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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도 불길, 무서워도 맞서야 한다' 고성 산불 진압 영웅 김병령 소방경

중앙일보 2019.09.14 11:27
지난 4월 4일 오후 7시 17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주유소 건너편 전신주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이 불꽃은 순간 최대 풍속 35.6 m/s의 강풍을 타고 근처 야산으로 옮겨붙었다.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고성 천진항과 속초 영랑호까지 급속히 퍼졌다. 역대 세 번째 피해 규모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6배인 1757ha의 산림을 태웠고 2898개의 건물피해, 128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약 1300억원의 손실을 가져온 국가적인 재난이었다. 
24년째 소방관으로 활동중인 김병령 소방경이 근무중인 강원도 고성 동광119안전센터 마당에 사용하는 장비들과 함께 누웠다. 왼쪽은 방화복과 손도끼, 오른쪽 위부터 공기호흡기, 호스, 절단기. 장진영 기자

24년째 소방관으로 활동중인 김병령 소방경이 근무중인 강원도 고성 동광119안전센터 마당에 사용하는 장비들과 함께 누웠다. 왼쪽은 방화복과 손도끼, 오른쪽 위부터 공기호흡기, 호스, 절단기. 장진영 기자

 

[눕터뷰]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 불길 주요 경로 차단
"뜨거워도 위험해도 소방관은 불에 맞서야"

강원도의 4월은 잔인하다. 매년 4월 식목일 전후로 강원 지역 소방서는 초비상사태 근무체제다. 2000년에는 동시다발적인 산불이 8일간 이어졌고, 2005년에는 천년 고찰 낙산사가 불에 탔다. 2017년과 2018년에도 인근 지역에 큰 불길이 이어졌다. 고온건조한 바람과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인 ‘양간지풍(襄杆之風)’의 영향 탓이다.
 
지난 4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대명콘도와 일성콘도 인근 화재 현장. [중앙포토]

지난 4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대명콘도와 일성콘도 인근 화재 현장. [중앙포토]

 
“강원도의 4월은 화마(火魔)와의 전쟁으로 조마조마합니다” 
 
동광 119안전센터 소장 김병령(53) 소방경은 강원도 지역에서만 24년째 소방관으로 근무 중이다. 이번 강원 화재에서 강풍에 실린 산불 경로를 차단해 민가와 관공서로 이어질 뻔한 대형화재를 막은 공로를 인정받아 '산림청 산불진화유공자 포상'과 '포스코히어로즈펠로십'에 선정됐다. 김 소방경을 만나 무거운 장비를 메고 볼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봤다.
 
지난 4월 5일 강원도 고성 인흥리에서 김 소방령(오른쪽)이 잔화정리를 하고 있다. [사진 동광119안전센터]

지난 4월 5일 강원도 고성 인흥리에서 김 소방령(오른쪽)이 잔화정리를 하고 있다. [사진 동광119안전센터]

 
“사람이 쫓아다니며 불을 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불의 속도가 너무 빨랐어요”
김 소방경은 지난 4월 발생한 강원 산불에서 불길이 번지는 길목을 효과적으로 차단한 공을 인정받아 산림청 포상과 포스코히어로즈펠로십을 수상했다. 장진영 기자

김 소방경은 지난 4월 발생한 강원 산불에서 불길이 번지는 길목을 효과적으로 차단한 공을 인정받아 산림청 포상과 포스코히어로즈펠로십을 수상했다. 장진영 기자

 
산불은 동시다발로 속초, 고성으로 번져갔다. 강풍으로 인해 현장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김 소방경은 “초기대응이 불가항력”이었다고 말했다. 불길이 이어지고 있던 경동대 근처에 현장 지휘소를 만들고 방어선을 구축하기로 판단했다. “소방차를 배치하고 옥외 소화전을 점령했습니다. 현장인 경동대 뒤로는 산이 있고 옆으로는 경계벽이 세워져 있습니다. 바로 앞은 저수지고요. 지형과 수리 여건을 고려해 이곳이 방어선의 최전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 경동대학교 정문앞에서 예비살수가 실시되고 있다. [사진 김병령]

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 경동대학교 정문앞에서 예비살수가 실시되고 있다. [사진 김병령]

 
화재가 번지는 길목에 소방차가 있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바람의 방향이 동남쪽으로 바뀌었다. “불길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사전 살수 작업이 우선입니다. 불의 길목을 차단하는 거죠”  
 
지난겨울 강원도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아 많은 곳이 건조한 상태였다. 인근 소방서의 차량이 총출동했지만 6대에 불과했다. 화재 발생 3시간이 지나지 않아 전국적 대응인 대응 3단계가 실시됐고 소방청장이 전국 소방력 총동원 명령을 내렸다. 소방차 1254대와 소방관 4481명이 화재 현장에 집결했다. 단일 화재 역사상 가장 많은 소방차가 출동한 사례다. 이에 김 소방경은 “강원지역 소방서 여력만으로는 진화가 아주 힘들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화재는 역대 세번째 피해규모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6배인 1757 ha의 산림이 불에 탔다. 장진영 기자

이번 화재는 역대 세번째 피해규모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6배인 1757 ha의 산림이 불에 탔다. 장진영 기자

 
방어선을 구축했어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차량유도 등의 임무를 부여받고 밤새 현장을 지키며 진화와 경계작업을 이어갔다. 다음날인 5일 오전 9시경 주불 진화가 완료됐고 6일 정오를 기해 강원 지역 산불 진화가 완료됐다. 그렇지만 부족함도 느꼈다. “동네가 순식간에 연기로 뒤덮이는 바람에 집 밖으로 나온 주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적당한 장소가 없었어요. ‘우리 집에 제발 물 좀 뿌려 달라’는 요청에도 소방차가 싣고 있는 물의 양이 부족해서 안타깝기도 했죠”  
공기호흡기의 무게는 20kg에 달한다. 장진영 기자

공기호흡기의 무게는 20kg에 달한다. 장진영 기자

김 소방경의 방화복. 2중으로 되어있어 고온의 화재에도 견딘다. 장진영 기자

김 소방경의 방화복. 2중으로 되어있어 고온의 화재에도 견딘다. 장진영 기자

방화장비중 소모품은 지급이 원활하지 않아 직접 구입해 쓰는것들이 많다. 김 소병경이 구입한 유독가스차단 마스크와 고글. 장진영 기자

방화장비중 소모품은 지급이 원활하지 않아 직접 구입해 쓰는것들이 많다. 김 소병경이 구입한 유독가스차단 마스크와 고글. 장진영 기자

 
주불은 진화됐어도 잔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후 열흘간 약 100회의 출동이 발생했다. 쉬지 않고 10시간 넘게 잔불 정리를 한 날은 온몸에 쥐가 나 일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방화복과 공기호흡기까지 착용하면 무게가 30kg이 넘습니다. 불을 끄고 나면 체중이 1~2kg씩 빠질 정도로 체력 소모가 많습니다” 화재 현장 뉴스를 보면 진압을 마친 소방관들이 탈진하듯이 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불의 한 가운데는 온도가 850도에서 1300도까지 올라갑니다. 손에 열상을 입기도 하고 공기호흡기 경보가 울리기도 해요. 호흡이 가빠지며 정신을 잃을 뻔한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죠" 
 
 
 
동광119안전센터의 소방관들. 왼쪽부터 전진도 소방사, 이상원 소방교, 김 소방령, 박승표 소방사, 최일준 소방사, 남상춘 소방위. 장진영 기자

동광119안전센터의 소방관들. 왼쪽부터 전진도 소방사, 이상원 소방교, 김 소방령, 박승표 소방사, 최일준 소방사, 남상춘 소방위. 장진영 기자

 
화재 발생 시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는 동광119안전센터 소방관들의 방화복. 장진영 기자

화재 발생 시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는 동광119안전센터 소방관들의 방화복. 장진영 기자

김 소방경은 현장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한다.
"화재 발생 시 소방펌프차에 탑승해 호스를 연결하고 중장비 등을 사용하려면 최소 4~5명이 동시에 출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 동광119안전센터의 경우 2~3명이 출동하죠. 정원 부족과 예산의 한계성 때문입니다" 
또 “장비 지급 등이 이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장갑·유독가스 차단 마스크 등 소모품은 직접 살 때가 많아요. 소방차도 직접 고쳐서 운용하고요. 이번 정부 들어 2022년까지 소방인력을 매년 4000명씩 늘려준다고 하는데, 소방관의 안전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걸 많은 분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고 당부했다.
 
김 소방경은 "현장에서 시작했으니 현장에서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김 소방경은 "현장에서 시작했으니 현장에서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그는 소방관도 두려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발령받고 얼마 되지 않아 주택 화재 진압에 투입됐어요. 가정불화로 인한 방화였어요. 불을 다 끄고 돌아갔는데 다시 신고가 들어온 겁니다. 동생이 다시 집에 불을 지른 거예요. 가보니 불 한가운데 앉아 있더라고요. 위협감이 느껴졌어요. 허탈하기도 했고요. 2000년 강릉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수십 미터 높이의 불길이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그때 산불이 정말 무섭다는 걸 느꼈죠" 

수십 년 동안 화마와 싸워온 그였지만 당시의 공포를 설명하는 목소리에 작은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불을 피해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무섭다고 피할 수 있나요. 경험을 통해 담대해지는 겁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나서 단 한 번도 ‘위험하니까 피해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사명’과 ‘보람’이라고 답했다.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 제일 먼저 들어가고 맨 마지막에 나와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사명입니다”며 "뜨거워도, 위험해도 소방관은 불에 맞서야 합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24년 동안 불에 맞서 싸운 김 소방경은 앞으로 6년여 남은 정년까지 현장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살았으니 현장에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소방관이 되고 싶습니다”
 
 
사진·글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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