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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성추문 이후의 박수

중앙일보 2019.09.17 00:25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성추행 고발자가 줄잡아 20명이다.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78)에 대한 증언자다. AP통신이 첫 보도에서 9명을 다룬 지 한 달 만이다. 동의 없는 스킨십, 거부한 후의 불이익 같은 전형적 스토리가 나왔다. 도밍고가 2003년부터 총감독인 LA오페라단은 외부 인력을 고용해 진상 조사를 시작했다.
 
피해자 숫자, 피해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놀라운 것은 사태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태도 차이다. 미국 무대 대부분은 도밍고와의 계약을 취소했다. 필라델피아·샌프란시스코가 가장 빨랐고 댈러스도 뒤를 이었다.
 
유럽은 데뷔 60년 된 오페라 스타를 지지한다. 도밍고는 지난달 잘츠부르크 여름 축제에 두 번 나와 각각 10분 넘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 밀라노·런던·취리히는 올해와 내년 도밍고의 출연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 유리하게 한다” “익명 제보로 훌륭한 성악가를 제외시킬 순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확인 전까지는 계약을 깨지 않을 듯하다.
 
태도가 둘로 나뉜 와중에 고민하는 곳도 있다. 도쿄는 내년 4월 도밍고와 올림픽 갈라 콘서트를 열 계획이었는데 최근 “도밍고에 대해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LA의 조사 결과를 기다린다”는 입장을 보이다가 결국 공연 리허설을 시작했다. 도밍고는 이달 25일부터 베르디 ‘맥베스’의 맥베스로 출연한다.
 
2017년 시작한 미투 운동이 지나간 이야기가 되는 중에 도밍고의 사례는 유의미하다. 무죄 추정 원칙에 의해, 또 무대 완성도를 위해 도밍고를 공연에 세우고 박수를 보냈다고 하지만, 반대로 고발들이 사실이라면 기립 박수를 지켜봐야했던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래도 그를 굳이 무대에 세우는 건 티켓 파워, 견고한 인맥이라는 분석이 맞다. 음악계는 도밍고만큼 유명한 성악가를 발굴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증명해버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츠부르크에서 기립 박수가 나온 시점이다. 박수는 연주 후가 아니라 도밍고가 노래도 부르기 전에 터졌다. 집단은 간혹, 오래된 역사 위에서도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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