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업에 입찰담합 손배소 냈다 정부 패소...대법, “소멸시효 완성 안됐으니 다시 심리해야”

중앙일보 2019.09.10 06:00
 
대법원

대법원

대한민국 정부가 입찰담합이 적발된 건설사 5곳(SK건설·대림산업·포스코건설·현대건설·현대산업개발)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대한민국 정부가 5개의 건설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대규모 국책사업 입찰담합...공정위 시정명령 내려

 
2009년 9월 포항지방해양항만청은 영일만항의 외곽시설 축조공사 입찰 공고를 냈다. 총 2809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국책사업이었다.
 
5개의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했다. 포항지방해양항만청은 건설사들이 제출한 설계와 가격을 바탕으로 SK건설을 공사의 낙찰자로 최종 선정했다. 입찰에서 탈락한 나머지 4개의 기업에는 설계비의 일부를 보상해줬다.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문제는 5년 후에 발생했다. 2014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이들의 담합행위가 발각됐다. 알고 보니 해당 기업들은 가격이 아닌 설계만으로 경쟁하자고 미리 뜻을 모았다. 공정위는 이를 공정거래법에 따른 부당한 공동행위로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1·2심 “5년 지나 소멸시효 완성”

 
대한민국 정부는 기업들이 담합을 하는 바람에 낙찰금액이 높아져 손해를 입었다며 건설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보상해준 설계비의 일부도 다시 돌려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1·2심 모두 원고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해당 기업들의 공동행위가 불법행위라는 점은 인정됐다. 그러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봤다.
 
 
원심은 1차분 공사계약 체결일인 2010년 3월 24일 손해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정부가 소송을 제기한 시점인 2015년 11월 13일에는 이미 5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것이다. 국가재정법 제9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를 5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설계보상비도 소멸시효가 완성된 건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낙찰탈락자들에게 1차로 설계비 일부를 보상해준 시점은 2010년 4월 초. 정부가 소송을 제기했을 땐 5년이 지난 후였다.  
 

대법원 “담합한 자들에 대해서는 애초에 보상의무 없어”

 
대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1차 계약일에 모든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차수별로 계약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 소멸시효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설계보상비에 대해서도 건설사들이 정부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입찰 무효에 해당하는 사유가 존재하는 이상 다른 사정 등에 의해 입찰이 무효로 되지 않았더라도 위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에 설계비를 보상받은 자는 이를 반환하여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설계비 보상 규정의 입법취지가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들의 수를 늘려 진정한 경쟁을 통해 공정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 “설계비 보상 규정의 위와 같은 입법취지에 반해 서로 담합하는 등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설계비 상당액을 보상할 이유가 없다고 봐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