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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차례비-주거비 내놔라"···명절 반란, 부모도 소송 건다

중앙일보 2019.09.14 05:00
매년 명절이면 이른바 ‘명절증후군’ 때문에 이혼을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명절과 이혼 소송 증가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통계 수치에서는 일부 상관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드러나기도 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6년을 기준으로 하루 평균 이혼 신청 건수가 200여건 정도인데 설이나 추석 이후 10일간 일평균 신청 건수가 500여 건으로 늘었다. 명절증후군으로 인한 이혼을 단순 우스갯소리로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명절증후군 [중앙포토]

명절증후군 [중앙포토]

 
한 가정법원의 판사는 "명절 이후 이혼 접수 건수가 늘어나는 것은 평소 배우자나 가족들한테 쌓여있던 불만이 명절을 계기로 폭발해 이혼을 고려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명절이 이혼의 원인이 됐다기보다는 그 전부터 쌓인 가족 간 갈등에 명절이 '방아쇠'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혼 사유 됐다면…시가·처가에도 손해배상 가능 

최근에는 이혼소송을 낼 때 배우자뿐 아니라 배우자의 가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내는 사례도 종종 있다. 올해 2월에도 지역의 한 가정법원에서 이혼을 결심한 며느리 A씨가 시어머니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 있었다.

 
A씨는 남편과 결혼 초기부터 가사 및 육아 분담 문제로 다툼이 잦았다. 거기다 시어머니가 결혼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A씨와 남편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하자 시어머니는 A씨 어머니에게 "두 부부의 불화가 심하니 이혼시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A씨는 남편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면서 "시어머니 역시 이혼을 종용하고, 혼인관계를 파탄 나게 한 원인이 됐으므로 위자료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부부 관계 파탄 원인은 A씨 남편에게 있으므로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어머니에 대한 위자료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A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의 주장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취지였다.
 
드물긴 하지만 배우자가 아닌 그 가족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는 사례도 있다. 2012년에는 이혼 소송을 낸 B씨에게 남편이 2000만원, 시부모가 10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당시 B씨의 남편은 혼인 신고 3개월 만에 아내와 상의도 없이 할머니, 부모, 동생 2명을 신혼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했다. 2년 뒤 B씨 부부는 분가했지만, 시댁 식구들의 간섭은 계속됐고, 이로 인해 부부 사이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다툼은 종종 몸싸움으로까지 번졌는데 B씨 남편은 다툼이 있을 때 부모를 다툼 현장으로 불렀고, 부모와 함께 B씨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법원은 "분란의 원인을 만든 남편이 이에 항의하는 B씨를 폭행했고, 자녀의 혼인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며 며느리에게 폭언 내지 폭행을 한 시부모에게 가정 파탄 사유가 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남편뿐 아니라 시가 식구들 역시 B씨가 입은 정신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가족 손배소?…드러나지 않을뿐 종종 있어

부산의 한 가정법원 판사는 “3년간 가사소송을 진행하며 시부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를 2번 정도 담당했다”고 말했다. 시가 식구나 처가(妻家) 식구에게 소송을 내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사건이 커질 수 있어서 당사자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은 이상 부모를 상대로 소송까지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반면 이혼 소송을 주로 맡는 김한솔 변호사(법무법인 오현)는 "시가나 처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실제 통계나 판결에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소송에서는 배우자에게 최종 책임을 묻게 되므로 절차상 손해배상 상대를 배우자로만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김 변호사는 "시가나 처가로부터 폭행이나 폭언을 들었다면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런 일은 일상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많은 것도 한 이유"라고 말했다. 
 
명절에는 모인 식구만큼 갈등이 깊어지기 쉽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명절증후군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중앙포토]

명절에는 모인 식구만큼 갈등이 깊어지기 쉽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명절증후군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중앙포토]

 
대구가정법원에서는 2013년부터 명절을 전후로 가족 상담실을 운영한다. 명절 전후 부부갈등·고부갈등을 겪는 시민들에게 법원 내 상담센터를 열어 전문 자문위원들이 갈등이 소송까지 가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매년 20~25쌍의 부부가 꾸준히 찾고 있다고 한다. 함병훈 대구가정법원 공보판사는 "상담실에 오는 가족뿐 아니라 가사소송에서는 감정싸움이 커지는 경우가 다수"라며 "상담실을 찾고 전문가와 대화하다 보면 소송에는 이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모는 자녀에게 '부양비 소송'

[중앙포토·연합뉴스]

[중앙포토·연합뉴스]

반대로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에는 울산지방법원에 88세의 노모 C씨가 장남을 상대로 부양료 청구소송을 냈다. C씨는 아들에게 매달 100만원씩 부양료를 달라고 주장했다. 부양료에는 병원비와 주거비, 식사비뿐만 아니라 설과 추석, 남편 제사비와 C씨 자신이 사망했을 때의 제사비, 묘지관리비 등도 포함돼 있었다. 법원은 C씨 청구 내용 중 현재 C씨가 부담하고 있는 설·추석·남편 제사비와 병원비를 계산해 장남에게 C씨가 사망할 때까지 월 13만원가량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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