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김기찬의 인(人)프라

김기찬 기자 사진
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추석 연휴 끝날 즈음 회사에 "나 휴가 쓸께요"하면 무단결근일까?

중앙일보 2019.09.11 05:00
 
휴가 계획 [중앙포로]

휴가 계획 [중앙포로]

올해 추석 연휴가 짧다. 고향에 내려간 구보씨는 며칠 더 쉬고 싶어졌다. 귀경 전쟁도 피할 요량으로 용기를 냈다. 연휴 마지막 날 회사 상사에게 전화했다. "저, 연차휴가를 좀 쓰겠습니다. 3일 뒤에 출근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황당해하는 상사의 표정이 읽혔다.
 
이럴 경우 구보씨는 연차휴가를 쓸 수 있을까. 상사가 승인을 안 해주면? 출근하지 않으면 무단결근이 될까.
 

휴가 신청하면 무조건 줘야…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있으면 시기 변경은 가능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는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한다'(시기지정권)고 명시하고 있다. 강행규정이다. 따라서 근로자가 휴가를 신청했는데 안 주면 처벌(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된다. '다만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으면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시기변경권)고 명시해 놨다. 경영 어려움이 예상될 경우에 한해 날짜를 변경할 수 있을 뿐 무조건 휴가를 줘야 한다는 뜻이다.
 

휴가시기 안 정하고 무작정 쉬면 무단결근

연차휴가를 쓸 때 주의할 점도 있다. 시기지정권은 근로자의 연차휴가에 대한 권리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언제까지 사용할 것인지 특정해야 한다. 쉬는 날짜를 정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무턱대고 쉬면 휴가로 인정받을 수 없다. 무단결근이 된다.
 
휴가 사용 신청은 휴가제도의 취지상 사전에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업무 차질을 최소화하고 그에 따른 작업 인력의 재배치 시간을 회사에 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교통사고처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건·사고로 인한 경우에는 사후 청구도 인정된다.
 

휴가신청 반려했는데 휴가 쓰면?…법원 "그래도 정당한 휴가"

한데 상사나 회사가 승인 결재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휴가 신청 자체가 반려되는 경우도 심심찮다. 그래도 휴가 사용을 막을 수 없다. 써도 된다는 뜻이다.
 
흔히 각 회사의 취업규칙에 휴가와 관련  '부서장 승인을 득해야 한다' '연차휴가는 최소한 1주일 전에는 신청결재를 올려야 한다' '휴가 신청 사유를 기재하지 않으면 불허한다'와 같은 내용이 담긴 경우가 많다. 이런 규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근로기준법은 강행규정으로 무조건 지켜야 한다. 이를 위반한 노사자치규범이나 회사 내규는 무효다. 근로자가 휴가를 신청하면 주라고 법에 명시돼 있는데, 내규가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최근 법원 판례를 보면 명확해진다. 가전제품 수리 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 토요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 사이에 연차휴가 신청서를 냈다. 회사는 업무량이 폭증하는 시기라며 신청서를 반려했다. 근로자는 별다른 보고 없이 5월 2일부터 결근했다. 관리자가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며 연락을 취했지만, 답이 없었다. 근로자는 8일 출근했다. 회사는 24일의 정직 징계처분을 내렸다.
 
1심은 "징검다리 연휴에 가전제품 수리요청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휴가 시기를 일정 부분 제한할 필요가 있어 연차휴가 신청을 반려했는데도 무단으로 결근했다. 회사의 연락도 일절 받지 않았다. 징계가 타당하다"고 했다.
 
2심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은 올해 4월 "휴가 사용의 사유는 시기변경권 행사의 정당성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시기변경권은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한해 행사할 수 있다. 인력이 부족해 단순히 남아있는 근로자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가능성만으로 시기변경권을 행사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의 승인 여부는 연차휴가 사용을 확인하기 위한 확인규정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휴가 청구를 하면 무조건 줘야 한다.
 

휴가 사용은 구두 통보도 가능…전화로 신청하는 것도 인정

구보씨처럼 연차휴가 사용이 구두 통보로도 가능할까. 연차휴가 사용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면 족하다는 것이 판례다. 서면이든, 구두든 상관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당일에 전화로 신청해도 적법하게 연차휴가를 신청한 게 된다.
 
한데 직장생활이라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 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차휴가를 내는 데 회사나 상사, 동료, 후배로부터 "이후 일은 내 책임 아니다" "네가 자초한 거다" "사회생활 그렇게 하는 것 아니다" "다른 사람 두 배로 힘들어지는데, 염치가 없다" 등의 반응이 돌아오기에 십상이다. 이런 반응이 그저 말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연말 인사나 고과 평정 등에서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추후 불이익 받으면?…연차휴가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를 근로자가 증명해야

근로자가 신청한 휴가를 안 주면 회사가 처벌받지만,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을 이유로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법제연구실 수석위원은 "연차휴가로 인해 고과 등의 불이익이 발생했는지, 그 인과관계 입증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차휴가 시기를 바꿀 때 회사가 업무상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해야 하듯이, 반대로 근로자는 불이익을 받은 게 연차휴가를 맘대로 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게 어렵다는 뜻이다. 박정연 노무사(노무법인 마로 대표)는 "직장생활에선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약속과 신뢰에 기반을 둔 신의칙의 원칙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배너

김기찬의 인(人)프라

이메일 받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