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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 종사자, 10명 중 3명이 성폭력 피해 경험했다"

중앙일보 2019.09.09 15:43
배우 A씨는 한 감독으로부터 작품 출연을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받았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성관계를 가지면 차, 집, 작품의 주·조연 역할을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A씨가 거절했지만, 감독은 3년 가까이 끈질기게 이를 요구했다. 
 
방송 스태프 B씨는 선배 스태프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 ‘할 말이 있다’고 부른 뒤 대기실에서 문을 잠그고 가슴을 만졌다. 그러나 B씨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지난 해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위드유’ 집회에서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 관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 해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위드유’ 집회에서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 관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2019 대중문화예술 분야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분야에 종사하는 응답자(출연자·작가·스태프·기타 방송 관련 종사자) 468명 중 142명(30.3%)이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방송계 종사자 10명 중 3명꼴이다. 2015년 공공기관 400곳과 민간사업체 1200곳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전국 성희롱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피해자 비율(6.4%)의 5배에 달하는 수치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여성 중 36.4%가, 남성 중 19%가 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했다. 피해 유형별로는 ▶성희롱 98명 ▶PC·핸드폰 등을 이용해 음란 메시지를 받음 80명 ▶성추행(폭행·협박 수반하지 않은 경우) 41명 ▶스토킹 16명 ▶성추행(폭행·협박 수반) 13명 ▶강간미수 12명 ▶불법촬영 7명 등의 순서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특히 방송분야 성폭력은 감독이나 PD, 선배 등 권력이나 지위에서 우위인 가해자로부터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분야 강간 피해자의 경우, 34.6%가 ‘연출PD 또는 감독’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19.2%가 ‘방송사 임직원’, 11.5%가 ‘선배’로부터 피해를 호소했다.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답한 응답자의 경우, 약 32.8%가 ‘연출 PD 또는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방송사 임직원(19%)’, ‘선배(10.2%)’ 등이 뒤를 이었다. 성희롱 피해자의 약 19.4%가 ‘연출PD 또는 감독’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했으며, ‘선배(15.9%)’, ‘방송사 임직원(15%)’, ‘동료(13.1%)’ 등이 뒤따랐다.
 
심층 면접에서 피해자들은 “연출가라는 커다란 권력 밑에 있는 선배들은 (성폭력) 피해를 알면서도 침묵했고, 그 밑에서 후배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배우 C씨는 “‘이래야지만 배우가 되나 보다. 이런 것이 예술인가보다, 이런 것까지 다 받아들여야 예술가가 될 수 있구나’라는 암묵적인 규칙을 선배들이 만들었다. 그건 아직도 만연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미투 운동이 시작된 뒤인 6월, 국가인권위원회와 문체부가 공동으로 꾸린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성폭력 피해 경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 2478명 중 성희롱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사람은 57.7%였다. 방송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방송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미투 운동으로 분위기가 많이 조심스러웠지만, 여전히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민 의원은 “방송분야 종사 여성들에 대한 보호 시스템을 신속하게 구축해야 한다”면서도 “직급이나 고용형태 등 위치에 따라 남성과 여성 모두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남녀갈등으로 몰고 갈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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