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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한·미 정상회담에서 ‘동아시아 비핵지대화’ 논의해야

중앙일보 2019.09.23 00:17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홍구 전 국무총리·유민문화재단 이사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유민문화재단 이사장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남은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 핵 문제와 세계 경제 파탄을 초래할 미·중 갈등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으로 한반도비핵지대화 무산
한·일도 핵무장지대로 갈 수 있어

전쟁으로 치닫던 북한 핵을 둘러싼 갈등이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과 판문점 만남으로 최악의 충돌을 모면하였지만 완전한 비핵화로의 전진은 오리무중에 빠져있다. 북한은 중거리미사일 실험을 일상화하면서 ‘핵무기 완전 포기는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는 전쟁으로 향한 잠재적 폭발성을 잠재우기보다 키워가고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북한 핵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 핵확산 구도로 본다면 북한 핵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던 중국이 그 위치를 북한과 공유하게 됨을 의미한다. 즉, 중국이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NPT 예외 지역’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북한과 대결하는 한국과, 북한 미사일이 두 번이나 자국 상공을 넘어간 일본도 NPT 예외 지역으로 취급될 수 있지 않은가. 이렇듯 당연한 상황 논리가 공개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것은 미국이나 중국 같은 초강대국 사이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 폐기 협상에서 리비아식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모색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과 제재 해제를 북의 비핵화 조치와 병행하는 단계적 방법을 생각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앞서 지난 6일 스티븐 비건 북한 담당대표가 미시간대 연설에서 제시한 한국·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은 미국의 기존 입장과 차원을 달리하여 북한과 한반도를 뛰어넘어 핵무기 시대의 동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 구조 건설에 걸맞은 고차원 발상일 수도 있다. 비건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신임을 받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문 대통령이 명백히 제시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들어보며 한·미 동맹의 입장을 조율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30년 전인 1989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확정하고 2년 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남북기본합의서 합의,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이뤄냈다. 일본이 2차 대전 후 채택한 평화헌법과 한반도비핵화선언으로 일본과 한반도에는 비핵지대의 기초가 놓였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2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이 NPT에서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에 전념함으로써 비핵지대 구상은 무산됐다.
 
그로부터 28년 뒤 북한 비핵화를 북한이나 중국이 수용하고 실천할 가능성이 없다면 국제 정치 상황 논리에 따라 북한뿐 아니라 한국·일본도 NPT 예외 지대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반도와 일본은 함께 비핵지대로 가든지, 아니면 핵무장 지대로 갈 수밖에 없는 공동 운명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북한이나 중국이, 특히 중국에서 이런 상황 논리를 수용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중국은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통해 이 문제 처리에 상호 보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된다면 동아시아 비핵지대를 넘어 한국·북한·일본·중국이 함께 제의하고 미국이 수용하는 동아시아평화공동체 출범을 기약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이 NPT와 한반도비핵화선언에 복귀하는 것이 동아시아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유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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