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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진정 검찰 개혁을 원한다면

중앙선데이 2019.09.21 00:21 653호 31면 지면보기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주군 개인 아닌 백성 위한 위징
당 태종 중국 최고성군 만들어
권력에 충성하지 않는 검찰이
진정한 검찰 개혁의 출발점

윤석열 검찰총장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버린 말인데, 생각할수록 울림이 있다. 결론부터 말해서, 그것이 곧 ‘검찰 개혁’의 출발점인 까닭이다. 검찰 권력의 해악은 그것이 정의 실현이라는 본연의 존재 이유에서 이탈해 특정인과 특정세력에 봉사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숱하게 보아온 바 아닌가. 그 특정인의 지위는 누누이 검찰에 대한 임명권자가 누렸고, 검찰은 특정세력인 정권의 하수인이란 오명을 벗지 못했다. 거기엔 좌우의 구분도 없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가 임명권자가 되든 검찰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그저 정의를 수호하는 데만 전력하면 된다. 이런 게 검찰 개혁 아니고 뭔가. 임명권자 역시 마찬가지다. 진정 검찰 개혁을 원한다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검찰을 격려하기만 하면 된다. 스스로 빚 지지 않으니 검찰의 잘못이 있다면 떳떳하게 비판할 수도 있을 터다. 더 이상 개혁할 게 없다.
 
윤 총장이 염두에 두고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의 저작권은 사실 훨씬 앞 세대의 사람에게 있다. 당나라 때의 명신 위징 말이다.
 
위징은 당 태종을 모시기 앞서 호족세력인 두건덕과, 태종과 황제 자리를 놓고 다퉜던 이건성의 신하였다. 이건성에게는 동생인 이세민(태종)을 독살하라고 코치하기까지 했다. 태종이 이런 인물을 중용하니 공신들의 배알이 꼬였을 법도 하다. 어느 날 연회 중에 태종의 처남인 장손무기가 이렇게 비꼰다.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오. 두건덕과이건성의 부하였던 그대와 이렇게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게 될 줄 누가 알았겠소.”
 
위징의 대답이 명언이다.
 
선데이 칼럼 9/21

선데이 칼럼 9/21

“나는 두건덕이나이건성 개인을 위해 일하지 않고, 오로지 오랜 전화(戰禍)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해서 일했소. 백성이 가장 중요하고 그에 비해 권력은 가벼운 것이며 사직은 마지막인 것이오. 오직 주군에게만 충성하고 백성은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과 나는 다르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오직 국민만을 본다는 말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태종이 나서 상황을 정리한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위징을 썼으니, 앞으로 위징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말라.”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는 역사가 말해준다. 위징은 태종을 향해 ‘아니 되옵니다’라는 말을 거의 300번이나 외쳤고, 그 말을 들은 태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남았다.
 
후대로 와서는 윈스턴 처칠도 비슷한 말을 했다. 처칠이 당적을 여러 번 바꾼 데 대한 정적들의 비판에 그는 이렇게 일소한다.
 
“나는 한길로만 가는 사람이 아니라 옳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이런 처칠에 대해 독일 작가 헬게 헤세는 “처칠은 늘 당에 대한 충성심을 자신의 가치와 구분했고, 당에 대한 충성심보다 항상 공동체 전체의 목표를 먼저 생각했다”고 평한다. (『처칠 원칙』)
 
하지만 대부분의 권력자는 그렇지 않다. 검찰이 자기에게 충성하길 바라고, 잘 드는 검찰의 칼을 정적을 향해 휘두르길 원한다. 윤 총장의 말 또한 6년 전 국정감사 때 ‘윗선의 부당한 압력’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왜 우리 편에 불리한 수사를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투의, 당시 여당 의원의 원망 섞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혹시 사람에 충성하는 것 아니에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윤 총장의 원칙은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칼날의 방향이 바뀌자 다시 권력을 가진 쪽에서 아우성이다.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면서 윤 총장에게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도 그런다.
 
“반칙과 특권, 이런 것은 정말로 용납하지 않는, 그래서 정의가 바로 서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엄정한 그런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정의보다는 반칙과 특권에 더 익숙한 듯한, 행동보다는 입에서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인물을 ‘정의 지킴이’ 법무장관에 기용함으로써 많이 퇴색한 말이지만 검찰 개혁에 대해 이보다 더 생생한 정의(定義)는 없을 듯하다.
 
6년 전 그 인물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사의 오늘 발언, 두고두고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고 썼다. ‘조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신통력 있는 예언인데,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평생 남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검찰 개혁일 것이다.
 
그런 개혁이 진정 이뤄지길 바라면서 성경 말씀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런 희망에 좀 더 권위를 보태기 위해서다. ‘에베소서’ 6장이다.
 
“종들아 (...) 눈가림만 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하나님을 국민으로 바꾸면 이해가 더 빠를 터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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