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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얼굴 몰라" "장대호 팬카페도"···흉악범 신상공개 논란

중앙일보 2019.09.17 09:00
“머리 한 번만 올려주세요.”

“…….”

 
지난 6월 12일,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36)이 검찰에 송치되며 언론의 포토라인 앞에 섰다. 경찰이 고유정에 대한 신상공개를 결정한 뒤여서 그의 얼굴이 전 국민에 드러날 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고유정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완벽히 가렸기 때문이다. 피해자 유족들이 “얼굴을 들라”며 울분을 토했지만 소용없었다.

 

'알아서 찍으라'는 경찰, 꽁꽁 싸맨 피의자

 지난 6월 고유정씨가 검찰로 송치될 때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6월 고유정씨가 검찰로 송치될 때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첫 재판을 마친 뒤 나온 고유정이 분노한 시민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모습. [뉴스1]

지난달 첫 재판을 마친 뒤 나온 고유정이 분노한 시민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모습. [뉴스1]

고유정의 ‘커튼머리’는 재판에서도 계속됐다. 지난 8월 첫 공판이 열렸을 때도, 지난 2일 두 번째 공판이 열렸을 때는 물론 16일 열린 3차 공판에 출석하면서도 그는 머리카락으로 가린 얼굴을 푹 숙이는 방법으로 카메라를 피했다. 언론이 그의 사진과 영상을 입수해 따로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고유정은 끝까지 얼굴을 숨길 수도 있었다.

 
현재 시행되는 피의자 신상공개의 맹점은 여기에 있다. 2011년 강호순 살인 사건 이후부터는 법이 바뀌어서 흉악범에 한해 경찰이 신상 공개를 할 수 있게 됐다. ▶성인이면서 ▶성폭력ㆍ살인ㆍ강간ㆍ강도 등을 저질렀고 ▶충분한 증거가 있으며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 4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 달라진 건 경찰이 피의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는 정도다. 다음은 언론이 ‘알아서 찍어라’는 식이다. 고유정처럼 피의자가 작정하고 얼굴을 꽁꽁 싸매면 벗길 도리가 없다.
 
최근 ‘머그샷’(mug shotㆍ범죄자 인상착의 기록 사진) 공개가 논의되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머그샷을 외부에 공개하고 있지만 국내는 피의자의 명예훼손 등을 우려해하지 않는다. 경찰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머그샷을 공개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법무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해놓은 상태다.
 
흉악범 신상 공개 범위를 넓히자는 지적도 나온다. 똑같은 흉악 범죄를 저질러도 누구는 얼굴이 공개되고, 누구는 공개되지 않는 형평성 논란을 극복하자는 취지다. 현재 신상 공개는 경찰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판단에 달려있는데,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과 3월 ‘원영이 학대사건’ 피의자는 사회적으로 파장을 부른 사건의 범인임에도 신상 공개를 피해갔다.
 

"재판 끝날 때까지는 무죄 원칙" 의견도

인권침해 차원에서 피의자 신상 공개를 반대하는 의견도 많다. ‘흉악범에게 인권이 어디 있냐’는 여론이 다수지만 당신이 보고 있는 화면 속 피의자는 사실 흉악범이 아닐 수도 있어서 문제다. 미국의 ‘OJ 심슨 사건’ 이나 우리나라 90년대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처럼 이름이 알려진 피의자가 재판에서 무죄를 받는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실제로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형사사건의 무죄율은 3.65%(8916명)였는데, 이중엔 적지만 강력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들도 포함됐다. 재판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던 다른 사정을 인정받아 형이 감경된 사례도 있다. 아직 재판을 통해 혐의를 제대로 다퉈보기도 전에 수사 단계서부터 죄를 확정짓고 신상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무죄추정원칙’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공개된 흉악범 지지하는 부작용도

실제로 얼굴이 드러나는 것만으로 피의자는 수사와 재판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비난 여론에 심적으로 압박을 받아 진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고, 무엇보다 변호인 선임이 잘 되지 않아 방어권 행사가 어려워진다.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를 인정받더라도 이미 침해당한 인격권은 되돌릴 수 없다.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피의자 장대호(38·모텔 종업원) [뉴스1]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피의자 장대호(38·모텔 종업원) [뉴스1]

흉악범에 대한 ‘과잉 보도’가 꼭 사회에 대해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만도 아니다. 최근 모텔 손님을 살해한 뒤 시신을 한강에 버린 장대호(38)는 신상공개가 결정된 뒤 언론에 ”양아치를 죽인 것뿐이다“고 공개 발언해 논란이 됐다. ‘무시한 손님(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며 장대호를 옹호하는 여론도 생겼다. 그를 지지하는 팬카페도 생겼다 사라졌다.
 
약 10년 전 ’얼짱 강도‘ 사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성 2명을 납치하고 돈을 뺏어서 수배 대상이 됐던 이미혜 얘기다. 당시 수배전단지에 실린 그의 외모를 호평하는 글이 온라인에 퍼졌고, 팬카페를 중심으로 “그를 처벌하지 말자”는 여론까지 일었다. 신상 공개가 과도한 신상털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016년 안산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조성호(33)의 신상이 공개된 뒤 그의 전 여자친구의 신상까지 함께 온라인 퍼지는 일이 있었다. 고유정 사건 역시 현 남편과의 사생활 등이 언론에 의해 과도하게 노출되고 있다.
 
2008년 '강도 얼짱'으로 불린 이미혜씨의 팬카페.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2008년 '강도 얼짱'으로 불린 이미혜씨의 팬카페.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 '알 권리' 막을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악범 신상 공개 여론이 높은 건, 우리 사회가 이들을 제대로 단죄하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지난 2008년 아동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 신체를 훼손한 조두순은 신상 공개 제도 이전에 범죄를 저질러 얼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징역 12년을 받고 복역 중인 그는 내년에 출소한다.

 
“신상공개 제도의 공익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이용식 서울대 법대 교수의 말처럼, 제도 자체에 위법성을 묻기 어려운 이상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앞으로 신상 공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남은 건 신상 공개 제도를 얼마나 세밀하게 구체화하고, 어떻게 맹점을 극복하느냐에 달렸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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