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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임신시키겠다' 쇼팽이 백작부인에게 이런 편지를?

중앙일보 2019.09.20 12:00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42)

델피나 포토츠카. Moritz Michael Daffinger 그림. 1839년.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델피나 포토츠카. Moritz Michael Daffinger 그림. 1839년.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쇼팽이 자기의 아이를 낳아줬으면 하고 생각했던 여인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쇼팽의 이미지나, 알려진 언행을 고려할 때 이러한 생각은 그 자체만으로 너무 노골적이고 파격적이다. 그녀는 폴란드 출신의 델피나 포토츠카(Delfina Potocka, 1807~1877), 쇼팽보다 3살 위의 백작 부인이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델피나는 폴란드의 실력자 포토츠키 가문의 아들과 결혼하였으나 폭력적 성향의 남편과 헤어져 쇼팽과 비슷한 시기에 파리에 정착하였다. 쇼팽이 파리에 오고 며칠 후 그녀의 초대를 받아 같이 식사를 하면서, 둘의 오랜 우정이 시작되었다. 둘은 모두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막 생활을 시작했고 고향을 떠난 허전함을 공유할 수 있어서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쇼팽은 델피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놀라운 미모와 우아함, 고상한 매너로 빛을 발했고 노래할 때는 표현할 수 없는 매력적인 마력을 품었다’는 델피나였다. 그녀의 노래는 리스트와 들라크루아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를 매료시켰다. 쇼팽도 자신이 지은 가곡을 다른 어떠한 가수가 부르는 것보다 그녀가 부르는 것을 선호했다. 부유한 시댁은 그녀에게 넉넉한 연금을 보내주었고 그녀는 파리의 폴란드 동포사회뿐만 아니라 현지의 귀족 사교계에서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았다.
 
쇼팽과의 친밀한 관계는 쇼팽이 그의 협주곡 2번과 강아지 왈츠로 알려진 작품번호 64-1 등의 두 곡을 헌정함으로써 입증되었다. 쇼팽이 두 곡을 헌정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녀의 초상화에 엿보이는 육감적 매력과 쇼팽이 그녀에게 느꼈다는 특별한 감정 그리고 오래 지속한 둘의 우정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이 두 사람 사이에서 뭔가를 캐려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결정적인 일은 쇼팽이 세상을 떠나고 약 100년이 지날 때쯤에 일어났다.
 
'강아지 왈츠, 작품번호 64-1'의 자필원고. 델피나 포토츠카 백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영어로 Minute Waltz로 불리기도 하는 이 곡을 1분내에 연주하려고 시도하는 피아니스트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minute는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Public Domain)

'강아지 왈츠, 작품번호 64-1'의 자필원고. 델피나 포토츠카 백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영어로 Minute Waltz로 불리기도 하는 이 곡을 1분내에 연주하려고 시도하는 피아니스트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minute는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Public Domain)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으로 2차대전은 끝났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끼였던 폴란드는 2차 대전 중 주된 전쟁터 중 하나였고 침략자들은 남의 땅에 아낌없이 포탄을 쏟아부었다. 폴란드는 심각한 전쟁의 피해를 보았다. 폴란드인들은 잿더미에서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무너진 건물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증오했던 소련이 폴란드를 자기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 한다는 것이었다. 폴란드인의 자긍심은 다시 한번 짓밟혔다.
 
바로 이때 한 폴란드 방송국에 어떤 여성이 찾아왔다. 그 여성은 쇼팽이 썼다는 편지 한 묶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폴리나 체르니츠카(Pollina Czernicka)라는 그 여성은, 델피나 포토츠카에게 보낸 그 편지들을 자신 가족의 유물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폴리나는 음악학을 공부한 사람이었고, 개인적으로는 델피나의 가문에 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폴리나는 방송을 통해 편지의 일부를 들려주었다. 신문사들은 그것을 받아 옮겼다. 편지에는 쇼팽 자신의 음악관, 동료 음악가에 대한 평가,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찬 예언이 있었다. 사용된 문체는 기존의 쇼팽 편지에서 익숙하게 보던 것이었다. 절친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에게 보낸 편지를 제외하면, 쇼팽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자료는 흔치 않았으므로 쇼팽 연구가들의 관심을 끌 만했다.
 
무엇보다 델피나와의 깊은 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이 주목을 받았다. 기존의 편지에서와 달리, 폴리나가 공개한 편지 속에서 쇼팽은 정중하고 겸손한 표현이 아닌 노골적이고 저속한 성적 표현을 남발했다. 폴란드의 민족적 영웅, 쇼팽은 순결한 천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폴란드인은 그를 거의 신(神) 다음의 존재로 받들고 있었다. 노골적인 표현은 그런 쇼팽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편지의 공개는 폴란드 국민에게 큰 파문을 불러왔고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폴란드의 영웅이 어려운 시기에 있던 폴란드 국민을 실망하게 하는가? 단편적으로 공개된 편지에는 다음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쓰는 용어에 따라 저속할 수도, 고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 연인이 너무 많아서 당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하는데 내가 당신을 수태시키겠다.
- 당신에게 너무 많은 정력을 쏟았기에 음악적 영감과 생각들이 희생되었다.
- 언제나 감탄할 만한 사랑스러운 여인들을 눈여겨보아 왔고, 그들 중 누군가가 내 속에 열정의 불을 지피면 그 상대를 침대로 끌어들였다.
- 조르주 상드에게 배운 사랑의 기술을 당신에게도 사용해 보고 싶다.
 
한 출판사는 재빨리 폴리나에게 접근하여 편지를 출판하는 계약을 맺었다. 일부 학자는 새로 발견된 편지를 바탕으로 쇼팽을 재평가하려 했다. 당연히 의문도 일었다. 폴리나가 공개한 것은 조각들이었고, 타자로 친 사본이었다. 바르샤바의 쇼팽 협회는 폴리나에게 공식적으로 원본을 요청했다.
 
들라크루아 그림에서 단테의 모델이 된 쇼팽. 외젠 들라크루아 그림. 루브르 미술관 소장.

들라크루아 그림에서 단테의 모델이 된 쇼팽. 외젠 들라크루아 그림. 루브르 미술관 소장.

 
그녀는 원본이 프랑스에 있다고 했다가 다시 미국에 있다고 둘러대며 원본 공개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계속 원본에 대한 압박을 받고는 사진 복사본을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약속한 당일에 가서는 기차역에서 강도를 만나 잃어버렸다는 전보만 보내왔다.
 
편지의 진위에 대한 논쟁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쇼팽 협회는 음악학자와 언어전문가를 소집하여 그때까지 공개된 자료로 분석에 들어갔다. 오랜 시간 분석 끝에 나온 결론은 편지들이 조작되었다는 것이었다. 많은 근거가 제시되었다. 다음의 것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 편지에서 델피나가 파리에 있었다는 1840년 말경, 그녀는 다른 곳에 있었다.
- 파리에서 활동했다고 언급된 폴란드 시인, 치프리안 노르비드(Cyprian Norwid, 1821~1883)는 당시 어린 나이였고 폴란드에 있었다.
-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폴란드어에 유입된 용어들과 쇼팽이 자라고 교육받았던 바르샤바나 그 인근의 마조비아가 아닌 다른 지방에서 사용되는 용어나 구문이 편지에 사용되었다. (이를 근거로 언어학자들은 그 편지가 1926년과 194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했다.)
 
폴리나는 자신의 집에 쇼팽 제단(祭壇)을 만들어두고 그를 기리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들은 그녀가 열렬한 쇼팽의 숭배자로서 어릴 때부터 쇼팽에 대한 모든 것을 수집했다고 했다. 처음 알려졌던 것과 달리 폴리나는 델피나의 직계 가문에 속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델피나 가문의 다른 계파의 일원(一圓)과 먼 가족 관계였을 뿐이었다. 델피나의 모든 유물을 물려받은 상속인은 그 편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협회의 공식 결과가 발표되기 전, 폴란드의 두즈니키(Duszniki)에서 쇼팽 음악축제가 열렸을 때였다. 어떤 여류인사가 연주회에서 우연히 폴리나 옆에 앉았는데 그녀는 폴리나의 이상한 모습을 목격했다. 쇼팽의 곡이 연주되는 도중에 폴리나의 얼굴은 비정상적으로 홍조를 띠고 있었고, 눈은 풀려있었으며,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인사는, 폴리나가 성적 흥분상태에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The Strange case of Delfina Potocka: The Mystery of Chopin“의 포스터. 쇼팽과 델피나 포토츠카, 그리고 쇼팽이 썼다는 편지에 대한 얘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1999년

영화 ‘The Strange case of Delfina Potocka: The Mystery of Chopin“의 포스터. 쇼팽과 델피나 포토츠카, 그리고 쇼팽이 썼다는 편지에 대한 얘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1999년

 
델피나가 쇼팽에게 보낸 진본 편지는 한 통만이 남아있다. 쇼팽이 사망하기 3달 전에 발송된 그 편지에는 두 사람이 친밀한 연인 관계였음을 암시하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 정중한 표현과 의례적 염려가 담겨있을 뿐이었다.
 
사적인 생각들을 담은 쇼팽의 일기에도 델피나와의 관계에 대한 상상을 키울만한 언급은 없다. 분석가들의 결론은 ‘병적인 성적 취향의 소유자로서, 쇼팽에게 과도하게 몰입했던 한 여인이 저속한 편지를 조작해 냈고, 그 편지에 자신의 망상을 담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영웅에게 오점을 씌우려는 시도에 폴란드 국민의 반응이 어떠했을지 쉽게 짐작된다. 폴리나 자신과 그녀의 가족들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눈총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폴리나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녀는 쇼팽 사망 100주기에 맞춰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녀의 어머니와 두 형제도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델피나와 쇼팽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추측을 일삼던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둘 사이를 증언해 줄 편지나 다른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폴리나의 죽음과 함께 그 기대는 사라진 듯했다. 그런데 1964년과 1973년, 폴리나가 얘기했던 편지의 사진 복사본이 나타났다며 논란이 다시 일었다. 폴란드 정부의 범죄 과학수사국이 개입하여 그것들이 쇼팽의 진본 편지를 교묘히 짜깁기한 사진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델피나는 쇼팽의 오랜 친구 중에서, 친밀한 관계에 빠질 수도 있었던 유일한 폴란드 여인이었다. 쇼팽은 두 사람의 관계가 우정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사건의 발생을 통해 유추해 보면, 폴란드인의 마음속에는 그들의 관심과 숭배의 대상인 쇼팽이 폴란드 교포와 맺어졌었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다음 편은 보수, 진보로 이념이 달랐던 쇼팽과 상드에 관한 이야기이다.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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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섭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필진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 쇼팽. 피아노 선율에 도시적 우수를 세련된 모습으로 담아낸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생의 연인 상드와 다른 여러 주변 인물에 관련된 일화를 통해 낭만파시대의 여러 단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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