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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최저임금 때문에…91세 노모가 식당 반찬을 날랐다

중앙일보 2019.09.10 00:03 종합 26면 지면보기

한숨 끝에 정당 만들기 나선 소상공인들

서울 종로에서 식당 ‘왕벌집’을 운영하는 이근재씨가 전표를 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서울 종로에서 식당 ‘왕벌집’을 운영하는 이근재씨가 전표를 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과거에 우리는 모래알이었다.”
 

인근 가게들 직원 내보내
배달 주문은 거의 1인분
“왜 우리 목소리 듣지 않나”
소상공인들 정치 창당 선언

소상공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한다. 일거리를 박차고 거리에서 확성기를 틀어대는 노동단체를 좀체 따라 하지 못했다. 큰 목소리를 낼만큼 소상공인들을 모으기부터가 힘들었다. 먹고 살기 급급해 단 하루일지언정 가게 문 닫기가 버거웠던 까닭이다. 심지어 2018년도 최저임금을 16.4% 올리기로 결정했던 재작년 여름에도 별다른 집회나 시위를 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확 바뀐 건 1년 전이었다. 지난해 여름의 끝 무렵인 8월 29일 전국에서 모인 1만여 명 소상공인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채웠다. 최저임금을 다시 10.9% 인상키로 한 직후였다. 이들은 “가게 문 닫고 나왔다”며 “오늘 하루 닫지 않으면 영영 닫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장대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도 국민이다”를 부르짖었다. 노조는 끌어안으면서 왜 700만 소상공인은 외면하느냐는 부르짖음이었다. 주인과 직원을 합쳐 5명 이하일 때는 최저임금을 낮춰 달라고도 했다. 얼마 전까지도 이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는 사이 소상공인들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공시지가 올라 임대료 걱정
 
최저임금 때문에 아주머니 한 명을 내보내고 대신 91세인 어머니 최춘옥씨(오른쪽)가 행주를 손에 들었다. 권혁주 기자

최저임금 때문에 아주머니 한 명을 내보내고 대신 91세인 어머니 최춘옥씨(오른쪽)가 행주를 손에 들었다. 권혁주 기자

뒷골목의 흔한 식당이었다. 홀에는 4인용 탁자 6개, 앉은뱅이 마루엔 4개가 놓여 있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옆 골목의 ‘왕벌집’ 풍경이다. 메뉴는 7000원짜리 각종 찌개와 제육볶음 등이다. 이근재(55·한국외식업중앙회 종로구지회장)씨가 1995년 문을 열었다. 이씨는 “25년째 장사를 하고 있지만 요즘이 제일 힘들다”라고 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그에게 삼중고를 던졌다. 우선 당연히 인건비 부담이 늘었다. 더불어 각종 경비가 다 올랐다. “농사짓는 품삯, 물건 나르는 인건비에 각종 수리비 같은 게 다 뛰었어요. 거긴들 최저임금 영향 안 받나요.” 이에 더해 손님마저 줄었다. 가라앉은 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일대 가게들이 줄줄이 직원을 내보낸 탓이 크다. 최저임금 때문에 식당을 이용할 잠재 고객 자체가 확 줄어든 것이다. 이씨는 “대부분 가게 사장 혼자 점심을 먹는다”고 전했다. 배달 주문도 거의 1인분이다.
 
별수 없이 왕벌집도 구조조정을 했다. 점심때 일하던 아주머니 4명 가운데 한 명을 내보냈다. 대신 91세인 이씨의 어머니 최춘옥씨가 행주를 잡았다(이씨는 미혼이다). 아흔에 접어들어서도 건강을 유지하며 아침 일찍 식당에 나와 찬거리를 장만하고 오전 11시쯤 집에 들어가던 어머니다. 이젠 아주머니 한 명의 빈자리를 메꾸려 점심시간 넘어 오후 2~3시까지 식당에서 일한다. 홀에서 반찬을 나르고, 손님이 일어나면 얼른 다음 손님 받으려 자리를 치우고 행주로 상을 닦는다. 힘들지 않으시냐는 물음엔 이렇게 답했다. “무릎이 아프지만…, 힘들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좀 낫고….” 주인 이씨도 근무 시간을 늘렸다. 직접 배달을 다닌다.
 
정책연대를 발표하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사진 왼쪽)와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 [뉴스1]

정책연대를 발표하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사진 왼쪽)와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 [뉴스1]

올해 상반기에는 그래도 매출이 좀 늘었다고 했다. 일대를 부흥시키는 서울시의 ‘다시 세운’ 프로젝트 덕에 빈 점포가 줄고 유동 인구가 증가했다. 그러나 그가 집에 들고 가는 돈은 늘지 않았다고 한다. 인건비·재료비가 죄다 올라서다. 매출이 증가한 만큼 부가가치세도 더 내야 했다.
 
지난달에는 적자를 봤다. 휴가를 많이 떠나는 8월의 특성이다. 추석이 낀 이달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했다. “휴가와 추석 때는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잘 사 먹지를 않아요.”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한 내년은 어떨까.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정부가 공시지가를 잔뜩 올리지 않았습니까. 건물주들이 재산세를 한참 더 낼 테니 임대료를 올리겠지요. 저는 건물주와 얘기가 잘 돼 있지만, 다른 가게 주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까지 소상공인의 한숨을 늘렸다. 이래저래 치이는 소상공인들이다.
 
소상공인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음은 통계가 입증한다. 자영업자 상당수는 소득 최하위인 1분위로 추락했다. 자영업자들이 벌어들이는 ‘사업소득’은 올 2분기에 월평균 90만원으로 1년 전보다 5만원 줄었다. 가격을 올리고 종업원을 내보냈어도 수입이 감소했다. 직원만큼 못 버는 가게 주인이 수십만 명으로 추정된다. 최저임금을 잔뜩 올리기 전인 2017년에도 이 숫자가 16만2000명이었다. 막막해진 소상공인들은 빚에 기댔다. 2017년 말 181조원이던 도매·소매·음식·숙박업 대출은 올 6월 말 214조원으로 1년 반 사이에 33조원 늘었다.
  
“자영업 비서관은 우리와 다르다”
 
지난해 8월 29일 소상공인들의 최저임금 항의 집회. [연합뉴스]

지난해 8월 29일 소상공인들의 최저임금 항의 집회. [연합뉴스]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결국 일어섰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창당을 선언했다. 가칭 ‘소상공인국민행동’이다. 지난 5일에는 민주평화당과 만났다. 민주평화당 측은 “정책 연대”라고 표현했다. 최승재(52)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념과 색깔 다 버리고 대의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면 함께 하자고 평화당에 전했다. 우리처럼 힘없는 이들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 토양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직접 정당 창당을 추진해야 할 정도로 소상공인들 주장이 외면당했나.
“우리 행사에 정치인들이 참여했다가도 돌아서면 그뿐이었다. 우리는 존재가 없다시피 했다. 유치하지만 소상공인국민행동 표어를 ‘우리도 존재한다. 그래서 행동한다’로 했다. 오죽하면 이렇게 정했겠나.”
 
모든 게 최저임금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런데 처음 16.4% 올릴 때는 조용하지 않았나.
“그땐 몰랐다.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면 소비가 늘어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도 잘 먹고 잘살 거라고 했다. ‘좋은 제도’라고 칭찬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런가 보다’ 했다.”
 
지난해 재차 10.9% 인상을 결정하자 일제히 들고 일어섰다.
“우리 관심은 ‘손님이 많이 오느냐,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2년 연속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서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그 와중에 몇몇 정치인은 ‘최저임금도 못 주면 문 닫는 게 낫다’고 불을 질렀다(당시 일부 여당 의원들이 라디오 등에 나와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정부가 ‘일자리 안정자금’을 만들어 사실상 임금 보조를 해 줬다.
“그거 받으려면 4대 보험에 들어야 하는데, 원하지 않는 근로자들이 상당수다. 자기부담금을 월급에서 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점주도 그만큼 더 부담해야 해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하지 않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에 ‘자영업 비서관’을 새로 뒀다. 그런데도 소상공인 주장은 왜 반영이 안 되나.
“‘자영업 비서관’이지, ‘소상공인 비서관’이 아니다. 인태연 비서관은 건물주다. 정부와 이야기하는 쪽은 대체로 규모 있는 사업을 한다. 우리 같은 소상공인과 처지가 다르다. 이들은 경쟁 상대인 대기업을 주로 공격한다.”
 
요즘 소상공인들이 얼마나 힘든가.
“모두 그저 버티는 수준이다. 직원 내보내고 혼자 일하니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생명이 단축되는 느낌’이라는 사람도 있다.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을 보면서는 자식들한테도 미안해졌다. 우린 누구처럼 수시 합격할 스펙 만들어 줄 능력이 안 된다. 그렇다면 20% 뽑는 정시라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도록 사교육을 시켜야 할 텐데, 그만큼 돈도 못 번다.”
  
“우린 죽어가는 냄비 속 개구리”
 
최 회장 표현 대로다. 정부의 정책은 ‘좀 있는 자영업자’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자영업자 가운데 제일 매출이 영세한 계층은 카드 수수료 인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임대료 인상 억제 또한 매장이 클수록 이익이다. 최저임금 인상 뒤에서 덩달아 급여가 확 오른 귀족노조만 웃음 짓는 것과 비슷한 광경이다. 반대편에서 소상공인들은 가슴에 절망과 울분을 쌓아 간다. 왕벌집 이근재씨는 그런 소상공인들을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서 죽어가는 개구리”에 비유했다. 개구리는 스스로 죽어간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더 서글프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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