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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돼지열병 ‘단백질 위기’ 충격 10년 이어질 수도

중앙선데이 2019.09.21 00:21 653호 7면 지면보기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단백질 위기(Protein Crisis)’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단백질 위기는 ASF 때문에 인간이 섭취할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해지는 사태다. 세계 최대 농업은행인 네덜란드 라보뱅크의 리서치 헤드 겸 글로벌투자전략가인 저스틴 셰라드가 지난해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올 4월 중앙SUNDAY와 전화 인터뷰에서 “ASF 때문에 올 한해 동안 유럽 전체의 연간 돼지고기 생산량 만큼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며 “돼지고기 공급 부족이 너무 커 소고기나 닭고기, 물고기 등으로 벌충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중앙SUNDAY 4월 7일자 1·4·5면>
 

인간이 섭취할 단백질 부족 심각
중국 이미 1억 마리 폐사·살처분
글로벌 돼지 블랙홀돼 가격 급등
“한국서 발병 땐 수입 어려워진다”

애초 단백질 위기는 식량학자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인구로 인한 단백질 부족사태를 일컫는 말이었다. 세계 인구가 90억 명을 넘어선 2050년 이후에나 발생할 먼 훗날 이야기였다. 그런데 ASF가 단백질 위기를 발등의 불로 만들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현재 단백질 위기의 중심은 중국 대륙이다. 지난해 ASF가 대륙 전역으로 퍼졌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돼지 100만 마리 정도가 죽거나 살처분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분석회사인 IHS마킷의 농산물 분석가인 애덤 스펙이 가디언지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이미 1억 마리가 이 전염병으로 폐사하거나 살처분됐다. 그 바람에 올해 8월 중국 돼지고기 값이 한 해 전 같은 기간보다 46.7%나 뛰었다. ASF가 대륙에 확산된 때는 지난해였지만, 시간차를 두고 값이 오르기 시작해 올해 8월부터 급등세를 띄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돼지고기는 하루 육류 섭취량의 32%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최대 단백질원인 셈이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농림축산부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육류 소비량 가운데 돼지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24%(2014년 기준) 수준이다. 경제개발협력국(OECD)의 평균치는 22% 수준이다. 주요 산업화한 나라 가운데 한국이 돼지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블룸버그 통신은 “전 세계 돼지고기가 중국으로 집중되고 있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실제 중국은 세계 돼지의 절반을 키우던 곳이었다. 이런 곳의 돼지가 ASF 때문에 급감했다. 그 바람에 중국이 글로벌 돼지 블랙홀이 됐다. 돼지고기 수입량이 올해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라보뱅크의 셰라드는 “한국에서도 ASF가 발병하면, 중국 돼지파동 때문에 한국이 원하는 만큼 수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올 4월 경고했다. 국내 ASF 전염이 조기에 차단되지 않으면, 셰라드의 경고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라보뱅크는 올해 중국의 돼지고기 생산량이 “20~70% 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돼지파동은 사회·정치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돼지가 주로 서민들의 단백질원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에선 파동의 정치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값이 치솟는 바람에 돼지고기를 사지 못해 중국인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요즘 중국에서 ‘pork freedom(돼지로부터 자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며 “돈이 많아 돼지대신 소고기 등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전했다. 이는 돼지파동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소득격차를 더욱 실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이번 주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비축 중인 돼지고기 1만 t을 방출했다. 가격 급등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다. 입찰 한도를 1인당 300t으로 제한했다. 사재기를 막기 위해서다. 중국 정부는 1970년대 이후 공급 부족사태를 대비해 돼지고기를 비축해왔다. 비축 규모가 국가 기밀로 분류돼 있을 만큼 중요한 자산을 이번 ASF 사태로 시장에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 경제분석회사인 캐피털이코노믹스(CS)는 20일 낸 보고서에서 “1만t은 중국 나흘치 소비량에 지나지 않다”며 “너무 양이 적어 가격안정 효과가 단기에 그칠 전망”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의 안간힘에도 단백질 위기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라보뱅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중국의 단백질 부족 규모가 1000만 t에 이를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돼지고기 공급 부족을 닭고기나 소고기, 물고기 등으로 벌충하고 1000만 t 정도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 바람에 음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IHS마킷의 스펙은  “중국의 ASF는 동물성 단백질 시장에서 최악의 사태가 되고 있다”며 “앞으로 10년 동안 충격파가 이어져 동물성 단백질 거래패턴이 완벽하게 뒤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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