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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번호 ‘264’ …기억하자, 청포도 시인의 치열했던 독립운동

중앙일보 2019.09.19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57)

수인번호 264가 새겨진 이육사의 모습. [사진 송의호]

수인번호 264가 새겨진 이육사의 모습. [사진 송의호]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맘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쎄멘트 장판 우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을까
 

‘이육사의 벽’에 적힌 성경 구절

대구 삼덕교회에 마련된 부조 동판 ‘이육사의 벽'.[사진 송의호]

대구 삼덕교회에 마련된 부조 동판 ‘이육사의 벽'.[사진 송의호]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1904∼1944) 선생이 남긴 ‘황혼’이란 시의 일부다. 감옥의 스산한 분위기가 전해진다. 이 시는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교회 1층 ‘이육사의 벽’에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그 벽면 위에 성경 한 구절이 적혀 있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진 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히브리서 13장 3절)
 
절로 숙연해진다. 무슨 일일까. 시인은 이원록이라는 본명보다 이육사라는 필명으로 더 친숙하다. 이육사를 아는 사람치고 그 이름이 수인번호였던 ‘264’에서 비롯되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1927년 그가 갇혔던 감옥은 어딜까. 그 장소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로 대구형무소다.
 
경북 안동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난 이육사는 1920년 가족 모두가 대구 남산동으로 이사한다. 때는 일제강점기. 그는 이후 일본과 중국에서 공부한 뒤 1927년 여름 귀국한다. 그해 10월 이육사는 ‘장진홍 의거’로 대구형무소에 갇힌다. 형무소 위치는 경북대병원 인근 중구 공평로 22. 형무소 자리엔 이제 교회가 들어섰다. 대구형무소는 1910년부터 운영돼 일제 치하에서 독립지사와 신사참배를 거부한 기독교인 등이 투옥됐다.
 
장진홍 의사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을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된 뒤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자결(自決)한다. 이육사도 이 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것이다. 시인의 첫 투옥이다. 그의 ‘황혼’이란 시도 당시 쓰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형무소는 1912년 대한광복회 박상진 총사령관이 사형 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대구시 중구 공평로 22 삼덕교회. [사진 송의호]

대구시 중구 공평로 22 삼덕교회. [사진 송의호]

 
삼덕교회는 60주년을 맞은 2015년 교회 기념관과 함께 ‘이육사의 벽’을 조성했다. 벽면을 따라 옆으로 길게 부조(浮彫)로 동그란 안경을 쓴 시인의 초상화와 시 ‘황혼’, 나비가 날아드는 감옥의 창살, 감옥의 전경 등을 새겼다.
 
시인은 1929년 5월 증거 불충분으로 감옥에서 풀려난다. 그는 1930년 『별건곤(別乾坤)』에 ‘대구사회단체개관’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대구 이육사(大邱 二六四)’라는 이름을 처음 쓴다. 27세 때다. 이육사는 40년 짧은 생애 동안 17차례 피검과 감금, 고문, 구속, 투옥을 거듭하며 독립 투쟁을 벌이다가 1944년 1월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했다.
 

근대골목투어에 빠져 있는 대구형무소

대구 중구청은 근대골목투어에 대구형무소와 이육사의 이야기는 빠뜨리고 있다. 거기다 대구 중구 남산동 이육사가 살았던 집도 재개발로 최근 철거됐다. 이육사의 벽을 보면서 기억해야 할 역사를 다시 떠올린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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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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