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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늙은 개가 내 곁을 떠나기 전에..." 노견과의 일상 그린 작가

중앙일보 2019.09.19 11:44
정우열 작가와 반려견 '풋코' [사진 정우열]

정우열 작가와 반려견 '풋코' [사진 정우열]

 
"개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요. 인간처럼 과거나 미래에 얽매여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진리를 개는 알고 있는 거겠죠"

<노견일기> 정우열 작가 인터뷰

 
만화 작가 정우열 씨는 7년 전, 반려견 2마리와 행복하게 살고 싶어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 왔다. 함께 뛰어놀던 새끼 강아지들은 어느새 노견(老犬)이 됐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16살 '풋코'만이 곁에서 남은 생을 보내고 있다.  
  
정 씨는 풋코가 세상을 떠나기 전, 풋코를 만화에 담아내기로 했다. '올드독'이라는 필명으로 노견 '풋코'와의 일상을 카툰으로 그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어느새 블로그는 1만명, 인스타그램은 2만 2000명이 팔로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번 달엔 블로그에 올린 카툰을 모은 그림책 '노견일기'을 출간했다. 많은 반려인이 책을 보며 울고 웃었다.  
 
성악가 조수미는 "올봄 내 반려견이 19세 나이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상실감은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내가 겪은 것만 같은 풋코와의 일상을 덤덤히 전하는 노견일기를 보며 큰 위로를 받았다"고 서평에 썼다. 
 
'노견일기' 일부 장면. [그림 정우열]

'노견일기' 일부 장면. [그림 정우열]

  
 
'노견일기'를 그린 계기가 있나요?
개가 늙어가고 제 곁을 떠나는 과정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록한 일은 오래, 자세히 기억하는데 기록하지 않은 일은 기억이 점점 흐려지더라고요. 개와 지낸 시간이 제게 소중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잊지 않고 싶어요.  
 
제주에서 개와 함께 산다는 건 어떤 일인가요?
일단 함께 갈 수 없는 곳이 많아요. 유명 관광지나 바다는 입장이 제한돼 있어요. 숲이나 오름은 자유로운 편이지만 어마어마하게 많은 진드기가 살고 있어서, 방심한 채 데려갔다간 밤새 수천 마리 진드기를 떼어내는 노동을 하게 됩니다. 뱀도 주의해야 하고요. 대자연은 기대와는 달리 무서운 곳이죠. 그래도 살아보는 걸 추천합니다. 대도시에선 경험할 수 없는 평온함을 반려견과 사람 모두 만끽할 수 있거든요.
 
제주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반려견 '풋코' [사진 정우열]

제주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반려견 '풋코' [사진 정우열]

 
제주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풋코' [사진 정우열]

제주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풋코' [사진 정우열]

 
노견과 산다는 것은 어떤 즐거움이 있나요?
어린 개, 강아지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존재죠.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애가 누군지 잘 몰라요. 안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늙은 개는, 나와 함께 늙어온, 서로 가장 잘 아는 존재일지 몰라요. 합이 잘 맞고, 언제나 서로에게 위로가 돼요. 늙은 개를 입양한 경우 이런 부분을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대신 늙은 개는 지혜롭다는 미덕을 경험할 수 있어요. 늙은 개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와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라는 말을 했던데요.
저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유제품, 계란, 어류는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으로 살아온 지 10년쯤 되었어요. 개를 사랑하면서 소와 돼지를 먹어도 좋은가 하는 고민이 그 시작이었죠. 제가 지금 제주도에 사는 것도 개들과 헤엄치는 즐거움을 찾다 보니 그리된 것이고요. 저는 동물복지와 지구환경보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개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노견일기' 일부 장면. [그림 정우열]

'노견일기' 일부 장면. [그림 정우열]

 
키우던 개를 떠나보낸다는 건 큰 슬픔인데, 그런데도 우리가 개를 키우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저보다 더 경험이 많은 선배들께 여쭤봐야겠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개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고, 한 마리를 떠나 보냈으며, 이제 남은 하나와 작별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풋코마저 제 곁을 떠난 후에 다시 개를 키울 수 있을지 지금은 자신이 없어요. 개를 떠나보내고 다시 개를 키우는 분들, 이별의 고통을 경험하고도 다시 사랑할 용기를 내는 분들로부터 분명 배워야 할 게 있겠죠.
 
'노견일기' 일부 장면. [그림 정우열]

'노견일기' 일부 장면. [그림 정우열]

 
연재물을 보면 '반려동물 출입 금지' 가게가 많아서, 애먹은 일화들이 나와요. 이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죠. 돈도 시간도 많이 들고, 걱정거리도 많고, 전혀 생산적이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점점 늘어 갑니다. 어째서일까요? 저는 이것이 현대인의 중요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삶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해왔고,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인간 삶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반려동물을 동반했다고 해서 어딘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건 명백한 차별입니다. 아직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어요. 인종에 따른 차별, 성별에 따른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대다수 사람이 낯설게 생각했던 것도 그리 먼 과거는 아니죠.
 
반려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단계의 삶에서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사회에서 약점이 되곤 합니다. 동물을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어딘가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폐가 되는 존재인 것처럼 취급받곤 하죠.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약자들을 도왔다면, 중요한 순간에 그들이 우리를 도울 거라고 믿고 있어요.
 
정우열 작가와 반려견 '풋코' [사진 정우열]

정우열 작가와 반려견 '풋코' [사진 정우열]

반려견 '풋코'가 산책하는 모습. [사진 정우열]

반려견 '풋코'가 산책하는 모습. [사진 정우열]

 김화정 kim.hwa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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