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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불리할 때마다 피의사실 공표죄 법안 냈지만…논의는 단 4일

중앙일보 2019.09.17 16:59
 2009년 2월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의에서 고 박상천 민주당 의원이 김경한 법무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9년 2월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의에서 고 박상천 민주당 의원이 김경한 법무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피의사실 공표죄 관련 두 건의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검찰이 ‘논두렁 시계’ 등 망신주기식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을 사망으로 내몰았다는 의혹을 받던 때였다. 고 박상천 당시 민주당 의원과 이한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약 한 달 간격(9월과 10월)을 두고 관련 법안을 제출했는데, 법안의 초점은 달랐다.
 
민주당의 당론이었던 박 전 의원 법안은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처벌 수위를 징역 5년 이하 또는 자격정지 7년 이하로 각각 2년씩 상향하는 내용의 처벌 강화가 핵심이었다. 다만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따른 피의자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오보에 대해 검찰총장 등이 정정·반론 보도 청구를 하도록 했다. 고위 공직자 등의 수사는 수사 상황을 발표할 수 있도록 예외도 뒀다.
 
반면 이 전 의원의 법안은 처벌 강화 대신 피의사실 공표죄 처벌의 예외를 분명히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검찰총장 등의 지시에 따라 피의사실을 공표한 경우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박 전 의원의 법안은 피의자의 인권 침해를 막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면, 이 전 의원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데 무게 중심을 뒀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각 당이 피의사실 공표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법안에 담겨 있다.
 
2009년 '논두렁 시계' 관련 보도[사진 KBS, SBS]

2009년 '논두렁 시계' 관련 보도[사진 KBS, SBS]

18~20대 국회에서는 9건의 피의사실 공표 관련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이런 식으로 법안에는 정당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민주통합당의 박범계 의원과 임내현 의원은 각각 2012년 12월과 2013년 2월 피의사실 공표의 위법성 조각(阻却·죄가 되지 않음) 사유를 명확히 해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는 법안을 발의했다. 2012년은 검찰이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현 무소속)와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를 수사하며 피의사실을 유출했다는 비판을 민주당으로부터 받던 해였다.
 
2012년 12월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은 피의사실 공표죄를 선거관리위원회에도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선관위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캠프 관계자를 불법 선거 운동을 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뒤 보도자료를 냈는데, 박 후보 측이 피의사실 공표라며 비판했던 때였다. 지난 6월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이 피의사실 공표로 명예훼손죄를 범한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낸 법안은 김성태 한국당 의원의 딸 KT 특혜취업 의혹과 관련이 있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피의사실 공표 준칙 개정 추진을 ‘수사 외압’이라고 비판하는 최근 한국당 입장과 사뭇 다르다.
 
딸의 채용 청탁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7월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딸의 채용 청탁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7월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당별로 피의사실 공표 관련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마다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모두 ‘반짝 발의’에 그쳤다. 9건의 법안 중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정 의원 법안을 빼곤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입법의 시작 단계인 소위원회 논의는 18대 국회에서 사흘, 19대 국회에서 하루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법의 실효성 등을 두고 접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18대 국회에선 “수사 사실이 외부에 유출되는 경로는 여러 가지여서 피의사실 공표죄를 강화하는 것만으론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황희철 전 법무부 차관)이라는 반론이 나왔다. 19대 국회에선 임중호 전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피의사실 공표죄 위법성 조각 사유를 특정하면 다른 사유는 제외돼서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있다”, “국민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 등에 대한 수사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은 예외적으로 공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명예훼손죄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 같은 포괄적 조각 사유를 신설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는 등의 의견을 냈다.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선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조응천 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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