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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마이너스 물가시대, 860만 국민·기초·공무원연금 깎일 판

중앙일보 2019.09.12 00:02 종합 19면 지면보기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차례상에 올릴 과일 등 제수용품을 구입하기 위한 시민들로 부산 부산진구 부전시장 거리가 북적이고 있다. [뉴스1]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차례상에 올릴 과일 등 제수용품을 구입하기 위한 시민들로 부산 부산진구 부전시장 거리가 북적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0.04%이다.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마이너스는 처음이다. 이런 초유의 사태가 닥치자 연금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공무원·사학·군인 연금도 마찬가지다.
 

8월 소비자 물가 -0.04% 파장
물가 상승에 연 2.5%씩 올라
이제 연금 삭감 피할 수 없게 돼
일부 “당장 깎을 상황 아니다”

당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연금액이 매년 1월 전년도 소비자 물가 변동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 51조, 공무원연금법 35조 등에는 ‘전년도의 전국소비자 물가 변동률에 해당하는 금액을 더하거나 뺀다’고 돼 있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법을 따르게 돼 있다. 이런 조항에 따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매년 4월 연금액을 인상했다. 올 4월(내년에는 1월에 변동)에는 지난해 소비자 물가상승률 1.5%만큼 올렸다. 2000~2019년 연평균 2.53% 올렸다.
 
신규 수령자 연금 산정에도 영향 
 
물가 반영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의 장점이다.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으면 연금액의 실질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이런 장치를 뒀다. 대부분의 개인연금은 이런 장치가 없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 신뢰를 높이려고 최대의 장점으로 홍보해왔다. 지금까지는 그게 통했다. 물가가 내려간 적이 없어서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이너스 물가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기획재정부는 연말까지 올해 물가가 0%대 중후반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올해 당장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경제 전반에 걸쳐 상품·서비스 가격이 지속해서 하락하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 연금이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인상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민연금 인상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민연금 수령자 470만 명, 기초연금 513만명, 공무원연금 51만 명, 사학연금 약 8만 명, 군인연금 9만여 명 등이 영향을 받는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중복 수령자를 제외하면 약 860만 명이 영향권에 들어있다. 앞으로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계속 수령자로 진입하고 있어 영향권이 더 확대된다. 기초연금 대상인 65세 이상 노인도 급증하고 있다.
 
법대로 하면 마이너스 물가대로 연금을 깎아야 한다. 또 신규 연금 수령자의 연금을 산정할 때에도 영향을 받는다. 과거 소득을 현재 소득으로 재평가할 때 물가 변동률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법대로 할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 최승현 연금급여팀장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하고 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고 말한다. 복지부 서일환 기초연금과장도 “검토 중”이라고 말한다. 국민연금의 결정이 다른 공적연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복지부가 고민하는 이유는 또 있다. 국민연금 평균액이 40만원 정도에 불과한 점이다. “연금이 얼마 되지 않는데 깎으려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깎지 않으면 실질 연금을 올려주는 꼴이 된다. 복지부는 물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져도 국민연금심의위원회(위원장 보건복지부 차관)의 심의를 거치게 돼 있어 심의 과정에서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연금은 깎이고 건보료는 오를 수도 
 
국민연금 수령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민연금 수령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본은 먼저 이런 일을 겪었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이 2016년 8월 발간한 ‘연금이슈 & 동향분석 33호’에 따르면 2000~2002년 소비자 물가가 마이너스였는데도 특례를 적용해 당장 연금을 깎지 않았다. 그러다 2013년 경기가 회복되면서 3년에 걸쳐 2000~2002년 마이너스 물가 분을 반영했다. 2013년 1%, 2014년 1%, 2015년 0.5% 깎았다. 2002년 직후 물가와 임금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디플레가 지속하면서 2013년에서야 마이너스 물가를 반영한 것이다.
 
2017년 기준 일본의 국민연금 평균액은 163만원, 기초연금은 57만원이다. 한국(2019년)은 각각 40만원, 25만~30만원이다. 일본보다 훨씬 적다. 일본의 예를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초연금 수령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기초연금 수령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게다가 물가가 마이너스가 돼도 은퇴자의 건강보험료 같은 것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 강화) 때문에 매년 3% 이상 건보료가 오르게 돼 있다. 고령화 때문에 건보료를 지속해서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과표 현실화 정책에 따라 재산세도 올라간다. 재산 과표가 오르면 건보료도 올라간다. 지출이 늘어나는 마당에 국민연금 깎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상황이라 당혹스럽다”며 "국민연금 수령자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시행 초기여서 물가가 마이너스가 된다고 해서 연금을 깎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처럼 연금을 깎지 않다가 나중에 경기가 좋아지면 반영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디플레만큼 연금을 삭감했지만 우리는 국민연금 불신이 크기 때문에 디플레가 현실화할 경우 당분간 삭감하지 않고 전년도 연금을 지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디플레이션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면 2023년 5차 재정재계산을 할 때 디플레에 비례해서 연금액을 삭감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되 1년치 물가보다 3년 치를 가중평균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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