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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재자" "나의 친구 김정은"…트럼프 병적인 'My 화법'

중앙일보 2019.09.21 05:00

"트럼프의 'my' 사용, 언어적 발작 수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는 모습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촬영한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는 모습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촬영한 사진.[연합뉴스]

 
“마이 프렌드(My friend)!”
 
지난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보자마자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악수하면서는 김 위원장의 팔을 가볍게 치는 등, 친근함도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내 친구’라고 언급한 건 지난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에 이어 두 번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앞두고 트위터에 “(북한의) 잠재력은 굉장하다"며 "내 친구 김정은에겐 역사상 어떤 곳에도 비견할 수 없는 훌륭한 기회”라고 적었다. 2017년 김 위원장을 ‘꼬마 로켓 맨’이라고 부르며 빈정댔던 때와 판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my friend’ 표현은 김 위원장만 들은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들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관계가 껄끄러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마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에서 '나의 친구'로 언급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소유격 대명사 my를‘ 단체와 개인을 가리지 않고 '언어적 발작’ 수준으로 자주 사용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my OOO’라고 지칭한 대상은 각국 정상과 백악관 참모, 일반 시민과 부인 멜라니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국민에 다가가는 전임 대통령 따라 하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9·11 테러 발생 18주년을 맞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9·11 테러 발생 18주년을 맞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my' 표현을 자주 쓰는 이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친근함과 애정을 담은 것이란 분석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기를 쓴 팀 오브라이언 블룸버그 오피니언 편집장은 “트럼프는 (대화 상대에게) '당신이 나와 같은 편'이라는 뜻을 전하고 싶을 때 ('my'표현을) 쓴다”고 말했다.
 
국민에게 다가가려는 과거 대통령의 화법과 유사하다는 설명도 있다. 대통령의 수사학을 연구하는 앤 버넷 텍사스 주립대 교수는 “역대 미 대통령은 종종 ‘우리(we)’ 또는 ‘우리의(our)’ 같은 대명사로 국민과의 친밀도를 높이려 했고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전임자의 전통을 따르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 녹취록 저장 웹사이트 ‘팩트바닷에스이’(factba.se)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나의 국민(my people)’이라는 말을 250번 넘게 사용했다. WP는 “대통령에게 있어서 ‘나의 국민’은 불특정 다수의 집단을 가리킬 수 있다”며 “지지층과 참모, 선거캠프 등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나의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잇따른 논란 

 
지난달 26일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6일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트럼프가 'my' 화법으로 논란을 자주 자초한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my favorite dictator)”라고 불렀다고 최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당시 미·이집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엘시시 대통령을 기다리던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독재자는 어디에 있나”라고 말해 양국 당국자들을 긴장하게 했다. 회담장에는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사미흐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 바바스 카멜 이집트 정보국장 등이 있었다. 엘시시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이었던 지난 2013년 7월 이집트의 첫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를 쿠데타로 축출한 뒤 이듬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한국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군 장병들에게 연설하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한국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군 장병들에게 연설하고 있다.[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에도 'my' 표현을 사용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해서 ‘나의 장군’이나 ‘나의 군대’란 표현을 사용한다”며 “많은 미군 장병들은 국민을 보호하는 군대에 대해 트럼프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유세 기간에는 한 흑인 공화당원에게 “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칭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지목을 당한 공화당원 그레고리 치들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 우월주의 성향에 반발하며 공화당을 탈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치들의 탈당 사실을 묻자 그가 누군지 모른다고 답하는 방식으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강한 소유욕과 통제 욕구의 발현일 수도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중 트럼프 선거캠프의 참모였던 샘 눈버그.[로이터=연합뉴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중 트럼프 선거캠프의 참모였던 샘 눈버그.[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의 'my' 화법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시각도 많다. 오브라이언 편집장은 “트럼프가 'my' 표현을 쓰는 건 상대방이 자신의 소유와 통제하에 있음을 나타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일했던 인사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소유욕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사에게만 ‘my’ 칭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캠프 참모였다가 해고당한 샘 눈버그는 "트럼프는 나와 긴장도가 높아질수록 '나의 샘'이란 칭호를 쓰는 빈도를 줄였다"며 "내가 결국 해고된 걸 보면 그는 정말 순수하게 'my'를 (측근에 대한) 애정표현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버넷 교수는 “대통령은 표현 하나도 상황에 맞게 써야 한다”며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대통령이 '나의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라고 말한다면 많은 이들은 이 같은 부적절한 표현에 당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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