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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처남-매부가 같이 오더라”…성매매 집결지의 명절

중앙일보 2019.09.14 13:00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옐로하우스 비가(悲歌·elegy)’에서 대구 자갈마당과 전주 선미촌을 돌아보는 사이 추석이 왔다. 옐로하우스에 홀로 남은 4호집 근황이 궁금해 명절을 앞두고 다시 찾아갔다. 

[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27>
전 부쳐 먹고 ‘명절 요금’ 더 받기도

 
오랜만에 찾은 옐로하우스 4호집 외관에는 빨간 스프레이로 ‘엑스(X)’자가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포주·건물주 등과 대립하는 내용의 현수막들도 보였다. 올 초 철거를 시작한 옐로하우스 지역에는 건물 3채가 남아 있는데 사람이 사는 곳은 4호집 뿐이다. 
 
지난 5월 영업을 접었지만 성매매 여성들과 주방·호객 일을 하던 이모들이 남아 이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철거로 뿔뿔이 흩어진 다른 성매매 여성들도 번갈아가며 이곳에 와 집 앞 천막에서 불침번을 선다. 옐로하우스에 사는 한 30대 여성은 “태풍 ‘링링’에 천막 지붕이 날아갔다”며 수첩에 ‘천막 수리’라고 썼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명절이면 붐비는 성매매 집결지

 
추석 이야기가 나오자 한 여성이 “갑자기 명태전이 먹고 싶다”고 했다. 성매매 집결지에서도 명절 음식이 빠지지 않는 모양이다. 4호집에서는 추석마다 주방 이모와 성매매 여성들이 함께 전을 부쳐 먹었다고 한다. 30대 여성의 말이다. “추석 전날 일 끝나고 정오쯤부터 전을 부쳐요. 주로 명태전·동그랑땡·버섯전을 많이 했어요. 다 같이 먹고 좀 자다가 밤이 되면 또 일했어요.” 추석에 이곳을 찾은 남성들과 전을 나눠 먹기도 했단다. 
 
올해 설 즈음 보도한 옐로하우스 비가 7회에서 소개했듯 성매매 집결지에서 명절은 대목으로 불린다. 연휴인 데다 고향 집에 가지 못하는 외로운 남성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추석 보너스나 용돈을 받은 이들이 오기도 한다. 이 30대 여성은 “보너스는 받았는데 식당도 다 문을 닫아 갈 곳 없는 남성들, 고향 집과 연락을 끊었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갈 곳 없는 성매매 여성들이 명절에 이곳에 모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옐로하우스 4호집의 현재 모습.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다른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됐다.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옐로하우스 4호집의 현재 모습.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다른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됐다.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돈 많이 쓰게 한 조선족 미안해”

 
50대 여성 B씨는 “추석이 되면 생각나는 남성이 있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 그가 경기도 평택의 성매매 집결지 쌈리에서 일할 때였다. “추석 이틀 전엔가 중국 옌볜 사람이라는 40대 남성 두 명이 왔어요. 연휴라고 중국에 다니러 가기 전 잠깐 들렀다는데 첫날 잠깐 다녀가려 했던 그를 못 가게 잡았어요. 하루 더 있겠다더니 둘 다 꼬박 이틀을 더 있다 갔어요. 둘이 서로 ‘저 XX, 또 XX이다. 니 안갈끼가.’ ‘니나 가라’ 이러면서 특유의 말투로 싸운 기억이 나요. 그때 저와 여성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여성의 엄마는 영등포 성매매 업소 포주였으니 참 세상이 웃기지요.” 
 
B씨는 남성에게 “술은 내가 한 잔 살게”라며 맥주와 과일 안주를 내놨다고 한다. 과일 안주는 과일을 깎아 일회용 접시에 담은 것으로 5000원에 판다. 한국에서 가게를 한다는 이 남성들은 3일 동안 쌈리에서 큰돈을 쓰고 중국으로 떠났다. B씨는 그들에게 미안함 이상의 마음이 든다고 했다. “지금 같으면 고향에나 빨리 가라 했을 텐데 그때는 돈 벌 욕심에 잡았지. 추석이 돌아오면 떠올라요.”
 
옐로하우스 여성들은 지난달 31일 인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옐로하우스 여성들은 지난달 31일 인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그는 명절 집결지에 온 아이돌 가수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는 TV를 안 보니까 누군지 몰랐는데 주변에서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난 거야. 내 쪽으로 오더니 ‘나 몰라요?’ 그러더라고. 단골인가 싶어 ‘언제 또 왔었니? 기억 못 해서 미안해’ 하니까 ‘아, 아니에요’ 하면서 다른 가게로 갔어.” B씨 말에 다른 옐로하우스 여성들도 “연예인을 본 적 있다”며 이름을 나열했다. 활발히 활동 중인 배우·가수·개그맨들도 있었다. 누구나 알 만한 유명 가수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검은 세단을 타고 매니저와 부산 완월동에 자주 왔다고 한다.  

 

‘나 몰라요?’ 하던 아이돌 가수 

 
여성들은 “옐로하우스에 2000년대 초까지 연예인들이 많이 왔다”며 “인터넷이 발달한 뒤로 뜸해진 것 같다”고 했다. TV에 나오는 조연 배우를 상대해봤다는 한 여성은 “후배가 접대 차 데려왔는데 아가씨가 너무 어리다면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며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무명 연예인들은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누구다’라고 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구 자갈마당에 자주 출몰했다는 한 이름난 배우는 "매너가 좋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놀랍게도 추석에 친척과 함께 오는 남성들도 있다. 한 여성은 “매형·처남이나 사촌들끼리 온다”며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때는 돈 버는 게 우선이다 보니 남자들끼리 이런 데 와야 친해지는가 보다 하고 말았다”고 했다. 
 
과거에는 ‘명절 요금’이 따로 있었다. 가령 평소 8만원이면 명절에는 10만원을 받는 식이다. 명절에는 팁도 후하다고 했다. 하지만 30대 여성은 “요즘은 명절이라고 화대나 팁을 더 주지 않는다”며 “예전에는 명절에 외로운 사람들이 혼자 많이 왔지만 요즘은 20대들이 떼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B씨는 “명절이 바쁘니 집에 못 가게 하는 포주도 있었다. 처음에는 명절에 집에 못 가는 게 속상했는데 나중에는 돈을 벌기 위해 안 가게 되더라”며 “이제는 명절에 무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올 추석에도 함께 송편을 나눠 먹고 돌아가며 업소를 지키는 '작전'을 일찌감치 짰다. 
 

트위터 열고 명함 만든 여성들 

 
지난 2월 이들의 설 풍경을 담은 옐로하우스 비가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비가 시리즈 잘 읽고 있는데 애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삶의 자세가 너무 수동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자의든 타의든 더 늦기 전에 본인의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군요.’(duns****)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대표는 다양한 사람들과 단체를 접하게 되면서 명함을 만들었다고 했다. 사진은 명함의 앞 쪽.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대표는 다양한 사람들과 단체를 접하게 되면서 명함을 만들었다고 했다. 사진은 명함의 앞 쪽.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이후 여성들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와 차차' 등과 함께 ‘Hello, Yellow!(_yellowhouse_)’라는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대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명함을 만들었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대학교수·변호사·작가 등도 나타났다. 지난달 열린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NeMaf)에서는 옐로하우스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여성들은 같은 달 31일 열린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직접 참가해 강제 철거가 임박한 4호집 상황을 알렸다. 퀴어문화축제에 온 한 참가자는 이들을 만난 뒤 “새로운 경험을 해서 좋았다. 옐로하우스 여성들이 성 소수자는 아니지만 지지한다”고 말했다. 옐로하우스 여성들은 추석 이후에도 계속 포주·건물주를 상대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업소 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성매매 업소 여성 등 3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옐로하우스 비가(悲歌·elegy)’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보고 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2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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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최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