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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오는 ‘R의 공포’…세계는 돈풀기 전쟁

중앙일보 2019.09.18 00:02 경제 1면 지면보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유례없는 경제 위기가 내년에 닥친다. 더 큰 문제는 위기 시 사용할 총알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금리 0.25%P 인하 확실시
트럼프는 마이너스 금리 요구
성장둔화 중국도 인하 시간문제
한국 내달 1.25%로 내릴 가능성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2020년 경제 위기를 강력하게 경고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명성을 얻은 그는 제로 금리 혹은 마이너스 금리에 익숙해진 각국 중앙은행이 다음 위기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점을 우려했다.
 
금리인하

금리인하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도 “내년 세계적인 차원의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이 있다”며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부양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와 앨런 그린스펀도 내년 경기순환적 경기침체를 넘어 구조적 장기 불황을 예고했다.
 
유럽·미국·일본·중국이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를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돈 풀기’ 경쟁을 시작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주 예금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QE) 재개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선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미국과 일본의 추가 금리 인하 여부에 쏠리고 있다. 한국 시간으로 19일 두 나라는 통화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 연준은 17~18일(현지시간)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연 1.75~2%로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연준의 9월 금리 인하 폭은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투자은행 도이치뱅크는 연준이 이달에 이어 오는 10월과 12월, 내년 1월에도 금리를 각각 0.25%포인트씩 낮출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내년 1월 미국의 기준금리는 1~1.25%가 된다. 블룸버그는 “이번 FOMC 기자회견에서는 올해 추가 금리 인하 신호와 위원 중 몇 명이 금리 인하에 반대할지 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육두문자까지 쓰면서 연준에 마이너스 금리를 요구했다. 그는 11일 트위터에 “멍청이들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연준은 금리를 제로(0)나 그보다 더 낮춰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마이너스 금리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미국의 마이너스 금리 도달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 기준금리 추이

한국 기준금리 추이

◆일본, 엔화강세에 통화 완화 시사=일본은 19일 통화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인하 여부를 논의할 전망이다. 2016년부터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일본은행(BOJ)이 추가 금융완화를 고려하는 이유는 ‘엔화 강세’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2년 집권 이후 적극적인 금융완화를 기조로 한 ‘아베노믹스’로 엔화가치를 달러당 80엔대에서 120엔대까지 떨어트렸다. 엔저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일본 기업들의 수출 증대로 이어지면서 단 5년 사이 일본 기업 순이익은 2.6배, 닛케이지수는 2배 이상 상승했다. 그러나 미·중 무역갈등과 세계 경제 후퇴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성향이 커지며 엔화 약세 기조는 흔들리고 있다. 달러화 대비 엔화가치는 9월 초 104엔으로 올랐다가 현재 107~108엔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7월 통화정책 성명에서 “2%의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는 추세가 흔들릴 경우 주저 없이 추가 통화 완화 조치할 것”이라고 밝히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마이너스 금리 인하 폭 확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추가 금리 인하는 정책 옵션에 반드시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 등 올해 30개국 금리 인하 … 환율전쟁 번질까 우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중국 8월 산업생산, 소매판매, 누적 도시지역 고정자산투자(FAI)는 모두 전문가 예상치를 하회했다. 특히 8월 산업생산은 17년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리커창 총리는 앞으로 ‘바오류(保六·6%대 경제성장률 사수)’ 목표를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만큼 인민은행이 연말까지 금리 인하 압력을 버티긴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신흥국도 잇달아 금리를 내리고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연말까지 역대 최저 수준인 6%의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내릴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 중앙은행이 현재 8% 수준인 기준금리를 오는 19일 0.25%포인트 낮출 전망이다.  
 
한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까지는 한 달 가까이 남았다. 한은은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개최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10월에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인하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1.50%인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치인 1.25%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미 8월 금통위는 추가 인하 가능성을 드러내는 신호를 보냈다. 지난달 30일 금통위는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지만 7명의 금통위원 중 2명이 이미 금리 인하를 주장했다. 10월 금통위에서 2표만 더 확보하면 기준금리 인하가 결정된다.
 
8월 금통위 직후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세계 경제의 침체 가능성, 소위 ‘R의 공포’가 부쩍 늘어나는 게 작금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30개가 넘는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NYT는 금리 인하가 경기 침체를 막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 전망하면서도,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내수 소비와 대출을 이끌어낼 여지가 줄어든 점을 우려했다. 자칫 국제적인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제러미 스타인 전 연준 이사는 “각국 중앙은행은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통화가치 하락의 혜택을 먼저 얻는 일종의 ‘완화 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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