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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소미아, 한·미 관계 큰 틀에서 풀어야

중앙일보 2019.09.19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황준국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황준국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일본을 겨냥했던 문재인 정부의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미국을 자극함으로써 문제가 복잡하게 됐다. 미국 정부가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했고 실망의 대상을 ‘한국’ 대신 ‘문 정부(Moon administration)’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부는 일본이 수출 규제를 철회하면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일본은 “두 사안은 별개”라고 반응했다.
 

방치 땐 한국 불리, 일본 유리해져
한·미 협의 후 일본에 메시지 내야

문제는 한·일간에 싸움이 커지는 와중에 안보 이슈인 지소미아를 건드림으로써 한국 측이 결정적으로 불리해졌다는 데 있다. 제삼자인 미국이 일본 편을 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일본과 각각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한·일이 과거사나 경제 분야에서 갈등이 생기면 미국이 중립을 지킬 수 있지만, 군사 안보 영역에서는 중립을 지키기 어렵다. 그 선을 한국이 먼저 넘은 셈이다.
 
2010년경부터 중국은 축적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적극적 외교를 시작했다. 이때 미국은 세계 전략의 중점을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기는 ‘재균형’ 전략을 추진하는데, 그 중심에 ‘한·미·일 동맹’ 강화가 있었다. 당시 미국은 북핵에 대해서도 협상보다 압박으로 기조를 전환했다. 소위 ‘전략적 인내’의 핵심도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의 강화였다. 그래서 이를 방해하는 한·일 과거사 갈등의 해소가 워싱턴의 주요 관심사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일은 2016년 지소미아를 체결했다. 미국에 지소미아는 한·미·일 삼각 안보 공조체제의 약한 고리인 한·일 간을 겨우 연결해 놓은 정치적 상징성이 컸다. 2017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로 지소미아의 군사적 유용성도 높아졌고, 미·중 경쟁 구도가 고착화하면서 지소미아의 의미는 더 뚜렷해졌다.
 
한국 정부는 ‘원래 약했던 한·일 안보 고리를 붙였다 뗀 것이 무슨 대수냐’고 주장하겠지만, 미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이가 안 좋아 계속 따로 살았으면 모르겠지만, 같이 살다가 이혼하면 충격이 큰 법이다.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하려면 미국이 알아듣도록 설명을 잘해야 했는데 미 국방부 차관보는 “그 결정에 대해 사전 경고를 받지 못했다”고 공개 언급했다. 한마디로 대미 외교의 실패 사례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한·미 관계를 해칠 의향이 아니었다면 정부가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11월 22일 지소미아 종료 확정 시점까지 시간이 있다. 지소미아가 종료됐다고 해서 갑자기 미국이 한·미 동맹을 경시하거나 한반도 밖으로 ‘신(新) 애치슨 라인’을 긋는 등 과격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서 특별한 지정학적 의미를 갖고 있어서다.
 
그러나 11월 22일 이후 미국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오판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말을 행동으로 옮길 수단을 많이 갖고 있다. ‘실망’에 상응하는 움직임도 있을 것이다. 언행이 가볍다는 지적을 받아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성향과 미국의 전략적 행보를 구별해서 봐야 한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사랑한다면서도 김정은이 가장 괴로워하는 대북 제재를 조금도 풀지 않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옐로카드를 보였음에도 지소미아 종료가 확정되면 한국에 불리하고 일본에 유리한 형국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일방적으로 되돌리기에는 나라의 체면이 문제다. 그렇다고 한·일 관계의 틀에서 풀기에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는 한·미 관계라는 큰 틀에서 풀어야 한다. 미국과의 심층 협의를 통해 지소미아 종료를 철회하면서 한·미 공동으로 일본에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수습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방향을 틀면 일본도 대치 국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황준국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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