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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ATM과 에이즈 발병률이 관광경쟁력 세계 16강 이끌었다

중앙일보 2019.09.23 01:00

손민호의 레저터치 

세계경제포럼이 관광경쟁력지수를 발표했다. 4개 분야 14개 항목 90개 지표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140개국 가운데 16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문체부]

세계경제포럼이 관광경쟁력지수를 발표했다. 4개 분야 14개 항목 90개 지표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140개국 가운데 16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문체부]

‘대한민국 관광경쟁력 세계 16위, 역대 최고 수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제목이다.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년마다 전 세계 140개국의 관광경쟁력지수(TTCI)를 발표하는데, 2017년 19위였던 우리나라가 올해 16위를 차지했다. 2007년 첫 평가(42위) 이후 최고 순위다.

세계경제포럼 관광경쟁력지수 심층 분석

세계 16위 이끈 지표 대부분 경제 부문
물가 경쟁력, 자연유산 매력 100위 아래
국제 기준 안 맞는 관광 통계 문제 여전
직접 관광지표 순위만 계산하면 40위권

 
WEF의 TTCI는 세계 최고 권위의 관광 지수 중 하나다. 기꺼이 축하할 만한 뉴스다. 하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대한민국의 관광경쟁력은 세계 16강과 거리가 있다. 관광 부문을 대표 산업으로 삼는 국가들, 이를테면 싱가포르(17위) 태국(31위) 아랍에미리트(33위) 베트남(63위)보다도 우리나라가 높다. 에베레스트의 나라 네팔의 순위는 102위다. TTCI의 세부 지수를 들여다본 까닭이다.  
 
TTCI는 4개 분야 14개 항목 90개 지표로 나뉜다. 국가 순위는 각 항목의 평균 점수를 매겨 결정한다. 눈여겨봐야 할 건 맨 하위 항목인 세부 지표 90개다. 세부 지표는 통계 지표 59개와 설문 지표 31개로 구성되는데 ‘출국 수’ ‘호텔 객실 수’ ‘세계자연유산 수’ 등 구체적인 관광경쟁력 지수를 보여준다. 90개 지표마다 순위가 매겨지며, 지표별 가중치 차이는 없다. 예를 들어 ‘정부 관광지출’ 지표와 ‘HIV 유병률(에이즈 발병률)’ 지표는 관광산업과의 연관성 차이를 한눈에 알 수 있지만, 비중은 같다. 이들 세부 지표에 한국 관광의 민낯이 숨어 있다. 
 

ATM 대수 1위 vs 자연자산 매력도 115위

우리나라의 관광경쟁력을 이끈 주인공은 ATM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ATM이 가장 많이 설치된 나라다. [중앙포토]

우리나라의 관광경쟁력을 이끈 주인공은 ATM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ATM이 가장 많이 설치된 나라다. [중앙포토]

90개 세부 지표 중에서 우리나라가 1위를 차지한 지표가 3개 있다. ‘건축 허가 소요시간’ ‘HIV 유병률’ ‘ATM(현금 자동입출금기) 수’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건축 허가가 제일 빨리 나는 나라며, 에이즈에 걸릴 위험이 제일 적은 나라며, 현금 뽑아 쓰는 기계가 제일 많은 나라다. 언뜻 관광과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들 지표가 관광 한국 세계 16강의 1등 공신이다. 
 
이어 전 세계 5위 안에 든 세부 지표 5개를 열거한다. 무형문화재 수(2위), 병원 침대 수(2위), 철도 인프라의 질(4위), 육상교통 효율성(5위), B2C 거래의 인터넷 활용(5위). 이 중에서 정부가 직접 관광지표로 활용하는 지표는 ‘무형문화재 수’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간접 관광지표다.   
 
TTCI에서 대한민국의 우울한 오늘을 읽을 수도 있다. ‘건축허가 소요시간’ 세계 1위 대한민국의 ‘건축허가 비용’ 순위는 96위다. 삼천리 금수강산의 ‘자연자산 매력도’는 115위며, 초미세먼지 농도는 역시나 134위다.
 

109위→114위→118위, 떨어지는 물가 경쟁력

우리나라의 가격 경쟁력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문제는 2015년 이후 순위가 하락한다는 사실이다. [자료 문체부]

우리나라의 가격 경쟁력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문제는 2015년 이후 순위가 하락한다는 사실이다. [자료 문체부]

물가는 관광객에게 제일 민감한 관광 지수다. 이 부분에서 한국은 최하위권이다. TTCI의 물가 지수 지표인 ‘구매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18위를 차지했다. 순위도 순위지만, 정부에게 뼈 아픈 건 계속되는 하락세다. 2015년 조사에서 109위였던 우리나라는 2017년에는 114위로 5계단 떨어졌고, 이번 조사에서 다시 4계단 밀려났다. 
 
한국 물가가 관광객에게 불리하다는 건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호텔 객실 수’ 순위는 19위이나 ‘호텔 가격 인덱스’ 순위는 67위다. ‘항공운송 인프라의 질’ 순위는 6위인데 ‘항공권 세금 및 공항세’ 순위는 44위다. 이 와중에 ATM은 세계에서 제일 많고, 기름값(‘ℓ당 유류비 가격 수준’ 순위 94위)은 제일 비싼 편이다.
 
한국은 지난 5년 물가 경쟁력이 계속 하락했다. 지난여름에도 관광지의 바가지요금 때문에 시끄러웠다. 문체부 관광정책과 방진아 사무관의 설명을 옮긴다.
“물가 문제는 관광 주무부처인 문체부의 소관 사안이 아니다. 단속권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도 바가지요금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대책 마련을 논의 중이다.”
 

호텔 객실 수 98위→19위 급등의 비밀

우리나라의 '관광정책 우선순위' 항목 순위. '연간 관광데이터의 포괄성' 지표가 95위에서 18위로 껑충 뛰었다. 통계 방식을 개선한 효과다. [자료 문체부]

우리나라의 '관광정책 우선순위' 항목 순위. '연간 관광데이터의 포괄성' 지표가 95위에서 18위로 껑충 뛰었다. 통계 방식을 개선한 효과다. [자료 문체부]

문체부는 “‘관광정책 및 기반조성 분야’에서 가장 많이 개선된 국가로 선정”됐다고 당당히 밝혔다. 47위에서 31위로 올랐으니 자랑할 만하다. ‘관광정책 및 기반조성 분야’의 23개 지표 중에서 특히 ‘연간 관광데이터의 포괄성’ 지표가 95위에서 18위로 껑충 뛰었다. 무슨 뜻일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정광민 부연구위원의 해설을 전한다.  
 
“나라마다 통계를 집계하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나라가 여러 항목에서 WEF의 통계 기준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WEF가 요구하는 통계를 제공하지 못했다. 최근 2∼3년 통계 수정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가 이번에 반영됐다.”
 
올해 TTCI에서 순위가 가장 치솟은 지표는 의외로 ‘호텔 객실 수’다. 98위였는데 무려 79계단을 뛰어 19위에 올랐다. 2년 사이에 호텔이 그만큼 늘었다고? 천만의 말씀. 통계 문제다. 이전 통계에서 빠졌던 숙박시설이 이번에 대거 포함됐다. 이전에는 관광호텔만 계산했는데, 이번에는 농어촌 민박집과 게스트하우스도 들어갔다. 
 
부정확한 통계 실태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올해 TTCI에서 ‘정부 관광지출’ 지표의 순위가 92위로 나왔다. 지난 조사에서도 87위였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낮다. 관광 주무부처인 문체부의 관광 예산만 적용됐기 때문이다. 다른 부처의 관광 관련 예산은 아직 정부 관광지출 지표에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관광학계는 오래전부터 “정부의 관광 통계가 허점투성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관광 통계 보정 작업은 2015년 본격화했으며 이제야 수정된 통계가 하나둘 반영되고 있다. 다시 말해 5년 전만 해도 한국은 국제 수준의 관광 통계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처음으로 1400만 명이 넘었던 2014년. 당시 청와대와 문체부는 “관광이야말로 새로운 생산 동력”이라며 “몰려오는 외국인을 위해 학교 옆에라도 호텔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때는 정부가 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야 알았다. 당시 우리나라엔 국제 기준의 호텔 객실 수 통계가 없었다.
 

순수 관광경쟁력 순위는 40위권

세계경제포럼의 관광경쟁력 지수 순위. [자료 문체부]

세계경제포럼의 관광경쟁력 지수 순위. [자료 문체부]

대한민국의 관광경쟁력 세계 16위는 부풀려진 부분이 있다. 관광 부문과 거리가 있는 지표, 즉 국가 경쟁력 관련 지표가 전체 순위를 이끌었다. 관광 통계 산정 방법을 수정한 결과도 순위 상승에서 큰 역할을 했다. 오히려 가격 경쟁력이나 자연자원의 매력처럼 관광객이 체감하는 부분은 세계 최하위권이라고 TTCI는 증언한다. 정부 의지를 드러내는 ‘관광정책 우선순위’ 항목도 53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진짜 관광경쟁력을 알 수 있을까. 참고할 만한 연구가 있다. 2015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세계경제포럼 관광경쟁력지수 분석’이라는 연구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정광민 연구위원은 세부 지표 90개를 직접 관광지표와 간접 관광지표로 분류해 분석했다. 직접 관광지표의 기준은 관광 주무부처 문체부와 직접 연관 있는 항목이었다. 분류 작업 결과 직접 관광지표 18개를 얻었다. ‘관광정책 우선순위’ 부문의 하위 6개 지표와 ‘문화자원 및 비즈니스 여행’ 부분의 하위 5개 지표 등이 분석 대상이 됐다.
 
이 연구 방법론을 올해 TTCI에 적용해봤다. 지표별 점수는 알 수 없으므로, 지표별 순위만 반영했다. 이전 조사의 18개 지표 가운데 2개 지표가 이번에는 빠져 16개 지표를 계산했다. 계산 결과 16개 지표의 순위는 40.1875위로 나타났다. 세계 40위권. 공교롭게도 올해 TTCI가 발표한 ‘정부의 관광 산업 우선순위’ 지표가 44위였다. 적절한 자리인 듯 보였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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