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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조국 일가 위해 검찰과 언론에 재갈 물리려 하나

중앙일보 2019.09.17 00:20 종합 30면 지면보기
법무부가 ‘수사 공보(公報) 준칙’을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규정이 도입되면 검찰과 경찰이 수사 내용을 일절 공개할 수 없다. 피의자 소환 일정이나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언론과 국민에게 알릴 수 없다. 수사가 끝난 뒤에도 대략적인 피의사실조차 밝히면 안 된다.
 

법무부 갑자기 공보 규칙 개정 움직임 보여
소환과 영장 청구도 국민 모르게 하려는 것
필요하다면 조 장관 가족 수사 끝나고 하라

이 규정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경심 교수(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수사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정 교수가 언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지 언론과 국민이 사전에 알 수 없다. 조사를 받고 난 뒤에도 그가 검찰청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국민이 모를 가능성도 크다. 정 교수가 자청하지 않는 한 포토라인 앞에 서는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만약 구속영장이 청구돼도 그 사실은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가 열릴 때까지 확인되기 어렵다.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재판이 시작돼야 알 수 있다. 검찰은 잘못된 정보가 보도되면 “틀렸다”고만 말할 수 있다. 무엇이 틀렸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대체로 정확한 보도에도 날짜나 숫자에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오보’ 딱지를 붙이고 입을 다물어 버리면 그만이다.
 
만에 하나 조 장관 일가가 연루된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해 여권 정치인이 소환조사를 받고 사법처리 대상에 오를 경우 검찰이 기소할 때까지 국민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를 수도 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소환조사가 있었다는 사실마저 영원히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언론이 수사 상황을 모르니 그만큼 권력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기가 쉽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 권력의 보호를 받는 이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비공개로 소환돼 ‘조용히’ 불기소 처분을 받기도 했다.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을 악용하면 이런 일이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 그 시절처럼 검찰 실세가 정권 눈치를 보며 수사팀에 ‘봐주기 수사’를 지시해도 국민이 알 길이 없다.
 
법무부와 여당은 피의사실 유출을 공보 규칙 개정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 여권은 조 장관 일가 수사와 관련된 정보가 검찰에서 언론사로 흘러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출을 입증할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고, 기자들의 취재로 확인된 정보였다는 사실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수사 내용 유출로 의심할 만한 일은 이른바 ‘적폐’ 수사 과정에서 오히려 빈번히 발생했다. 그때는 여권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그러다가 이제 와 ‘피의자 인권’을 운운하니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보 규칙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시대정신에 맞지 않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고쳐야 한다. 하지만 법무부가 독단적으로 방안을 만들고 조 장관이 사인해 시행한다면 ‘조국의, 조국을 위한, 조국에 의한’ 일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10년 전 지금의 공보 준칙을 만들 때처럼 법조계·언론계 등의 전문가들을 모아 최선의 방법을 찾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조 장관 관련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그 작업을 미뤄야 한다. 만약 박근혜 정부 말기에 최순실씨 검찰 출석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지금의 여권은 납득했겠나. ‘위인설법(爲人設法)’이라며 아우성을 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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