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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한광성 평양 맞대결 못보나…D-25 아무 답 없는 북한

중앙일보 2019.09.20 00:05 종합 2면 지면보기
다음달 15일 평양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린다. 그런데 남북 대결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한국 대표팀은 아직 이동 경로는 물론 훈련장이나 숙소 등을 정하지 못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도 북한 측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북한의 평양 남북대결은 1990년 통일축구대회 이후 29년 만이다. 한국의 스트라이커 손흥민(27·토트넘)과 북한의 공격수 한광성(21·유벤투스)이 김일성 경기장을 나란히 누비는 장면을 볼 수 있을까.
 

월드컵 남북 평양 예선 내달 15일
“북, 김일성경기장 대패 땐 후유증”
“벤투호 흔들어 힘빼기” 분석 갈려

A매치는 2~3주전 현장답사 관례
계속 무응답 땐 이달말 대안 논의
2008년엔 평양 무산돼 중국서 경기

한국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토트넘)과 북한 축구대표팀 샛별 한광성(아래 사진·유벤투스). 양 팀을 대표하는 두 스타는 다음달 15일 평양에서 열릴 월드컵 2차 예선에서 대결한다. [뉴스1]

한국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토트넘)과 북한 축구대표팀 샛별 한광성(아래 사진·유벤투스). 양 팀을 대표하는 두 스타는 다음달 15일 평양에서 열릴 월드컵 2차 예선에서 대결한다. [뉴스1]

◆29년 만의 평양 남북대결=북한축구협회는 지난달 2일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홈 경기 일정을 전달하면서 한국과의 경기를 10월 15일 오후 5시30분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치르겠다고 통보했다. 지난 5일 레바논과 2차 예선 첫 경기(북한 2-0승)도 같은 장소에서 정상적으로 개최했다.
 
남북 대결 TV 생중계와 관련해 북한 측은 국내 중계권자인 코리아풀(지상파 3사)과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방송 관계자는 “북한 측이 통상적인 원정 A매치 중계권료보다 4~5배 높은 가격을 제시해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평양 남북대결을 앞두고 북한이 장소를 바꾼 전례는 있다. 지난 2008년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과 최종예선에서 잇따라 남과 북이 만나자 북한 측은 ‘남북 관계 경색’을 이유로 일찌감치 홈 경기 포기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두 경기 모두 중국 상하이에서 치렀다.
 
한국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위 사진·토트넘)과 북한 축구대표팀 샛별 한광성(유벤투스). 양 팀을 대표하는 두 스타는 다음달 15일 평양에서 열릴 월드컵 2차 예선에서 대결한다. [AP=연합뉴스]

한국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위 사진·토트넘)과 북한 축구대표팀 샛별 한광성(유벤투스). 양 팀을 대표하는 두 스타는 다음달 15일 평양에서 열릴 월드컵 2차 예선에서 대결한다. [AP=연합뉴스]

◆소식 없는 북한축구협회=통상적으로 대한축구협회는 원정 A매치를 준비할 때 해당 축구협회와 사전 논의를 거쳐 숙소와 훈련장을 정한다. 보통 경기를 2~3주 앞두고 현장 답사를 거쳐 결정한다. 이를 위해 축구협회는 이달 초 AFC를 거쳐 북한축구협회에 평양 남북 대결 관련 정보를 요청했지만 아직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지난 16일 보낸 두 번째 공문에도 북한 측의 대답이 없을 경우 AFC와 국제축구연맹(FIFA)에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는 “당초 육로 방북 이야기도 나왔지만, 현재로선 중국을 경유해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중국에서 하루 이틀 정도 머물며 중국 내 북한 대사관에서 입국 비자를 받은 뒤 평양으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평양에서 북한을 상대한 레바논 선수단도 같은 경로로 움직였다.
 
1990년 평양에서 만난 남측 박종환 감독(왼쪽)과 북측 명동찬 감독. [중앙포토]

1990년 평양에서 만난 남측 박종환 감독(왼쪽)과 북측 명동찬 감독. [중앙포토]

◆벤투 감독 “급할 건 없다”=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축구대표팀 감독은 투르크메니스탄전(2-0승) 직후인 지난 12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다음달 북한전을 앞두고 있는데 가능하면 경기에 임박해 건너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축구계 일각에서 ‘벤투 감독이 평양 원정과 관련해 부정적인 정보를 미리 접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축구협회의 설명은 다르다. 북한은 우리나라와 시간대가 같고, 언어나 기후 등 환경 적응에 어려움이 적은 만큼 굳이 일찍 건너갈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축구협회 홍보팀 김민수 대리는 “북한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심정적으로는 가장 먼 나라일 수 있다”면서 “우리 선수들이 평양에 머무는 동안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불필요한 압박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1990년 남측 주장 정용환(왼쪽)과 북측 윤정수. [중앙포토]

1990년 남측 주장 정용환(왼쪽)과 북측 윤정수. [중앙포토]

◆북한이 시간 끄는 이유는=북한 내부적으로 아직 입장 정리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1990년 이후 29년 만에 열리는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인 만큼 준비 과정에서 ‘받아야 할 결재 도장’이 평소보다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초 북한 선수의 K리그 영입을 추진했던 축구 관계자는 “실무자 선에서 순조롭게 합의한 내용이 윗선에서 반려되는 상황을 수도 없이 많이 겪었다”고 했다.
 
‘북한 축구의 성지’로 여겨지는 김일성 경기장에서 북한이 한국에 크게 질 경우 후유증을 우려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년 전 여자 축구대표팀이 같은 장소에서 남북 대결을 벌였는데 당시엔 1-1로 비겼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정신적·신체적으로 흔들기 위한 시나리오로 볼 수도 있다. 2차 예선에서는 각 조 1위 8팀과 2위 중 상위 4팀이 최종예선 진출 자격을 얻는다. 조 2위에 도전하는 북한으로선 유력 1위 후보 한국을 뛰어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괴롭히는 게 유리하다. 벤투호의 준비 기간을 줄일수록,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을 늘릴수록 북한에 유리할 수 있다.
 
평양에서 정상적으로 경기가 열린다면 북한축구협회가 징계를 포함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이 스포츠를 통해 국제 사회와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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