋째 날은 독주회 등 큰 프로젝트였다.
“2017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독주회를 했는데 공연장의 소리가 너무 좋았다. 울림이 적당하고 관객의 숫자에 따라 소리의 차이도 없고. 그래서 이번엔 꼭 해보고 싶었다.”
 
통영 일정을 마친 조성진은 24일 도쿄 산토리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내년에는 독일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곡 모두를 사흘에 연주한다. 그는 “유럽에서 연주해보면 저는 이제 초보일 뿐”이라며 “이제 모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영=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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