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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보다 고운 대나무 상자 '채상'에 기쁨과 복을 담다

중앙일보 2019.09.10 05:01 종합 20면 지면보기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서신정 선생.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서신정 선생.

“예부터 귀한 것들을 담아 보관하고 선물할 때 썼죠.”
전남 담양 죽녹원 자락에 아담하게 들어선 채상장전수관.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서신정(60) 채상장의 터전이다. 그는 아버지 서한규 장인의 대를 잇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서신정 채상장
통대 쪼개고 또 쪼개 천연염색
옛 문헌 연구하며 문양도 개발
아버지, 아들까지 3대가 한 길

채상(彩箱)이란 대나무를 종이처럼 얇고, 실처럼 길게 쪼개 색을 입혀 짠 상자를 말한다. 전통 채상은 보통 뚜껑까지 갖춘 3개 또는 5개의 합이 한 세트다.  
서신정 채상장의 작품. 쪽물을 들인 대오리로 짠 3합 채상이다. 텟대의 붉은색과 모서리 보호를 위해 붙인 모시천까지 고운 빛깔들이 조화롭게 어울렸다.

서신정 채상장의 작품. 쪽물을 들인 대오리로 짠 3합 채상이다. 텟대의 붉은색과 모서리 보호를 위해 붙인 모시천까지 고운 빛깔들이 조화롭게 어울렸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임금에게 진상하는 귀한 물건들을 담을 때 사용했다고 해요. 좋은 채상을 임금에게 선물하면 벼슬을 내려줄 정도였다죠. 조선 후기에는 사대부뿐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혼수품으로 널리 쓰였다고 해요.”      
대나무 자생지로 유명한 담양은 예부터 죽세공품이 발달했다. 하지만 대나무에 색을 입혀 직물을 짜듯 만드는 채상은 흔치 않았다. 염색을 안 한 대나무로만 엮은 것은 ‘소죽’이라는 말로 따로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채상을 만드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3합·5합 채상 한 세트를 만드는 데 한 달이 족히 걸린다.  
대나무 채상 길이에 맞게 대나무 자르기

대나무 채상 길이에 맞게 대나무 자르기

대 쪼개기

대 쪼개기

일정하게 폭을 맞춰 조름 빼기

일정하게 폭을 맞춰 조름 빼기

대를 종잇장처럼 얇게 만들기 위해 대 훑기

대를 종잇장처럼 얇게 만들기 위해 대 훑기

문양 넣어 바닥짜기

문양 넣어 바닥짜기

모서리 접기

모서리 접기

채상 제작 기술은 대나무 껍질을 균등하게 얇게 떠내는 데서 시작한다. 3~4년을 자란 왕죽 통대의 지름은 120mm. 이것을 칼로 쪼개고 또 쪼갠 다음, 너무 무른 속대를 분리해 버리고 다시 쪼갠다. 삼각형 모양의 칼 사이에 넣고 2.8.mm 두께로 또 쪼개는데 이 과정을 ‘졸음 뺀다’고 한다. 다음은 ‘대뜨기’를 할 차례다. 입으로 물고 0.5mm 두께가 될 때까지 얇게 벗겨내야 한다. 이걸 무릎에 가죽을 대고 칼로 0.25mm 두께가 되도록 다시 한 번 훑어 낸다. 염색물에 담가 말리기를 서너 번. 곱게 색이 물든 후에야 비로소 문양을 넣어가며 겉 상자를 짠다. 속 상자를 짜서 안에 포갠 다음 텟대를 둘러 단단히 틀을 잡고 모시 천으로 감싸둔다. 속 상자 안에는 초벌 한지 도배를 한 다음 모시 천으로 한 번 더 도배한다. 여기저기 부딪칠 때 상하지 말라고 겉 상자 네 귀퉁이에 모시 천 조각을 둘러 기능성과 미감을 더해야 비로소 완성이다.    
채상장 서신정 선생과 남편 김영관씨.

채상장 서신정 선생과 남편 김영관씨.

이렇듯 채상 작업은 힘과 섬세함이 모두 필요해 염색 전까지 대나무를 뜨는 일은 남자가, 염색하고 대오리를 짜는 일은 여자가 맡았다. 서신정 장인의 옆에는 남편 김영관(61)씨가 있다.  
일곱 자매 중 둘째였던 서신정 장인이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 결심한 건 열아홉 살 때다. “난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다짐했는데, 11월의 어느 날 밤 대청마루에 앉아 일하시는 아버지의 등이 어찌나 짠해 보이던지 가슴이 시렸죠. 그날부터 아버지를 돕겠다고 결심했죠.”
국가무형문화재 서신정 채상장 3대. 왼쪽부터 아들 김승우씨, 아버지 고 서한규씨, 서신정씨, 남편 김영관씨. 가족 모두가 채상 한 길을 가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서신정 채상장 3대. 왼쪽부터 아들 김승우씨, 아버지 고 서한규씨, 서신정씨, 남편 김영관씨. 가족 모두가 채상 한 길을 가고 있다.

마지못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할수록 재밌었다고 한다. 탁월한 손재주와 더불어 불붙은 열정은 매일 새벽 1~2시까지 채상을 붙들게 했고, 마침내 옛 문헌을 공부해가며 50여 가지 문양을 복원 및 개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근대 이후 손쉬운 화학염료로 대오리를 염색하던 것을 천연 염색으로 바꾸고, 색의 종류도 5가지로 늘려 전통 색인 오방색을 사용하게 된 것도 서 장인이 노력한 결과다. 합외에 베개·소쿠리·부채 등이 전부였던 제품 종류도 늘렸다. 핸드백이나 브로치, 피크닉 바구니, 도시락, 모빌 등 현대 장식품을 만들고 소반과 반닫이에도 채상을 입히기 시작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서신정 채상장이 복원, 개발한 채상 무늬들.

국가무형문화재 서신정 채상장이 복원, 개발한 채상 무늬들.

서신정 채상장이 개발한 모빌. 창문에 걸어두면 때깔 고운 장식이 된다.

서신정 채상장이 개발한 모빌. 창문에 걸어두면 때깔 고운 장식이 된다.

“내가 밤새도록 새로운 뭔가를 만들며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그러셨죠. ‘너는 왜 사서 뻘짓(전라도 사투리로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요. 그런데 저는 그게 그렇게 재밌었네요.”(웃음)
인쇄업을 하던 남편 김영관씨는 기계 버튼 하나로 수백, 수천 장을 찍어내는 자신의 일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생산성을 가진 채상 일을 답답해했지만, 결국 아내의 열정과 설득으로 장인어른께 채상 제작을 배워 벌써 20년째 채상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채상 3합(49x32x19mm)의 가격은 700만~1000만원대다. 누구는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불평할지 모르겠지만 아내와 남편이 한 달을 꼬박 매달려 만든 것이니 두 사람에겐 최고의 죽세공예품을 두고 하는 가격 타령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좋아서 재밌어서 채상과 함께 지내온 40년. 가장 힘든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니 서신정 장인은 “아들이 이 길을 가겠다고 말할 때였다”고 답했다. 아들 김승우(30)씨는 현재 채상자 전수자 과정을 거쳐 이수자로서 부모님의 일을 돕고 있다.  
채상장 서신정 선생의 아들 김승우씨는 채상 이수자로서 대를 잇고 있다. 김승우씨가 만든 채상 클러치와 가방.

채상장 서신정 선생의 아들 김승우씨는 채상 이수자로서 대를 잇고 있다. 김승우씨가 만든 채상 클러치와 가방.

“아들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는데 군대 제대 후 그러더라고요. 외동인 자기가 이 일을 잇지 않으면 가업이 끊기니 한 번 해보겠다고. 외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일을 배워둬야겠다고. 기특하면서도 마음이 짠해서 많이 망설였는데 지금은 아주 든든합니다.”
김승우씨는 올해 전주 국립 무형유산원의 ‘무형유산 전통공예 창의공방’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전주에 머물며 소목·누비·염색 등 다양한 분야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는 벌써 채상 작가로서 자신만의 핸드백과 피크닉 박스 등도 선보였다. 서한규-서신정-김승우.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서도 흔치 않은 채상을 3대째 잇고 있는 가족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채상을 일러 ‘비단과 같은 상자’라고 했다. 결이 곱고 때깔이 고와 비단에 버금간다는 의미다. 햇살과 바람이 키운 대나무를 곱고 얇게 떠서, 자연의 색을 입힌 다음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대오리를 짰으니 그 귀함이 오죽할까.          
“채상 뚜껑에는 편죽 기법으로 여러 글자를 집수하는데 쌍 희(囍)자가 대표적이죠. 희상가희(喜上加喜), 기쁨이 두 배가 된다는 뜻입니다. 밑짝에는 오복을 부른다는 의미로 복(福)을 집수하죠. 받는 분에게 기쁨과 복을 드리는 물건이 채상입니다.”
담양=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오종찬(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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