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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논설위원이 간다] 죽음의 책임을 죽은 자에게 덮어씌우지 마라

중앙일보 2019.09.16 00:02 종합 24면 지면보기

산재 사망 사고의 진실

지난 9일 오전 고(故) 박인규 아산 우체국 집배원 영결식을 마친 뒤 동료 집배원들의 오토바이가 운구차 행렬을 선도하고 있다. [사진 전국집배노조 ]

지난 9일 오전 고(故) 박인규 아산 우체국 집배원 영결식을 마친 뒤 동료 집배원들의 오토바이가 운구차 행렬을 선도하고 있다. [사진 전국집배노조 ]

지난주 화요일(10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우체국 앞. 거리를 걷던 시민들이 잠시 머뭇거리다 몸을 숙이고 빠르게 지나갔다.
 

추석 배달 중 숨진 아산 집배원
그는 어떻게 일하다 사고당했나
‘김용균 사고원인은 김용균’ 논리
죽음의 구조 은폐·유지할 뿐이다

‘아산우체국 고(故) 박인규 집배원 순직 인정! 우정본부 책임자 처벌!’
 
노조 조끼를 입은 이들이 플래카드를 펼쳐놓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추석 배달 중 숨진 집배원 박인규(57)씨 사고 관련 대책을 요구하는 전국집배노동조합 기자회견 자리였다. 충남 아산우체국에서 일하던 박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 6일 오후 7시 40분쯤.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앞에 있던 차가 갑자기 문을 열면서 부딪쳐 넘어졌고, 뒤에서 오던 차량에 치였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한 게 죄다”
 
“우정본부는 매년 명절마다 물량 증가를 예상하면서도 배달인력 충원 없이 집배원들에게 야간 배달, 일요일 출근을 강요하고 있다. 명백한 사용자의 불법행위이며 살인을 방치한 것이다. 올해만 집배원 12명이 사망했다.”
 
조합원들은 ▶우정사업본부 대표의 책임 있는 사과 ▶일몰 이후 배달 근절 ▶부족 인력 즉각 증원을 요구했다. 최승묵 집배노조 위원장은 “우정사업본부가 순직 인정과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더 죽어야 한다는 말이냐”고 말했다. 사고 현장을 목격했던 조성대 집배노조 아산우체국 지부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특조위 조사를 통해 물적 증거가 나오고서야 ‘용균이 잘못이 아니고 회사 잘못’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특조위 조사를 통해 물적 증거가 나오고서야 ‘용균이 잘못이 아니고 회사 잘못’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사고 당시 상황은.
“택배 배달을 마치고 ‘귀국(歸局·우체국 복귀)’하던 중 ‘택배 온 게 없다’는 고객 전화를 받고 다시 돌아가려다 사고가 났다. 다음날 확인해도 되는데…열심히, 성실하게 일한 게 죄(罪)다.”
 
최근 하루 업무량은 얼마나 됐나.
“일반 우편 1000통, 등기우편 100통, 택배 80여건 정도였다. 평소보다 4~5배 많았다. 추석을 앞둔 ‘특별소통기간’인데다 동료가 출산휴가를 가면서 그 물량까지 나눠서 맡아야 했다. 사고 당일에도 부인이 택배 물량을 차로 옮겨주고, 아들이 아파트 지역 배달을 도왔다.”
  
김용균은 왜 기계에 몸을 집어넣었나
 
‘원·하청의 위계 구조 속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쉽게 무시되거나 묵살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고 김용균 사망사고의 원인이 김용균」이 되는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종합보고서 중)
 
지난달 19일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서부발전의 하도급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24세 노동자 김용균은 지난해 12월 10일 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이송용 벨트컨베이어 밀폐함 점검구의 설비 상태를 점검하던 중 벨트와 롤러 사이에 몸이 끼여 숨졌다. 특조위원들이 진상 조사를 위해 발전소 현장을 방문했을 때 한국서부발전 간부는 “벨트가 있는 기계 안쪽으로 고개를 넣고 점검하지 않아도 된다. 매뉴얼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고 했다. 개인의 부주의로 사고가 났다는 얘기였다.
 
고인은 왜 조명도 없는 기계 안으로 몸을 집어넣는 위험을 무릅쓰며 작업을 해야 했을까? 특조위가 던진 질문이었다. 조사 결과 구조적인 원인이 드러났다.
 
‘1 럭스(Lux) 밖에 안 되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밀폐함 내의 그림자가 진 벨트 하부, 철판 기둥 뒤에 반쯤 숨어 있는 롤러의 이상 부위를 육안과 청력으로 확인하고, 휴대폰으로 촬영하려면 점검구 안으로 고개를 넣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개인의 불안전한 행동이나 위험한 행동은 반드시 그 배경이 되는 원인이 존재한다.’(종합보고서 중)
  
한해 2142명이 산재로 숨지는 나라
 
전국집배노조가 10일 서울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순직 인정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권석천 기자

전국집배노조가 10일 서울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순직 인정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권석천 기자

하청 노동자가 설비 점검을 이유로 가동을 중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 하청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설비 개선을 요구했다. 원청인 발전회사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돈 들어가는 것은 말하지 마.” “돈 들어가니까 안 돼.”  
 
원청(발전회사)은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했고, 하청(하도급업체)은 운전·점검 의무만 질 뿐 시설 개선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업무의 외주화’ ‘위험의 외주화’가 만들어낸 소통의 단절과 책임의 공백은 하청 노동자들의 일상을 위험에 빠뜨렸다.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밀어 넣고는, 전후 맥락 없이 사고 순간에만 현미경을 대고 ‘작업자 부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2016년 5월 28일 서울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다 숨진 김모(당시 19세)군 사고 때도 다르지 않았다. “역무실에 들어와 작업일지를 작성하지 않았다”며 김군의 안전수칙 위반 탓으로 돌리려 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2016년 969명, 2017년 964명, 2018년 971명. 산업재해(산재) 사고로 숨진 한국 노동자 수다. 매일 3명 안팎의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고 있다. 산재 질병 사망까지 합치면 한 해 2142명. 하루 6명꼴이다. 특조위 보고서는 “왜 한국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세계 1등’으로 죽어야만 하는가”라고 개탄했다.
 
“용균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 있었다”
 
특조위 발표를 앞자리에 앉아 지켜봤던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미숙씨를 만났다.
 
“특조위 조사로 용균이 잘못이 아니라 회사 잘못이란 게 확인됐다. 용균이는 회사 업무 수칙을 다 지키다 목숨을 잃은 거다. 저도 경북 구미의 전자회사 비정규직이었다. 회사에서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하려고 했던 저를 보며 용균이가 배운 게 아닐까…마음이 아팠다.”
 
사고 현장에 가신 적 있나.
“사고 나고 2, 3일째 되는 날 들어갔다. 밖에서 보면 깨끗한데, 안에는 21세기에도 이런 곳이 있나 싶었다. 수직으로 된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탄가루가 눈처럼 쌓인 통로를 미끄러질까 봐 엉금엉금 기어야 하고, 옆엔 컨베이어가 무섭게 돌아가고…용균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루 6명꼴로 산재로 숨지는데.
“무슨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전염병이 돈 것도 아닌데 나라에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생명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
 
김씨는 “미친 세상이에요” “무서운 나라예요”를 되뇌었다. “산재로 숨진 사람들 모두 가족이 있잖아요. 사고 현장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겪는 동료들도 있고…그들의 고통은 누가 책임집니까.” 김씨는 내달 26일을 목표로 ‘김용균 재단’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용균이는 ‘비정규직 이제는 그만’이란 푯말 든 사진을 남겼어요. 비정규직 없는 세상, 죽지 않고 다치지 않는 현장을 만드는 게 아이가 제게 남긴 숙제예요. 문재인 대통령께서 ‘산재 사망자 수를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약속(올 1월 신년사) 반드시 지키셔야 하고요. 정부도 특조위에서 권고한 발전사의 하청 노동자 직접 고용과 정비부문 재공영화, 받아들여야 합니다.”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전철에 부딪혀도, 발전소에서 설비 점검을 하다 몸이 끼여도, 과중한 업무 속에 배달 오토바이를 몰다 차에 치여도, 공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에 걸려도, 추락 방지 시설이 없는 건설현장에서 떨어져도,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모두 ‘개인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죽음은 끝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 사고의 원인은 ○○○ 자신’이란 이데올로기는 죽음의 구조를 은폐하고 유지할 뿐이다.
 
취재를 마치며 떠오른 말은 명령어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변호해줄 사람이 없다고, 죽음의 책임을 죽은 자에게 덮어씌우지 마라. 모든 산재에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부디 그 사실만큼은 인정하라. 더 이상 죽게 하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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