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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는 ‘리듬’을 그리고 싶었다

중앙선데이 2019.09.21 00:20 653호 18면 지면보기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 <19> 

① 스위스 베른의 파울 클레 미술관. [사진 윤광준]

① 스위스 베른의 파울 클레 미술관. [사진 윤광준]

“저 인간 참 교만해!” “점잖은 사람인데?” 우리는 매순간 타인을 판단하며 산다. 그저 몇 분 마주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눴을 뿐인데 그 사람의 성격은 물론 됨됨이까지 평가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그 사람의 속마음을 들어보지도 않고, 드러난 몇 가지 단서들로 그런 판단을 내린다.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은 둘째치고, 이 같은 판단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일까.
 

바이올린 즐긴 ‘음악인’ 클레
‘시간의 흐름’을 캔버스에 추구
바흐의 대위법에서 단초 찾아
그림 관점을 전환하는 시도도

물론 상대방이 짧은 시간에 보여준 표정·어투·자세 등이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도대체 어투의 어떤 부분, 자세의 어떤 물리적 특징을 근거로 ‘점잖은’ ‘교만한’ 같은 고차원(?)의 판단을 내리는 걸까.
 
‘리듬’이다! 이건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각 사람의 얼굴 표정·말투·자세는 특유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내리는 일상의 판단 근거는 바로 이 리듬이다. 모든 생명체는 고유의 리듬을 가진다. 각 문화는 이 생명체의 리듬에 일정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모든 생명체의 리듬은 상호작용하는 다른 생명체의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흥분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말이 느린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리듬의 전염’이다. ‘공감’은 바로 이 ‘리듬의 전염’에 기초한다.
 
심리학자 다니엘 스턴은 이러한 현상을 ‘감정조율(affect attunement)’이란 개념으로 이론화했다. 아기와 어머니는 서로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리듬을 서로 흉내내고 조율하며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야기할 때, 편안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리듬을 통한 ‘감정조율’에 있다. 리듬이 맞아야 편안하다(심리학적으로 볼 때 ‘궁합’은 바로 이 리듬에 기초한다. ‘매력’도 이 리듬과 관계된다).
 
음악의 3요소로 리듬·멜로디·하모니를 이야기한다. 그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은 리듬이다. 인간은 리듬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했다. 원시 부족들이 불을 피워놓고 둘러서서 춤을 췄던 것은 리듬의 공유를 통해 집단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화가들이 음악가들을 부러워했던 것은 바로 음악의 리듬이 가지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 때문이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움직이지만, 회화는 ‘해석’이라는 인지적 작업이 동반되어야 한다. 고상하기는 하지만, 음악에 비해 한 발짝 늦다. 음악처럼 효율적이지도 않다.
  
모든 생명체는 ‘리듬’으로 소통한다
 
파울 클레는 음악에 비해 회화가 가지는 한계를 가장 절실하게 느꼈다. 음악이 가지는 ‘공감의 힘’을 어떻게든 회화로 번역하려고 했다. 바우하우스 선생으로 지내는 동안, 그는 음악을 회화로 표현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요하네스 이텐, 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음악적 경험과 회화적 경험의 ‘공감감적 표현’이 이제 막 시작한 추상회화의 나아갈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② 뛰어난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클레는 수시로 연주회를 열었다. ③클레가 회화적으로 구현한 바흐의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G-장조, 4악장 아다지오’의 시작부분. ④ 클레의 ‘붉은 색의 푸가’.(1921·부분). ⑤ 클레의 ‘리듬적인 것’.(1930·부분). ⑥ 클레의 ‘아드 마르기넴’.(1930·부분)

② 뛰어난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클레는 수시로 연주회를 열었다. ③클레가 회화적으로 구현한 바흐의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G-장조, 4악장 아다지오’의 시작부분. ④ 클레의 ‘붉은 색의 푸가’.(1921·부분). ⑤ 클레의 ‘리듬적인 것’.(1930·부분). ⑥ 클레의 ‘아드 마르기넴’.(1930·부분)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클레는 어릴 적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던 그의 아버지 한스 클레는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바우하우스의 기초과정을 확립한 이텐은 한 때 한스 클레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클레의 어머니도 성악을 전공한 음악교사였다. 클레는 바이올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음악가가 될 것인가 화가가 될 것인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화가가 된 후에도 수시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한 때는 스위스 베른 시의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인 부인 릴리 슈툼프도 실내악 연주모임에서 만났다. 바우하우스 선생을 할 때도 현악사중주,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해 수시로 작은 연주회를 여느라 바빴다. 모든 화가들에게 따라붙는 모델과의 염문이 클레에게는 전혀 없었던 이유다. 음악은 성욕보다 강하다!(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클레를 언급할 때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예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클레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클레가 한 말이 아니다. 클레는 17세기 초의 독일화가 필리프 오토 룽게(Philip Otto Runge)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다. “음악은 18세기에 이미 완성되었지만, 회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는 주장은 클레가 오리지널이다. 그는 베토벤, 모차르트, 그리고 이탈리아 오페라를 특히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회화를 통해 구현해내고 싶었던 음악은 바흐의 대위법이었다. 클레에게 바흐의 대위법은 음악에 숨겨져 있는 창조방법론의 비밀을 알려주는 너무나도 귀중한 자료였다.
 
음악의 멜로디를 선으로 구현
 
일단 클레는 음악의 원리를 회화에 일대일로 적용해보려고 시도했다. 바우하우스의 형태 마이스터로 초빙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막연했던 자신의 ‘음악적 회화’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맞다. 가르칠 때, 자신의 지식을 상대화하는 ‘메타 인지’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그가 바우하우스 시절 정리해 놓은 자료를 살펴보면, 집요할 정도로 음악적 요소를 회화에 적용해 구현하려 애썼다. 클레는 자신의 이러한 시도를 ‘조형적 형태학(Bildnerische Fromlehre)’이라고 정의했다.
 
우선 그는 음악의 멜로디를 ‘선’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음악에서 멜로디가 다성부로 전개되는 것을 ‘수렴하는 선(konvergierende Linien)’과 ‘분산하는 선(divergeirende Linien)’의 상호작용을 통해 회화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음악에서 기본박자(2박자, 3박자, 4박자)가 분화되어 다양한 박자구조를 갖는 방식을 ‘도형의 형태와 크기’로 표현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자신의 주장을 학생들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클레는 바흐의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G-장조, 4악장 아다지오’의 시작부분을 도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사진 3>.
 
클레의 ‘조형적 형태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리듬’의 회화적 구현이다. 음악은 시간예술이고 회화는 공간예술이다. 음악에서 ‘리듬’은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2차원의 평면에 모든 것을 구현해야 하는 회화에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클레는 구조와 형식이 명확한 바흐의 음악에 기초하여 다양한 실험을 계속했다.
 
클레의 1921년 작품인 ‘붉은 색의 푸가(Fuge in Rot)’<사진 4>나 1930년 작품인 ‘리듬적인 것(Rhyth-misches)’<그림 5>과 같은 작품을 보면 ‘시간의 흐름’으로서의 ‘리듬’을 클레가 어떻게 회화적으로 구현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붉은 색의 푸가’에는 푸가의 구조와 조성변화가 물결처럼 묘사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을 한 장면에 동시에 묘사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리듬적인 것’에서는 모방과 반복이라는 푸가의 시간적 변화를 어긋나게 배치된 검은색·회색·흰색이 칠해진 다양한 크기의 사각형으로 구현하고 있다. 클레는 ‘동시성(Gleichzeitigkeit)’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회화가 음악보다 훨씬 유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⑦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⑦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클레는 시간의 흐름을 ‘관점의 전환’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1930년 작품인 ‘아드 마르기넴(Ad marginem)’이란 작품에서처럼 그림을 4각형의 어느 쪽에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그림 6>. 마치 조선시대 영조가 정순왕후를 왕비로 맞이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그림 7>처럼 그림을 사방에서 볼 수 있는 ‘멀티플 퍼스펙티브(multiple perspective)’를 구현한 것이다. 그림을 빙 돌아가면서 보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면이 변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실험은 리듬을 구현한 작품들처럼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다. 클레 스스로도 이 같은 실험을 계속하지는 않았다. 앞의 여러 가지 실험을 거친 후, 클레는 바흐의 폴리포니 방법론을 적극 활용하여 마침내 음악을 ‘색’으로 구현한다. 이 이야기는 다음호에 계속된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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