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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받을 깡통 챙겨라” 사업가 살해뒤 넉달째 꽁꽁숨은 조폭

중앙일보 2019.09.22 05:00
국제PJ파 부두목인 A씨가 2006년 11월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건설사주 납치 사건 5개월 만에 검거될 당시 모습. [연합뉴스]

국제PJ파 부두목인 A씨가 2006년 11월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건설사주 납치 사건 5개월 만에 검거될 당시 모습. [연합뉴스]

“광주 경찰에만 자수한다”던 도주의 달인

지난 5월 조폭 부두목을 만나러 간 사업가가 살해된 지 넉 달이 지나면서 “사건이 미궁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찰이 사건 직후 공범 2명을 검거하고도 범행을 주도한 A씨(60)는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추적]
경찰, 50대 살해한 조폭 부두목 검거 '난항'
5월 21일 숨진채 발견…4개월째 행방 묘연
유서 쓴 공범들은 “우발적 범행”만 되풀이

경기북부경찰청은 21일 “사건 직후 달아난 국제PJ파 부두목 A씨가 사업가인 B씨(56) 납치·살해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행방을 쫓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잠적 직후 가족을 통해 경찰에 자수 의사를 밝힌 뒤 행방을 감춘 상태다. 피해자 B씨는 지난 5월 19일 “A씨를 만나러 간다”며 광주광역시로 향한 뒤 사흘 후 경기 양주시청 인근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피해자를 만날 때만 해도 깍듯이 예의를 갖추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A씨는 5월 19일 오전 10시 30분쯤 광주를 찾은 피해자를 호텔 앞에서 만난 뒤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후 A씨는 근처 일식집과 노래방 등을 갈 때 친근한 태도로 B씨를 대했다. 노래방에 들어가서는 러시아인 도우미들을 불러 오후 6시까지 술과 노래를 즐기기도 했다. 당시 A씨 일행의 이동 경로와 행동은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TV(CCTV)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50대 부동산업자에 대한 납치살인 공범 중 1명이 지난 5월 20일 사체 유기장소인 주차장에 가기 전 용의 차량(빨간색 원)에서 내린 모습. [뉴시스]

50대 부동산업자에 대한 납치살인 공범 중 1명이 지난 5월 20일 사체 유기장소인 주차장에 가기 전 용의 차량(빨간색 원)에서 내린 모습. [뉴시스]

깍듯한 예의…노래방서 태도 돌변

CCTV 분석 결과 이들의 행동은 이튿날 오전 1시쯤 갑자기 바뀌었다. 노래방에 있던 피해자가 갑자기 공범 2명의 부축을 받아 차량에 태워진 것이다. 이후 A씨는 친동생이 빌려온 차량에 공범 2명과 함께 탑승해 서울로 향했다. 경찰은 이들이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던 중 투자 문제로 언쟁하다 폭행 등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주 시내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된 B씨의 온몸에서는 구타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당시 “형이 차 안에서 A씨의 소변을 받을 깡통을 미리 준비하라고 했다”는 동생의 진술에 주목해왔다. “우발적 범행”이라는 공범들의 주장과는 달리 A씨를 계획적으로 납치·감금했다는 점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A씨 동생은 형이 지시한 대로 차량에 깡통을 준비한 뒤 A씨 일행을 태우러 간 사실도 확인됐다.
 
A씨는 과거에도 유사한 범행을 수차례 저질러 도피행각을 해왔다. 그는 2006년 11월 ‘광주 건설사 사주 납치사건’을 주도한 뒤 5개월을 숨어 지내다 검거됐다. 또 도피 후인 2007년 4월 경찰에 붙잡혀 교도소에 복역한 후로도 납치·감금죄로 또다시 실형을 선고받았다.
 
50대 부동산업자를 납치살인한 공범들이 지난 5월 20일 사체를 유기한 뒤 달아나는 모습. [사진 경기북부경찰청]

50대 부동산업자를 납치살인한 공범들이 지난 5월 20일 사체를 유기한 뒤 달아나는 모습. [사진 경기북부경찰청]

도피 중에도 매주 1대꼴 대포폰 개통

경찰은 A씨가 과거의 지능적인 도피행각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A씨는 13년 전에도 도주 후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나 신용카드 등을 쓰지 않아 검거에 애를 먹었다. 그가 도피 중에도 지인·가족 명의로 수십대의 대포폰을 개통해 쓰면서 수사망을 피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자가용이나 신용카드 대신 대중교통이나 현금만 사용하는 것도 A씨의 대표적인 도피 방법이다.
 
A씨가 잠적 후 “자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는 범행 나흘 뒤인 5월 23일 “억울하다”며 경찰에 자수 의사를 전달했다. “B씨에게 투자한 돈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B씨를 살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주장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광주에서 수사를 받게 해줄 것과 자신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들어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에 경찰은 “수사 원칙상 조건부로 자수를 받는 경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자수든 검거든 신병부터 확보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는 말이 나온다.
 
50대 사업가를 납치살해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제PJ파 부두목의 친동생이 지난 5월 24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50대 사업가를 납치살해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제PJ파 부두목의 친동생이 지난 5월 24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주의 달인, ‘조건부 자수’ 속셈은?

경찰은 A씨가 자수를 제안한 것 자체가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자신에 대한 수사력을 분산시킴으로써 도피를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경찰은 그가 광주에서 수사를 받길 원한 것은 최초 수사 주체였던 광주 서부경찰서가 A씨의 혐의를 상해치사로 봤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건이 경기 경찰로 이관된 후 살인 혐의로 바뀌자 광주에서 조사를 받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살인은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경찰은 검거된 공범 2명을 상대로 범행 경위와 A씨 행방 등을 캐왔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들이 “나이 어린 B씨가 반말을 해 때렸는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며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또 “평소 알고 지내던 A씨가 B씨에게 받을 돈이 있다고 해 도와줬을 뿐”이라는 진술을 되풀이하고 있다. 범행 직후 붙잡힌 공범 C씨(61)·D씨(65)는 지난 6월 20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50대 부동산업자를 납치살해한 공범 중 1명이 지난 5월 20일 사체 유기장소인 주차장에 가기 전 용의 차량(빨간색 원)으로 이동하는 모습. [뉴시스]

50대 부동산업자를 납치살해한 공범 중 1명이 지난 5월 20일 사체 유기장소인 주차장에 가기 전 용의 차량(빨간색 원)으로 이동하는 모습. [뉴시스]

도피 장기화…공범들 유서 쓴 이유는?

공범들이 검거될 당시의 상황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C씨 등은 범행 사흘 뒤인 5월 22일 시신을 유기한 장소 인근 모텔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검거됐다. 발견 당시 스스로 수면유도제를 복용한 이들은 범행을 시인하는 내용과 가족에게 전하는 말이 담긴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C씨 등은 지난 5월 20일 새벽에 A씨와 함께 피해자 B씨를 광주에서 서울까지 납치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을 강도살인과 사체유기,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광주광역시·양주=최경호·최모란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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