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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왜 미국서 초연됐을까

중앙일보 2019.09.17 09:00

[더,오래]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1)

 

우리는 가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교향악의 선율에 귀기울이곤 한다. 때론 그 음악을 기억했다가 시간을 내 다시 듣기도 한다. 음악이 함께하는 삶은 아름답다. 음악평론가가 선곡한 명곡과 그 곡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느리게, 여유있게 클래식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러시아가 낳은 협주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모든 악장이 충만한 영감으로 가득 찬 이 작품은 지금도 세계의 찬사를 받는다. 그렇지만 차이콥스키의 최고의 협주곡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모스크바가 아니라 보스턴에서 초연되었다. 러시아 최고의 협주곡이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에서 초연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우리가 모르는 굴곡진 사연이 있었다.
 

루빈스타인, 차이코프스키 곡에 혹평 

187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있었던 일이다.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러시아의 거장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을 모스크바 음악원의 강의실로 초대했다. 이유는 자신이 만든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차이콥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였으며 루빈시테인은 모스크바 음악원의 원장이었다. 루빈시테인은 그의 형 안톤 루빈시테인과 함께 러시아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사진 Wikimedia Commons]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사진 Wikimedia Commons]

 
그런 루빈시테인에게 자신이 작곡한 회심의 역작을 들려주려는 차이콥스키의 기대는 컸다. 작곡가는 야심찬 구상과 충만한 영감으로 만든 피아노 협주곡에 대해 명피아니스트의 칭찬과 비평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자신이 존경하던 루빈시테인에게 차이콥스키는 심한 혹평을 들은 것이다.
 
루빈시테인은 이 작품의 창의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부정적인 견해를 늘어놓았다. 그는 “이 곡은 피아노란 악기의 특성에 맞지 않으며, 독창성도 부족하다’는 등의 심한 혹평을 늘어놓았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작곡가는 너무도 서운해 강의실을 뛰쳐나와 별실로 들어가 숨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그렇지만 루빈시테인은 거기까지 따라와 부정적인 견해를 계속해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견해대로 음악을 수정하면 직접 초연해 주겠다고 말했다.
 
니콜라이 루빈시테인. [사진 Wikimedia Commons]

니콜라이 루빈시테인. [사진 Wikimedia Commons]

 
후원자였단 폰 메크 부인에게 쓴 편지를 보면 이때의 평가에 대해 작곡가가 무척이나 서운해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가 만든 최고의 협주곡이 발표되기도 전에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 상황을 두 대가의 기 싸움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수정 여부였다.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작품에 대해 확신을 가졌던 차이콥스키는 작품을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 어떤 차이콥스키 영화에서는 ‘한 음도 못 고친다’는 대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수정되지 않은 명작을 세상에 소개해줄 새로운 인물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인물이 바로 독일의 명지휘자 한스 폰 뷜로였다.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이 곡의 악보를 한스 폰 뷜로에게 보내 초연을 부탁했다. 지휘자 뷜로는 이 곡이 독창적인 명곡이라고 확신해 1875년 10월 25일에 미국의 보스턴에서 초연했다. 연주는 대성공이었고 미국의 청중들은 이 작품에 많은 박수를 보냈다.
 
모스크바에서의 초연은 그해 11월에 이루어졌는데 보스턴에서의 반응만큼은 아니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명곡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은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에게 헌정되고자 했던 계획을 접고 지휘자 한스 폰 뷜로에게 헌정되었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원장이었던 니콜리아 루빈시테인에게 이 사건은 하나의 오점으로 남았다. 지금도 그가 말한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표현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으로 남았으며 명피아니스트의 견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이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과소평가한 결과는 그의 경력에 오점이 되었다. [사진 pixabay]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이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과소평가한 결과는 그의 경력에 오점이 되었다. [사진 pixabay]

 
니콜라이 루빈시테인과 그의 형 안톤 루빈시테인은 러시아 음악의 역사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차이콥스키의 성장과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특히나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은 차이콥스키의 여러 걸작을 초연한 지휘자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후배가 야심차게 작곡한 협주곡을 과소평가한 결과는 그의 경력에 오점이 됐던 것이다.
 

혹평이 성공의 어머니  

결과적으로 보면 루빈시테인의 혹평과 요구 때문에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차이콥스키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후에 차이콥스키는 미국을 방문하여 철강 왕 카네기로부터 ‘음악의 왕’이라는 칭호도 듣게 되지만 그런 명성의 시작에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있었다.
 
러시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부터 혹평을 받아 미국에서 초연된 러시아의 협주곡은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187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이콥스키는 자신이 존경하던 선배에게 혹평을 들었지만 이로 인해 그의 협주곡은 오히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해에 차이콥스키는 운도 좋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작곡가는 3년 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혼하게 되어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된다.
 
이석렬 음악평론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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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렬 이석렬 음악평론가 필진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 음악은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이제 바쁜 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음악을 즐기는 반퇴 세대들이 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문화적으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음악을 감상하고 공연장을 방문하고 악기를 함께 연주한다. 음악이 함께 하는 삶은 아름답고 여유롭다. 본 연재물은 음악의 즐거움을 환기하고 음악을 통해 생활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을 지향한다. 음악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보충해주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한다. 이제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를 갖고 삶을 더욱더 아름답게 채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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