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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5만9000원짜리 '아기 얼굴' 티셔츠 300억 매출 올린 쌍둥이 형제

중앙일보 2019.09.21 09:13
자기 얼굴만 한 도넛을 양손에 들고 있거나 손가락으로 코를 파는 모습 등 귀여운 아기 얼굴이 옷 한가운데 큼지막하게 새겨있는 티셔츠. 이 옷은 지금 국내 면세점에서 중국 및 동남아 관광객들 사이에서 ‘베이비 페이스 티셔츠’로 유명한 한국 패션 브랜드 '아크메드라비'의 히트 상품이다. 면세점뿐만이 아니다. 서울 홍대 인근, 명동, 가로수길 등 20~30대가 모이는 거리 어디에서나 티셔츠를 입은 이를 발견할 수 있을 만큼 국내에서도 인기다. 한 벌에 5만9000원인 이 티셔츠는 올해 상반기에만 300억원 어치가 넘게 팔려 나갔다.
 

남 다름으로 판 바꾼 게임체인저
⑨구진모·구재모 아크메드라비 대표

'아크메드라비'의 구재모(왼쪽)·구진모 대표가 지난 9월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매장에서 티셔츠의 아기와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김경록 기자

'아크메드라비'의 구재모(왼쪽)·구진모 대표가 지난 9월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매장에서 티셔츠의 아기와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김경록 기자

아크메드라비의 성공은 브랜드를 론칭한 지 만 2년 만에 이룬 것이어서 더 놀랍다. 온라인 유통 기반으로 매장은 청담동 한 곳과 롯데 명동 등 면세점 6곳이 전부다. 지난 2017년 9월 처음 브랜드를 론칭하고, 그 해 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엔 월 매출이 4억원 수준으로 뛰더니, 올해 1월 면세점에 진출하면서 월 매출 규모가 30억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총 매출액만 48억. 올해는 8월 말까지 누적 매출액 300억을 넘겼다. 단순한 디자인의 티셔츠로 이 정도 팔렸으면 인기가 사그러들만도 한데, 지금도 하루에 6000장씩 꾸준히 팔릴 만큼 인기다.
 

"귀여운 것 쉽게 산다" 노하우로 만든 아기 얼굴 티셔츠 

이 옷을 만든 사람은 구진모·구재모 형제다. 스스로 "얼굴도 성격도 비슷하다"고 할 만큼 닮은 일란성 쌍둥이다. 이들은 10년 넘게 동대문 밀리오레 지하에서 해외 명품과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병행수입업체를 운영하다 2017년 사업을 접고 아크메드라비를 만들었다. 구진모 대표는 "동대문에 3개, 청담동에 1개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수입 사업이 꽤 잘 됐다. 매출도 1년에 30~40억원이 나올 정도였으니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는데, 2016년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하더니 다음 해엔 어음 막기 힘들어질 정도로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털어놨다. 
수십 억원에 달하는 재고를 그대로 떠안아 살 길이 막막했던 그들은 "딱 한 번만 더 해보자"란 생각으로 자본금 300만원으로 티셔츠를 만들었다. 프랑스어로 '인생의 정점'을 뜻하는 말 아크메드라비(Acmé De La Vie)를 브랜드명으로 정한 것만 봐도 당시 이들의 비장한 각오를 짐작할 수 있다.   
티셔츠를 아이템으로 택한 이유는.
(구재모 대표) "적은 자본으로 만들 수 있는 옷 중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면서 잘 팔릴 수 있는 옷이 뭘까 고민해야 했다. 12년의 사업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는 '사람들은 멋진 것 보다 귀여운 것에 쉽게 지갑을 연다'는 것이었다. 멋진 디자인의 옷은 찬사를 받을진 몰라도 일부 매니어 밖에 안 입는다. 반면 귀여운 옷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인 티셔츠를 귀엽게 만들어 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티셔츠에 사용한 아기 사진은 어떻게 구했나.  
(구진모) "이미지 판매업체의 수출용 판권 이미지를 사서 쓴다. 몇 천장의 이미지 중 고르고 골라서 정한 거다. 이를 다시 그래픽 디자이너가 티셔츠에 맞게 컬러 톤 등을 조정해 사용한다."
아크메드라비의 티셔츠들. 색상은 흰색과 검은색, 사이즈는 1(L)과 2(XL)로 구성을 최소화시켰다. 이 중 반팔 티셔츠가 5만9000원이고, 가을·겨울시즌용 스웨트 셔츠와 후드티는 9만9000원·10만9000원으로 가격이 다르다.   [사진 아크메드라비]

아크메드라비의 티셔츠들. 색상은 흰색과 검은색, 사이즈는 1(L)과 2(XL)로 구성을 최소화시켰다. 이 중 반팔 티셔츠가 5만9000원이고, 가을·겨울시즌용 스웨트 셔츠와 후드티는 9만9000원·10만9000원으로 가격이 다르다. [사진 아크메드라비]

 

명품과 SPA 사이, 틈새시장을 찾아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시험 삼아 밀리오레 매장에 걸어 본 첫날 바로 68장이 팔렸다. 가격도 그 자리에서 정했다. 그 뒤로 평소 매장 손님으로 인연을 맺고 지내던 몇몇 남자 연예인들이 입으면서 별다른 홍보 활동 없이 입소문이 났다. 
스타 마케팅 덕을 본 건가.
(구진모 대표) "영향은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올해 우리 옷이 대중에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2017년에 이미 '강남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강남 지역에서 입는 사람이 많았다. 명품 브랜드 티셔츠를 입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SPA브랜드 티셔츠를 입기는 싫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5만9000원이면 국내 브랜드 티셔츠 치고 비싼 편이다. 
(구재모) "맞다. 보통 국내 브랜드 티셔츠가 3만원 대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디자인만 예쁘고 한 번 빨면 늘어져 버리는 티셔츠는 만들지 말자고 했다. 일단 가격 생각 안 하고 좋은 원단에 고품질의 그래픽까지 입혀 만들었다."
(구진모) "경험상 티셔츠는 6만원이 넘으면 팔기 힘들다. 판매 첫날 이를 고려해 '5만9000원'이라고 가격을 불렀고 이후 그게 가격이 됐다. 팔고 나서 따져보니 원가의 3.7배수 정도더라. 딱 유통마진 없이 운영할 수 있는 마진율이다. 여기에 착안해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유통 전략을 잡았다."
 
품질이 어떻게 다른가.
(구재모) "티셔츠라고 하니 쉽게 만드는 줄 아는데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우리 스스로가 티셔츠를 많이 입고 좋아하니 평소 다른 티셔츠에서 느꼈던 아쉬운 점을 보완하고 싶었다. 여러 번의 세탁에도 뒤틀리지 않는 티셔츠, 그래픽이 깨지지 않는 티셔츠를 만들려고 매일 집에서 세탁기·건조기에 샘플 돌려보기를 수백 번 했다."
아크메드라비의 티셔츠는 일반적인 티셔츠용 원단 대비 1.5배 이상 좋은 원사를 사용하고, 중량을 높여 두께를 두툼하게 만들어 사용했다. 목 부분엔 사방으로 직조한 '밀라노 립'을 사용해 쉽게 늘어나지 않게 했다. 그래픽은 딱딱하게 굳거나 깨지지 않도록 폴리우레탄 필름을 사용하고, 프레스 방식도 수 차례의 실험 끝에 자신만의 방법을 고안해냈다.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어색해요." 형제는 꼭 닮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김경록 기자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어색해요." 형제는 꼭 닮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김경록 기자

품질에 목숨 걸자 중국 진출길 열렸다  

아크메드라비는 특히 중국인 팬이 많다. 최근 판매량의 90%가 중국인 구매다. 하반기엔 아예 중국 대련 지역에 매장 5개를 낸다. 올해 매출 목표는 800억원.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안착하게 되면 매출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중국인에게 인기를 끈 비결은.
(구재모) "우리도 궁금해서 물어봤다. 왜 우리 것을 사냐고. 그랬더니 첫 번째로 말하는 게 '원단이 좋다'는 거였다. 귀여운 디자인에 여러 번 빨아도 형태가 변하지 않고 그래픽이 잘 유지되는 점이 킬링 포인트로 작용했다."
 
수백 억원의 매출을 내는 회사가 됐지만 구진모·구재모 대표는 아직까지 원단·봉제 공장을 직접 뛰어다닌다. 면세점 입점 준비를 위해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물건 포장과 배송 할 것 없이 모든 과정을 직원들과 함께하고, 퇴근은 밤 9시가 넘어야 한다. 구재모 대표는 "지금도 공장 사장님들은 우리를 디자이너인 줄 안다"며 수줍게 웃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구진모) "대부분의 스트리트 브랜드가 로고 플레이를 하는 것과 다르게 우리는 이미지로 접근해 성공했다. 아기 얼굴 다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우리만의 그래픽 이미지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지금 국내 패션 시장에선 한국 브랜드가 좀처럼 힘을 못 쓰고 있다. 고급 패션으로는 해외 명품 브랜드가 매년 20~30%씩 성장하고, 저렴한 가격대의 패션 시장 역시 해외 SPA 일색이라 아쉽다. 내수와 해외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매출 성과를 올리며 K-패션을 알리는 아크메드라비 같은 브랜드가 반가운 이유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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