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이영종 기자 사진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북한의 달라진 재난 대처…“군부 의존 벗어나야”

중앙일보 2019.09.20 00:04 종합 26면 지면보기

김정은의 ‘태풍 정치’와 드러난 한계점

태풍 ‘링링’이 북한에 상륙하기 하루 전인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상확대회의 열었다. 김 위원장은 ’위험이 닥치는데 안일한 인식에 포로돼 구태의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참석 간부를 질책했다. [연합뉴스]

태풍 ‘링링’이 북한에 상륙하기 하루 전인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상확대회의 열었다. 김 위원장은 ’위험이 닥치는데 안일한 인식에 포로돼 구태의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참석 간부를 질책했다. [연합뉴스]

재난에 대처하는 북한의 태도가 달라졌다. 체제 이미지에 부정적인 피해 상황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던 구태에서 벗어나 적극 알리고 수습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사전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예방조치’에 관심을 보이고 나선 대목도 눈길을 끈다. 지난 7일 북한 지역을 휩쓴 13호 태풍 ‘링링’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지휘봉을 잡고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모습은 김정일 집권 시기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북한 관영매체가 쏟아낸 보도 가운데 적잖은 부분이 김정은 체제 찬양·선전에 맞춰지는 한계가 있지만, 과거와 다른 재난 대비와 대응은 전향적이고 발전된 양상이란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재난 방지와 수습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태풍 링링이 할퀴고 간 흔적을 짚어보며 바람직한 평양판 재난 대처 방안을 진단해 본다.
  

태풍 ‘링링’ 하루 전 비상확대회의
“안일한 인식에 포로돼 버려” 질책

TV 재난방송은 실시간 피해 보도
대홍수에 속수무책 김정일과 달라

기상정보·돼지열병 남북협력 거부
핵·미사일 비용 재난방지에 써야

13호 태풍의 진로가 북한 황해도 쪽으로 향할 것이란 예보가 나온 지난 6일 오전 평양. 군 최고사령관을 겸하는 김정은의 지시로 노동당 중앙군사위(위원장 김정은) 비상확대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인민복 차림의 김정은 뒤편으로는 태풍의 한반도 진로와 북한 지역별 예상 강수량이 적힌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다. 태풍 링링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적인 비상재해 방지대책 토의’가 핵심 안건이었다는 게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다. 회의 내용을 상세히 전한 북한 매체들의 보도는 원고지 기준 20매에 달할 정도로 길었다. 그런데 보도 끝부분에 “중앙군사위는 박정천 육군 대장을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새로 임명했다”는 대목이 등장했다. 또 “총참모부 작전총국의 지휘성원들을 해임 및 조동(調動, 자리를 옮김)했다”고 밝혔다. 1년 3개월 만에 전임 이영길에서 포병 출신 박정천으로의 경질이었다. 교체 배경과 관련해 주목되는 건 이날 회의에서 나온 김정은의 언급이었다.
 
당중앙군사위원 뿐 아니라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관련 부처 책임자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작심한 듯 간부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태풍과 관련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한 상황이 닥쳐들고 있지만 당과 정부의 간부들로부터 중앙과 지방의 ‘일군’(일꾼의 북한식 표현으로 일정한 분야의 업무를 담당한 사람을 의미)들에 이르기까지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안일한 인식에 포로되어 속수무책으로 구태의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진행된 회의에서 나온 총참모장과 작전총국 간부 경질 사태를 놓고 우리 대북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비상확대회의 소집이나 진행 과정에서 뭔가 김정은의 심기가 뒤틀리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왔다. 태풍 대비에 대한 군부의 무성의한 보고나 구태의연한 대처 자세가 문제가 됐고, 문책 차원에서 총참모장 경질이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예방’ 쪽에 초점을 맞춘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는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대상과 요소들을 빠짐없이 찾아내 취약지대를 점검하는 등 피해 예방에 대중을 적극 조직 동원하라”고 말했다. "산과 계곡·하천, 낮은 지대와 침수 위험지역, 산사태 의심 구역과 지하공간, 붕괴 위험 건물들에 있는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기 위한 활동도 시급히 조직하라”고 덧붙였다. 우리나 서방 국가의 재난 방지와 예방대책에서 강조되는 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 언급됐다.
 
태풍이 황해남도 해주에 상륙한 7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TV 등은 재난방송을 편성해 실시간 대책과 피해상황을 전했다. 토요일 오후 3시 시작하던 정규방송 시간을 오전 10시로 앞당겼다. 영화 방영으로 시작한 방송은 오전 11시 30분을 넘어서며 ‘태풍경보’란 자막을 내보냈고, 15분 뒤에는 아예 영화를 중단하면서 태풍 경로와 강수량 등을 알렸다.
 
피해 상황도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건물 지붕이 날아가고 가로수가 뿌리째 뽑힌 영상이 방송됐고, 물에 잠긴 사리원 시내를 택시가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장면도 나왔다. 하루 뒤에는 국가비상재해위원회가 나서 "현재까지 5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으며 4만6200여 정보(약 458㎢, 여의도 면적의 157배 수준)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피해 복구에도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전해졌다. 내각과 국가계획위원회 등이 망라된 ‘중앙지휘부’가 구성돼 피해 주민을 위한 식량과 생활필수품·의약품 등이 공급됐고 전력망 복구와 철도 보수가 이뤄졌다고 한다. 총리 출신의 박봉주 국무위 부위원장은 최대 피해지역인 황해남도 지역 협동농장을 돌며 복구상황을 살폈고 주민들을 위로하는 활동을 벌였다는 게 북한 매체의 보도다.
 
재난 방지와 수습에 김정은이 팔을 걷어붙인 모습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권력을 세습 받은 김정일은 이듬해부터 잇달아 큰 홍수가 들이닥쳐 결국 대량 아사 사태(우리 정보 당국은 46만명으로 추산)까지 맞았다. 당시 북한은 피해 상황을 수습하지 못했고, ‘큰물피해대책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집권 초반 체제 존립의 위기로까지 치달은 재난은 김정일에게 그야말로 악몽 자체였다. 김정은의 경우 집권 첫해인 2012년 여름 15호 태풍 ‘볼라벤’의 직격탄을 맞았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의 경우 볼라벤 학습 효과에다 어린 시절 스위스 유학 때 경험했을 서구식 재난 예방에 대한 인식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정권 수립을 전후해 수해나 가뭄·태풍 같은 재해 방지나 대책을 최고지도자의 업적으로 선전하는 입장이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5월 김일성이 첫 삽을 떴다는 보통강 개수(改修)공사가 대표적이다. 대동강의 제1지류인 보통강은 평양 시내 중심부를 활처럼 휘어져 흐르며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입혔다. 55일 동안의 준설작업과 수로 변경을 통해 강이 곧바로 흐르게 만들어 피해가 크게 줄어들었고, 북한은 아직도 이를 김일성의 업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체제의 폐쇄성이 커지면서 점차 피해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소련과 동구권 붕괴, 한·중 수교로 북한 관련 비밀 문건이 공개됐는데, 이 가운데에는 북한이 홍수나 태풍 등 재난으로 입은 피해를 감춘 채 우방국에 복구 지원과 식량·물자 제공을 은밀하게 요구하는 정황이 담긴 경우가 적지 않다.
 
자연재해와 재난에 대처하는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당국의 입장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와의 공조와 남북협력이 긴요하다. 태풍의 경우 관련 이웃국가와 기상정보를 공유하는 게 효율적인 대응에 필수적이다.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의 기상수문국을 비롯한 기관의 장비·기술은 낙후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은 남북 간 정보교류와 소통에 인색하다. 북한 지역을 휩쓴 데 이어 우리 접경지역에 창궐하기 시작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경우도 북한은 공동방제 제안을 거부했다.
 
여전히 군(軍)에 의존하는 방식도 문제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상확대회의에서 "피해방지 투쟁에서 인민군대가 주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인민군대가 누구도 대신 못 할 나라의 억센기둥으로 (자연재해 대비) 역할을 단단히 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대 수령으로 물려받은 ‘선군(先軍)정치’나 자신이 주창한 ‘경제-핵 병진노선’이 결국 한계를 드러낸 이유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군부 출신인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을 앞세운 대미외교가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좌초한 것도 마찬가지다. 당장 편하고 힘이 실리는 방법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언제까지 군부의 손에 맡겨 둘 수 없는 일이다. 핵과 미사일에 쏟아부었던 자금이 산림 조성과 강·하천 준설, 재해 방지 장비와 시스템 구비 쪽으로 쓰일 때 정상국가로의 길은 열리게 된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배너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이메일 받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