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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알맹이 없는 정년 연장, 왜 지금 내놨나

중앙선데이 2019.09.21 00:21 653호 30면 지면보기
정부가 정년 연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범정부 인구정책 TF’ 논의를 토대로 홍남기 경제 부총리가 지난 18일 확정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방안에 따르면, 현재 법정 정년인 60세 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 연장 의무를 기업에 부과하는 일본식 ‘계속고용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퇴사 후 재고용이나 정년 연장, 정년 폐지 등 방식은 개별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법정 정년인 60세를 넘긴 직원을 의무적으로 계속 고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정년 연장이나 마찬가지다.
 

인구 급감 속 시급한 사안이지만
청년실업·기업 부담 함께 고민해야
연금개혁도 미룰 수 없는 과제

홍 부총리는 그럼에도 일단 “정년 연장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문재인 정부가 끝나는 2022년에 계속고용제도의 본격적인 실행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60세 정년이 지난 근로자를 고용한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을 신설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는 이미 정년 연장의 시동을 걸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정년이 늘어나면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늦춰야 하는 등 사회 각 분야에 끼치는 연쇄적 파장이 워낙 큰 데다 세대별 손익구조가 확연히 달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가 어렵다 보니 실행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늙어가면서 경제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0.98)인 유일한 국가다. 출생아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고, 2028년이면 총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연일 쏟아진다. 특히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8년을 정점으로 더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이 같은 심각한 인구구조 변화 문제를 감안할 때 정년 연장이라는 큰 틀의 방향은 분명 맞지만 정부의 이번 발표는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처음으로 정년 연장을 논의의 장으로 올렸을 당시 제기된 여러 우려에 대한 해법이 전혀 담기지 않아서다. 대표적인 게 청년실업 문제다. 정년을 연장하면 현재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386세대는 더 오래도록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반면 가뜩이나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 층은 점점 더 취업 기회 잡기가 어려워진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청년 일자리 방안이 꼭 필요하지만 이번 발표에선 아예 빠졌다. 그렇다 보니 “20대보다 인구가 훨씬 더 많은 50대 표심을 잡기 위한 총선용 꼼수”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기업 부담이 많이 늘어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연공서열형 임금구조나 비탄력적인 고용시장을 그대로 둔 채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 부담이 크게 가중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에 따른 노인 기준 상향은 더욱 민감한 문제다. 노인 연령 기준을 현재의 65세 위로 상향하면 소소하게는 지하철 경로우대에서부터 임플란트 치료비 지원이나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치매노인 공공후견제도 등의 혜택을 받는 시기가 함께 늦춰진다.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 고통스런 연금개혁도 동반해야 한다. 사실상 전 국민의 혜택이 줄어드는 셈이라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이미 경험한 바도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수령 연령을 68세로 상향 제안했을 당시 워낙 부정적 여론이 들끓어 정부 발표에선 아예 뺐고, 이번에도 역시 논의 대상에 올리지도 않았다.
 
아무리 미룬다 해도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경제 활력 제고라는 정년 연장의 취지를 살리려면 수반되는 갈등과 불만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정부 방침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사회적 논의를 보다 심도있게 해서 합리적인 절충안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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