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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무당파의 비애

중앙일보 2019.09.18 00:04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그 어떤 이슈보다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고, 분열시켰다. 조국 법무부 장관 얘기다. 586 강남좌파의 이중성, 공정성 문제, 계층의 대물림, 세대 갈등 등 한국 사회의 민낯을 까발렸다. 국민은 이건 불법·합법, 진보·보수 이전에 양식과 염치의 문제라고 했지만,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촛불로 탄생시킨 정부의 배신이다. 물론 흔들림 없는 지지자들은 모든 건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작이라며 ‘실검전쟁’을 불사한다. 추석민심을 청취했다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은 조국 블랙홀을 넘어서길,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길 희망한다”고 말했지만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은 진단일 뿐이다. 애초 이번 사태를 정치 프레임에 가두어 정쟁으로 몰고 간 여권의 책임이 크다. 유체이탈 화법을 쓸 때가 아니다.
 

조국 임명 비판 여론에 귀 닫는 여권
삭발이나 단식 처방밖에 없는 야권
무당층 40% 육박, 씁쓸한 정치 현실

사실 조 장관도 조 장관이지만, 그를 무한 방어해준 명망가들의 태도가 더 실망스러웠다. 국민들의 정당한 분노는 안중에도 없고 예의 선악 이분법으로 ‘대국민 훈수’를 뒀다. 그 정점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있을 것이다. 언론의 당연한 의혹 제기를 “조국만큼 못 가진 기자들의 분기탱천”으로 몰아가더니 “가족인질극”이라고 거듭 우기고 있다. 대학생 시위도 배후가 있다고 몰아붙였다. 장관 청문회에서는 도덕성·국민 정서보다 전문성을 따져야 한다는 ‘합리적’ 지적도 있지만, 그 역시 진보·보수 공평하게 적용되는 잣대여야 맞다.
 
조 장관 임명 후 여러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섰다. 임명 반대가 찬성보다 많았고, SBS 조사에서는 무당층이 40%에 육박했다.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지만 당장 자유한국당으로 가지 않는 중간지대가 늘었다는 얘기다. 이를 놓고 여권은 향후 검찰개혁 성과 등에 따라 집 나간 토끼쯤 얼마든지 다시 잡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무당층을 끌어오겠다”는 한국당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여권의 실책으로 떠먹여 주는 숟가락조차 번번이 걷어차온 그들이다. 김석호 서울대 교수는 한 칼럼에서 “추석 화제에 조국은 올라도 야당은 없었다. 화제에 올릴만한 기대주가 없기 때문이다. (여권에 분노하지만) 유권자는 야당이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보수 야당은 여전히 더 무책임하고 더 낡고 더 무능하며 더 뻔뻔하다”고 지적했다.
 
요 며칠 새 야권 인사들의 ‘삭발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 등 여성 의원들이 포문을 열었다. 그제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 이어 어제는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가 청와대 앞에서 눈물의 삭발식을 가졌다. 한국당 이학재 의원은 단식 농성 중이다. 그러나 삭발과 단식 퍼포먼스가 지지자들에게 결기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제1야당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이것뿐이라는 현실의 확인을 넘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들 뜻대로 중도·무당층, 젊은 세대를 끌어올 수 있을지는 더욱 미지수다. 기껏 열린 청문회에서는 전략 없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조 장관의 키가 180cm인가 185cm인가를 새로운 의혹으로 내놓으며, 50대 독신 여성인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를 청문하며 “출산을 안 했으니 100점이 아니다.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달라”는 모욕적 언사나 일삼으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국정농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여전히 전면에 서 있다.
 
무당파가 되고픈 국민은 없다. 선택지가 없어서 하는 최후의 선택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말처럼 “많은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치는 좌우의 싸움도 아니고 진보 보수의 싸움도 아니고 기득권 엘리트가 보다 나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그들만의 싸움일 뿐이다”. 그런 정치 냉소와 싸우다가, 일순 강요된 무당파가 돼버린 국민만 딱한 노릇이다. 중도·무당층의 향배가 내년 총선을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야당과 기득권을 조직적으로 강고하게 하려는 여당”(김석호)만 있다면 그런 정치공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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