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 인터뷰] '과유불급 대한민국' 출간한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2019.09.19 00:01
국제정치·세계경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최근 활약이 두드러진 공공지식인 목록인 ‘100명의 선도적 글로벌 사상가(100 Leading Global Thinkers)’를 매년 발표한다. 공공지식인은 대부분 칼럼을 쓴다. 프랑스 철학자 레몽 아롱(1905~1983),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2008) 폴 크루그먼도 칼럼니스트다. 영어 외래어 칼럼은 한자어로 기고문·시사평론·시평이다. 칼럼니스트는 글쓰기의 정상에 올라간 ‘글의 장인’이다. 칼럼니스트를 세분하면 여행 칼럼니스트, 음식 칼럼니스트, 정치 칼럼니스트 등이 있다. 최근 '권력 감시 칼럼니스트' '대통령 전문 칼럼니스트'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가 [과유불급 대한민국]을 출간했다.

"한국은 지금 조국 문제로 사회적 내전 중"
조국만이 검찰개혁 적임자?
그들만의 우스꽝스러운 신화일 뿐
윤석열 총장 전격 해임 가능성
국민 스타로 총선 변수 될 것


33년 동안 대통령·국회의원·장관 등 정치권 인사들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해온 전영기 기자는 정부가 국민통합에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3년 동안 대통령·국회의원·장관 등 정치권 인사들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해온 전영기 기자는 정부가 국민통합에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붓이 칼보다 무서울 때가 많다. 칼럼니스트는 '펜으로 국가와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덤비는 권력자'다. 글은 상처를 입힌다. 전영기 칼럼니스트는 [과유불급 대한민국] 서문인 '2019년 8월 15일, 내가 보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용서'를 구했다.
 

"1987년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이 아닌 촌철활인(寸鐵活人) 하는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중앙일보의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달고 2016년 1월 1일부터 2019년 8월 15일까지 매주 써 내려간 1321일의 기록을 돌이켜 보니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을 다치게 했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전영기 기자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에 입사한 후 정치부장, 중앙SUNDAY 편집국장, 중앙일보 편집국장, JTBC 저녁뉴스 앵커, 칼럼니스트 등 굵직굵직한 자리에서 활약했다. 전영기만큼 우리 정치 세계의 비사와 이면을 속속들이 아는 기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기자로서 그만큼 성공하기 힘들다. 그의 성공 비결은 뭘까. 열정과 분노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열정과 분노가 낳은 글은 애독·절독의 변수다. 이번 [과유불급 대한민국] 또한 논란을 부를 것이다. 1시간 반 동안 인터뷰했다. 다음이 요지다.


[과유불급 대한민국]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은밀한 권력 세계에 잠입해 취재한 결실이다. 1차 고급 자료다. 저자로서 책을 ‘셀프 평가’한다면?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책이다. 몸에 착달라붙는 편안한 평상복을 입고 길거리에 나간 느낌으로 썼다. 2006년에 [2007년 대선 승자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썼다. 양적 방법론과 권력자·소비자·관찰자라는 권력 변수로 대권 향방을 분석했다. 이번 책은 질적 방법론을 활용했다.
 
[과유불급 대한민국]의 효용은?
대한민국은 지금 심각한 국론 분열로 사회적 내전 상태다. 양극화된 두 마음을 진정시켜 공통의 기반을 찾는 데 이 책이 기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출판사들은 요즘 칼럼집을 잘 안 낸다
지식공작소 박영률 대표가 출간을 먼저 제안했다. ‘전영기 기자의 칼럼 글을 바탕으로 단행본을 내고 싶다’고 했다. 주저했다. ‘기자의 글은 하루만 지나도 죽은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은 지금 이 순간 팔팔 뛰는 활어(活魚)여야 한다. 박 대표가 ‘전영기의 4년 전 글도 오늘 살아 있다’고 설득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메시지도 박 대표가 제시했다. 저는 정서적으로 과유불급과 거리가 있다. 다혈질이고, 판단이 급하고··· 후회도 한다. 그런데 이제 엄중히 느낀다. 우리 사회가 갈 길은 과유불급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칼럼니스트 전영기는 정치·권력 전문기자다. 권력의 정점은 대통령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전문기자’다.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유능과 무능이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이 아닐까
그렇다. 일단 대통령은 유능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인간 가치의 소중함 일깨웠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 장관 등이 9월 10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현장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 장관 등이 9월 10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현장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금 대통령은 어떤가?
유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유능은 몇 가지 과목으로 나뉘어 평가된다. 국민통합· 경제·외교안보·문화창달 같은 과목이 있다. 그중 제일 큰 것은 국민통합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국민통합 과목은 민심 과목이다. 공자님은 식량과 군사와 백성의 믿음 중에서 부득이 하나씩 버려야 할 상황이라면, 군사·식량, 백성의 믿음 차례로 버리라고 했다. 지도자가 백성을 지켜 준다는 믿음, 그 믿음을 상실하면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다. 민심 과목에서 점수를 따면, 다른 것은 실패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

안보를 보자. 사방에서 승냥이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 우리는 친구 없이 캄캄한 사막에 혼자 서 있다. 경제를 보자. 실업자 수는 사상 최고로 110만 명에 달한다. 무엇보다도 먹을거리가 없다. 정부가 만들어 낸 새로운 부문의 먹을거리는 하나도 없다. 있는 먹을거리라도 없애지 말아야 하는데 원자력을 없애려고 한다.

군사와 식량은 실패해도 좋다. 현 정부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남북 평화 시대를 열기 위해서···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평등’이라는 가치와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위하여··· 저는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가 국민의 믿음을 파괴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현 정부는 국민통합 과목에서 실패했다. 불행히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조국 신화'에 갇힌 사람들, 스스로 속이고 있다

2009년 5월 24일자 [중앙SUNDAY] 표지. 당시 [중앙SUNDAY] 편집국장이었던 전영기 기자는 1면부터 21면까지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을 조명하기 위해 동료기자들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5월 24일자 [중앙SUNDAY] 표지. 당시 [중앙SUNDAY] 편집국장이었던 전영기 기자는 1면부터 21면까지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을 조명하기 위해 동료기자들을 진두지휘했다.

현 정부는 어떤 면에서 국민통합 과목이 낙제점인가?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은 세 가지 문제가 있지 않은가. 딸아이의 대학·의전원 입학 과정, 학원 재단 운영의 사유화 의혹, 사모펀드 문제. 세 가지 모두 조국 장관이 핵심으로 등장한다. 특히 사모펀드에 직접 관련됐다. 조국 장관 임명은 좌파·우파, 보수·진보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거짓의 문제다. 오죽하면 집권 세력 내부에서 ‘문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현 정부 지지세력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있다. 이념이나 입장을 떠나 민심에 역행하고 있다. 조국 장관이 초래한 이슈는 상식의 문제다. 좌우 싸움이 아니라 거짓과 사실의 싸움,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다. 그저 상식을 회복하자는 보편적 국민의 열망이 무시당하고 있다.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 다투는 정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한 건 없나
정말 잘한 게 있다. 문 대통령은 인간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 줬다. 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치적 구호로 아무리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이라도 인간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가장 높은 가치와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웠다. 정치적 구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정책에서도 실천하고 있는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설움받던 사람들에게 ‘이제 좀 살 만하네’라는 느낌을 주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앞으로 20~30년간 장기집권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내부 판단의 근거다. 그런데 아직은 느낌일 뿐 실제로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감정과 느낌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좋은 치적이다.

조국 장관이 논란 속에 임명됐지만 의외로 잘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사법개혁·검찰개혁 적임자라는 신뢰가 있다
현 여권 사람들과 지지자들은 뭐랄까, 스스로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조국 장관이 사법개혁·검찰개혁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신앙이 있다. 과연 그럴까. 조국 장관은 혹시 ‘벌거숭이 임금님’은 아닐까. ‘너무 아름다워. 비단옷을 입고 있으시잖아’ ‘저분은 검찰개혁을 하는 중이야.’ ‘좀 문제가 있어도 사법·검찰 개혁은 좋은 거 아니야?’ 많은 사람이 일부러 속고, 모르고 속고 있다.

검찰이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그렇다. 많은 국민이 ‘검찰은 나쁘다’라고 인식한다. 사실 검찰은 나쁜 짓을 많이 했다. 하지만 종로에서 시민을 붙잡고 이렇게 물어보자. ‘지금 당장 우리나라에서 무엇을 고쳤으면 좋겠습니까?’ 과연 ‘검찰이 너무 방만하다. 개혁해 달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먹고살게 해 달라’ ‘안보를 잘해 달라’ ‘나라가 좀 불안하다’ ‘일자리를 갖고 싶다’ 이런 말들이 대부분 아닐까. 검찰개혁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정치권의 어젠다일 뿐이지 일반 민중의 어젠다가 아니다.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게 했다'는 국민·유권자도 많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매우 애도하는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그날…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그날 저는 [중앙SUNDAY] 편집국장이었다. 1면부터 21면까지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분투했다.

현 집권세력은 노 대통령의 비극이 검찰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해 서거했다’는 것이다. 맞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오늘날 한국의 가장 중요한 개혁이 검찰개혁이다? 그렇진 않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검찰 탓’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신화가 잘못됐다면, 그 신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세상을 다룰 때 공정해야 한다. 큰 문제는 크게 보고 작은 문제는 작게 봐야 한다. 대한민국 검찰, 문제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문제 순위로 보면 100위라고 본다. 경제·실업·일자리·국민통합 등 산적한 문제가 많다. 민생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검찰개혁이라는 신화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일은 ‘조국만이 검찰개혁을 할 수 있다’이다.

검찰개혁은 입법부가 하면 된다. 행정부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작다. ‘조국만 가능하다’는 설득력이 없다. 많은 국민이 ‘검찰개혁보다 더 중요한 개혁이 있고 또 검찰개혁을 한다고 해도 꼭 조국 장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자유와 개인 가치 훼손하는 통일은 안 하는 게 나아

이승만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통일에 관심이 없었던 대통령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 또한 북핵 문제 해결을 넘어 통일에 ‘올인’하는 것 같다. 중국이라는 국제체제의 블랙홀에 우리나라가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다른 개혁도 중요하지만 ‘통일을 위한 개혁’이 1순위로 필요하지 않을까
왜 지금 통일을 해야 하는가. 통일엔 조건과 시간과 단계가 있다. 지금 분단 상태인데도 우리나라는 중국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중국이 블랙홀이라는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이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중국에 꿀리고 산 적이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부와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매우 강력한 체제 속에서 잘 살아왔다. 우리가 중국에 흡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문재인 정권 들어와서부터 생겼다고 본다.

평소에 김환영 기자를 매우 존중하지만, 통일과 민족에 관한 견해는 나와 다르다. 물론 통일이 우리의 궁극적인 미래인 것은 맞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고 미국, 일본과 멀어진 채 극심한 국론 분열 상황에서 통일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통일이 가시적인 과제로 등장하려면 어떤 전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가?
북한의 인권과 자유, 전체주의적 지배체제 문제를 해소하는 자유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베트남의 ‘중간 수준의 자유화’는 성취돼야 한다. 공산주의 사회지만, 베트남 언론만 봐도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다. 지금의 북한과 통일하려면 그 체제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또 우리의 가치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이 70여 년간 지켜 온 자유와 개인의 소중한 가치를 양보하면서 통일하자는 건 반대한다.
 
남북 국가연합 형식이건, 남북 연방이건 통일을 일단 멀리 미룬다면, 가까운 미래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화공존이 제일 좋다. 남북이 평화공존 하는 가운데 필요하면 때로는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든가, 때로는 중국과 손잡고 일본을 견제하면 된다. 때로는 미국과 손잡고 북·중에 저항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조합이 있지 않은가. 저는 결코 통일에 반대하지 않지만, 현 단계에서는 우리의 절실한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월이 필요하다. 현 단계에서 우리와 북한은 ‘인간의 무게’에 대한 권력의 판단이 다르다.
 
이번 책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후한 평가를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진영의 대통령으로 시작했지만, 국가의 대통령으로 변신하였다는 점이다. 제일 큰 업적은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한 것이다. 우리의 안보 반경을 넓혔다. 대단하다. 또 한·미 FTA로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왜 한·미 FTA를 체결해 미국이 손해 보게 하였느냐’며 저항하게 할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은 뛰어난 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예시했다.
 

살아 있는 권력 쳐야…죽은 개는 걷어찰 필요 없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미확인 장소에 설치된 다연장 로켓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사/AP]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미확인 장소에 설치된 다연장 로켓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사/AP]

전영기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모두까기 인형’처럼 전방위로 공격한다. 공격 기준은 무엇인가?
살아 있는 권력을 치는 것이다. 기자는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기자의 본령은 ‘죽은 개는 걷어차지 않는다’는 정치·언론 속설을 따르는 것이다. 죽은 개를 걷어차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기자 생활 33년간 지켜보니 권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괴물이다. 권력은 무조건 치고 봐야 한다. ‘왜 야당은 호되게 때리지 않느냐’고 묻는 독자도 있다. 물론 저도 야당을 때린다. 그런데 야당은 비판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냥 작다. 그들은 우리 삶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은 가만히 놔두면 우리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영향을 준다. 저는 본능적으로 권력을 공격한다. 공격이 매뉴얼화되어 있다.
 
프로이센 군사 이론가 카를 클라우제비츠(1780~1831)는 정치와 전쟁을 연장선상에서 파악했다. 혁명적 상황에서는 정치가 전쟁에 근접한다
우리는 지금 정치를 하는 것이지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과 달리 정치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런데 전쟁하듯이 상대방을 괴멸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은 ‘심리적 내란’ ‘사회적 내란’ 단계다. 폭력적 내란으로 가서는 안된다. 이를 막기 위해 집권 세력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국 장관 임명 철회가 좋지만, 대통령은 그를 그냥 임명해 버렸다. 어떤 방법으로 대통령의 오판을 회복해야 하겠는지 앞으로 생각해 봐야겠다.

정치가의 특징 중 하나는 고집·소신이다. 대통령들은 왜 국가 원로나 학자들, 국민의 호소를 외면하는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이나 원래는 경청이 장점이었다. 선거제도는 매우 아름답다. 민주주의 선거제도에서는 겸손하고 경청하지 않으면 집권할 수 없다. 집권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인들은 착해야 하고,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런데 집권 순간부터 달라진다. 임기 중에 괴물화되어 가는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통령 본인이 끊임없이 자기의 초심을 되돌아봐야 한다. 초심을 망각하는 대통령은 반드시 실패한다.

북한의 핵개발 의도에 대해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두려워하는 북한이 생존하려면 미국과 협상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전영기 칼럼니스트는 “북핵은 한국을 겨냥한다. 대미용이 아니다”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북핵의 타깃은 한국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체제가 다르며, 한국을 침략한 경험이 있다. 결국 북한의 주적은 한국이다. ‘북한의 주적은 미국’은 거짓말이다.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북핵의 타깃은 1번이 한국, 2번이 미국이다. 북한은 지난 7월부터 단거리 미사일을 10번 넘게 쐈다. 트럼프는 장거리 미사일만 쏘지 않으면 단거리 미사일은 괜찮다는 식이다. 북·미 간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면 핵을 어디에 장착하느냐 마느냐가 문제다. 북한은 핵을 확보했다. 장거리를 못 쏜다. 북·미 간 합의뿐만 아니라 무력의 격차 때문이다. 미국을 겨냥하면 북한은 바로 공격당한다. 남은 것은 단거리다. 북한이 핵을 장착한다면 우리를 향해 쏘는 것이다.

좌우, 보혁 갈등이 심화하는 나라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극좌는 힘들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징하는 미국 모델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마크롱 대통령이 상징하는 프랑스 모델에서는 중도로 움직였다. 한국의 트럼프나 마크롱이 나올 것인가.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조건은 무엇인가
국민통합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김부겸·김두관·송영길이 보인다. 이분들은 통합형이다. 보수 쪽에서는 황교안·나경원도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너무 식상하다. 민주당은 상당한 ‘선수층’이 있는데, 보수 쪽은 선수층이 두껍지 않다.

그렇다면 안철수·유승민 등도 가능성이 있다. 저는 이언주 의원을 주목한다. 그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입장에서 정확한 메시지로 가장 올바른 투쟁을 전개하고 이끌어 갈 자질이 있다. 트럼프보다는 마크롱을 닮은 라인으로 가는 게 좋다고 본다.
 

차기는 여당선 김부겸·김두관·송영길 같은 통합형에 주목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한국 기업이 건설한 바라카원전. 문희철 기자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한국 기업이 건설한 바라카원전. 문희철 기자

새로운 정치 스타 탄생 가능성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주목한다. 지금 정권이 윤석열을 키워줄 수 있다. 이 정권이 그를 전격적으로 해임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1990년대 초반에 마니 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 운동으로 이탈리아 정국을 흔든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윤 총장이 해임되면 내년 4월 총선 정국에 큰 변수가 될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배포가 있다. 다크호스다.

매주 칼럼을 써야 하는데 마땅한 글감이 생각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우선 걷는다. 발이 땅에 닿으면 몸이 유연하게 된다. 그때 가슴에 다가오는 느낌이 뭔지를 생각한다. 꿈도 활용한다. 저는 오래전부터 꿈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꿈에서 깨어날 때 마음이 어떤 지시를 내릴 때가 있다.

인생 백세 시대 개막으로 한참 더 살아야 한다. 미리 묘비명을 정한다면, ‘기자로서 원도 한도 없이 마음껏 할 일 다하고 갔다’는 어떤가?
마음에 든다. 매우 감사하다. 다만 저는 앞으로 에너지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원자력을 없애려 했기 때문이다. 공부하다 보니까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치의 근본은 산업의 산업인 에너지를 살리는 것이다. 쌀·식량·일자리, 4차 산업혁명, 에너지 그 자체···. 이 모든 것이 결국 에너지다. ‘에너지 지정학(geopolitics of energy)’에 흥미가 생겼다. 제가 에너지 전문가로서 기여를 한다면, 묘비명의 ‘기자로서’ 대신에 ‘기자와 에너지 전문가로서’로 고쳐 달라.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강조할 말이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싫은 말이 ‘기레기’다. ‘기레기’란 말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저는 기레기라는 말을 만든 사람을 미워한다. 제가 33년 기자 생활을 했는데, 욕먹을 행동을 했을지 모르지만 쓰레기는 아니다. 검찰 집단, 교육자 집단, 의사 집단, 정치 집단과 비교했을 때에도 기자의 도덕성은 평균 이상이다.

저는 기레기가 아닌 기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중앙·조선·동아는 박근혜 정권이나 보수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다. 중앙·조선·동아는 1980년대 민주화 시대 개막에 기여했다.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가 박종철씨 고문 사망사건을 처음 보도했고, 동아일보가 경찰의 은폐를 폭로했다. 민주화 운동은 여기서 시작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우리 중앙일보 동기들이 한겨레신문사 주주다. 우리 동기들은 첫 월급을 타서 그 일부를 한겨레신문에 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특정 정권이나 진영의 이익에 봉사한 적 없다. 우리는 보수 정권 때도 비판했고, 1987년 민주화 때도 앞장섰다. 우리가 잘한 것은 왜 보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김영삼 정권도 비판했고, 김대중 정권도 비판했다. 박근혜 정권도 강하게 비판했다.

동료 기자 여러분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실은 신성합니다. 미디어는 메시지입니다. 메시지 있는 글을 씁시다. 기자는 독립적입니다. 투쟁하십시오. 거짓에 투쟁하십시오. 살아 있는 권력, 거짓과 싸웁시다. 진영이라는 거짓 환상의 놀음에 끼어들지 맙시다.'

정파적인 독자라면 우리 편을 향한 비판보다는 지지를 바라는 것 아닐까
제 경우에는 누군가를 지지할 수 없다. 기자는 누구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회 집단이 특정 인물을 지지하는 것은 좋다. 기자가 누군가를 지지하려면, 기자를 그만둬야 한다.
 
글 김환영 중앙콘텐트랩 대기자 whanyung@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녹취 정리 박호수 인턴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