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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분노의 날

중앙일보 2019.09.17 00:25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정치가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있는 대로 빨아들여 간다. 벌써 몇 달 째다. 하긴 길게 보면 몇 년 째다. 촛불항쟁과 대통령의 탄핵이 있었고 새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의 만남, 북미 간의 대화도 있었다. 모두 나름 소화하기 벅찬 정치적 이슈들이었다. 이제 좀 지나가나 싶었는데 법무장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언론매체가 온통 그 얘기뿐이다. 너무나 많은 얘기가 범람하여 오히려 헤아리기가 간단치 않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무엇이 전략이고 무엇이 진심인지 그 갈피를 헤쳐 판단에까지 이르기에는 나의 정치적 읽기 능력이 힘에 부친다. 나는 내 정치적 의견이 중요하다고 여기지도 않고 남을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치 이슈가 좌중의 관심과 담론을 독차지하고 있는 요즈음엔 끼어들 틈이 없다. ‘AI(인공지능) 시대에 예술이 할 일’ ‘중국의 음악 시장’ 등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정당한 분노는 사회의 희망이나
대립·분노의 정치구도는 소모적
정치와 시심의 균형이 필요해

요즘의 정치 담론은 곧장 언쟁으로 사람들을 끌고 간다. 한 편을 드는 사람이 다른 편에게 승복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양쪽이 모두 분노하고 있고 정의의 실종을 개탄한다. 이쪽은 저쪽이 제시하는 모든 논리를 무찌를 말과 팩트들을 가지고 있고 그도 모자라면 ‘믿음’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믿음은 같은 믿음을 만나면서 더 강해지고 다른 믿음과는 배타적으로 부딪친다. 소통이 단절된 두 개의 믿음이 의심과 증오를 거쳐 싸움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정치적 관심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싶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격렬하게 대립하는 두 개의 소용돌이가 중간에 남아있는 작은 생각들을 흡수한다. 언젠가는 나도 투표소에 들어가서 어느 한쪽에게 표를 찍겠지만, 그 전까지는 느슨하게 있고 싶다. 분명하게 한쪽의 견해를 갖는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려니와 충돌이 격해지면서 오히려 그 진영의 논리들은 더 조야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엉거주춤, 모호한 디테일을 지키면서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보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순진하고 엉거주춤한 나의 견해는 피력되자마자 어느 한쪽의 소용돌이에 의해 제압되거나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다.
 
정치는 중요하다. 정치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분배한다. 또 나라를 미래로 이끌어간다. 우리가 손수 그것을 할 수 없으니 대표자들에게 이를 수행할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들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하면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잘 못 수행해서 우리의 불만이 많아지면 다음 선거에서 그 대표자를 바꾸면 된다. 바람직하기로는 그들이 국민들의 다양한 관심을 잘 수렴해서 타협과 협상으로 적당히 분배도 하고 안전한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다. 불만과 불안이 없도록. 그러면 우리는 정치를 그들에게 맡겨두고 우리의 일상적 관심에 골몰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에는 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변수도 충격도 많다. 또 정치인들은 일반 시민들이 불만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불만이 많아야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그 불만을 해소할 정치인에게 표를 몰아준다. 정치인들은 불만을 일으키고 그 불만을 노골화해서 분노와 증오로 키우고 그 힘을 이용해서 정치적 바람을 일으켜 자신의 힘으로 삼는다. 분노장사를 하는 셈이다. 분노를 세일즈하려니 말이 노골화되고 자극적이 된다. 막말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실은 분노는 문제가 아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그 사회의 희망이다. 다만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는 잘 가려야 한다. 분노하기 전에. 일단 분노하면 그 격정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약해질 수 있다. 예컨대 나의 분노가 나 자신의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외부로부터 자극된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가리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정치가 승한 이 시대에는 작은 불만과 미미한 상처의 불씨도 삽시간에 큰 분노의 불길로 커질 수 있다.
 
정치가 사회의 이슈와 담론을 선명한 대립과 분노의 구도로 가져간다면 예술의 할 일은 (정치색이) 모호한 디테일, 상상과 꿈, 노래와 시심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리라. 하지만 정치의 힘이 워낙 강렬하여 예술이 끼어들 힘도, 기회도 만만치 않다. 가난하고 미미한 순수예술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힘을 쓰는 K-Pop 도 별로 이슈가 되지 못하는 요즈음이다. 예술가들이 어떻게 하면 이 시대에 시심과 신명을 주어 꿈꾸고 춤추고 노래하게 할 수 있을까?
 
베르디의 레퀴엠을 찾아 듣는다. “분노의 날, 그날 되면/ 이 세상은 재가 되리/…/만물을 엄히 심판할/ 그 분 오실 때/ 얼마나 떨리고 요동할까?”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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