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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변덕에 두번 당한 벤처 "쎄하면 하지 말자" 슬픈 사훈

중앙일보 2019.09.09 06:30

[규제 OUT]

"쎄하면 하지 말자!" 
지난달 27일 찾은 서울 공덕동의 서울창업허브 내 '벨루가' 사무실엔 이런 사훈이 걸려있었다. '께림칙하면 하지 말자'는 뜻이다. 도전과 패기가 넘실대야 할 스타트업 사무실에 '하지 말자'라니. 무엇이 이 스타트업을 이렇게 만든 걸까.
 
2017년 4월 국내 최초로 수제 맥주 정기 배달을 선보인 '벨루가'는 지난 2년간 사업을 두 번이나 접었다. 규제 당국의 입장 번복 때문이었다. 중앙일보는 업계에서 이미 '유명한 실패 사례'가 된 벨루가의 김상민(28) 대표와 공동창업자 김현종(30) 이사를 만나 사훈에 담긴 '기구한' 사연을 들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7일 서울 공덕동의 서울창업허브 벨루가 사무실을 찾았다. 올해 사훈 '쎄하면 하지 말자'가 눈길을 끌었다. 김정민 기자

중앙일보는 지난달 27일 서울 공덕동의 서울창업허브 벨루가 사무실을 찾았다. 올해 사훈 '쎄하면 하지 말자'가 눈길을 끌었다. 김정민 기자

 
2년 동안 두 번 폐업했다고.
2016년 7월 국세청이 '음식과 함께' 조건으로 주류 배달을 허용했다. '치맥' 배달 등의 합법화를 위해서였다. 이듬해 4월 관할 세무서에서 법적 검토를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소량 판매 원칙대로 고객 한명당 한 달에 두 번, 4병씩만 배달했다. 석 달 후인 2017년 7월 주류 고시가 갑작스레 '음식과 함께'에서 '음식과 부수해'로 개정됐다. 치킨·족발처럼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조리된 음식'과 함께라야 술 배달이 된다는 거다. 이때 한번 접었다. 느닷없는 개정이었지만 미성년자 보호, 국민 건강 보호라는 국세청 취지에 동의했다. 그해 11월 포크 스테이크, 수비드 치킨 등 음식과 수제 맥주를 정기 배달하는 '야식 박스'로 사업 모델을 바꿨다. 서비스 재개 당시 국세청 본청 조사관이 "(맥주를) 간단한 견과류랑 배달하던 게 문제였는데, 법령대로 음식에 부수한다면 문제없다"고 확인도 해줬다.
 
벨루가 '야식 박스'의 구성 상품 [사진 벨루가]

벨루가 '야식 박스'의 구성 상품 [사진 벨루가]

 
이때 사업이 꽤 잘됐다고 알고 있다.
접기 전에도 '퇴근 후 수제 맥주 한 잔의 위로'를 좋아해 주시던 분들이 많았다. 사업 재개 때 그런 충성 고객들이 몰렸다. 지난해 5만병을 팔았다. 당시엔 명백한 합법 서비스라는 데에 의심이 없었다.
 
재개했던 사업을 다시 접은 이유는.
올해 6월에 국세청 조사관이 나왔다. "확실하게 양지의 영역, 합법의 테두리에 넣어줄 테니 잘 협조해달라"고 하기에 주류가 부수적 비중(35%)임을 증명할 원가표 등 대외비까지 다 전달하고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다. 이후 국세청은 태도를 바꿨다. 주류 통신판매(통판) 위반 행위라며 과태료 등 행정처분을 예고했다. 근거로는 2018년 9월 '자주 묻는 상담 사례(FAQ)'에 올라온 내용, 이 A4 용지 한장(사진)을 내밀었다.
 
지난해 9월 국세청 홈페이지 '자주 묻는 상담 사례'에 올라온 주류 고시 기준. 벨루가는 "법적 근거 없는 FAQ 1장으로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김정민 기자

지난해 9월 국세청 홈페이지 '자주 묻는 상담 사례'에 올라온 주류 고시 기준. 벨루가는 "법적 근거 없는 FAQ 1장으로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김정민 기자

 
벨루가가 재조사받기 10개월 전에 올라왔던 해당 FAQ는 '치맥 등은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해 괜찮지만, 일반적인 배달음식점과 다른 형태로 회원을 모집해 선결제 받고 정기 배달하거나, 주류 위주로 마케팅하는 행위는 고시 위반'이라는 내용이다. 벨루가는 "일회성 배달은 괜찮고 정기 배달은 안 된다는 점,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블로그 리뷰 등을 '마케팅 행위'로 본 점 등은 납득이 힘들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6일 "주류 통판을 허용하면 국가가 국민에게 술을 권하는 꼴"이라며 "한 스타트업을 위해 허용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담당자의 입장 번복에 대해선 "본청이 한 일이 아니고 담당자 이야길 들어보질 않아서 사실관계를 모른다"고 답했다.
 
술은 민감한 아이템인데 국세청에 가이드라인을 요청한 적은 없었나.
수없이 많았다. '음식과 부수해'의 상세한 기준을 알려달라는 요청, 수제 맥주 통판 기준 완화 요청을 여러 번 했다. 2017년 3월(고시 개정 전)에 질의했을 땐 민원 자체가 반려됐다. 2018년 4월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가이드라인 제시를 요청했고, 5월엔 중소기업중앙회의 주세법 개정 제안 참여, 11월엔 행정안전부·서울시청과 함께 요청을 넣었다. 대부분 답을 못 받았고, 답을 받아도 고시 내용의 반복이었다. 공식 질의 말고 현장 조사관들에게 따로 적법함을 설명했던 적은 정말 많다. 그나마도 지정 담당자 없이 매번 다른 담당자가 왔다. 우리 설명을 수긍하고 돌아가도, 다시 돌아오면 '불법'이라 하더라. 답을 정하고 오는 것 같았다. '벨루가는 불법'이라던 국세청 담당자에게 연락했더니 뭐 하는 회사인지 몰랐던 적도 있다.
 
벨루가 서비스 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고객 후기 [사진 벨루가]

벨루가 서비스 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고객 후기 [사진 벨루가]

 
그러나 국세청 관계자는 "2017년 9월에 대표가 올렸던 국민신문고 건과 2018년 11월 행안부 건(수제 맥주 통판 허용 요청)에는 허용 불가 답변을 줬다"고 반박하면서 "현재 '음식과 부수해' 부분에 구체적인 기준을 추가하는 작업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류 고시에는 남은 허점이 있다. 현행법상 전통주는 국가 육성 차원에서 배달 가능하단 점이다. '국가가 술을 권하면 안 된다'는 원칙과는 모순된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전통주 산업진흥법에 의거, 미국처럼 국가 차원에서 권장하는 장인의 주류 등을 허용한 것"이라며 "시장의 1% 규모일 뿐"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공덕동의 서울창업허브 벨루가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김정민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공덕동의 서울창업허브 벨루가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김정민 기자

 
전통주는 배달이 된다.
업계에서 모순적인 규제라고 말이 많다. 소규모 영세업자 활성화 차원에서 허용하는 건데, 수제 맥주도 국내 브루어리 제조의 경우엔 전통주와 상황이 비슷하다. 애초에 '국민의 무절제한 주류 소비 방지' 같은 발상이 위험하다. 산업과 시장에는 사업 가능성을 풀어주고, 주류 소비 교육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규제 당국에 하고픈 말은.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신사업을 해보려는 창업자들의 선한 의지를 믿어줬으면 한다.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시장에 혼란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위법 행위 전적이 없는데도 유권 해석을 번복해 사업을 중단시키는 일만은 더 없었으면 한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엔 진입 규제란 큰 벽 말고도 사업 시작 후에야 나오는 규제 당국의 유권해석, 담당자 없는 탁상행정 등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53%가 한국에서 제대로 사업할 수 없는 이유다.
 
어린 시절을 버드와이저 본사와 공장이 있는 미국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에서 보내며 갖게 된 '사람들에게 좋은 맥주를 소개하고 싶다'는 김상민 대표의 꿈은 유독 매몰찬 국내 환경 앞에 두 번 멈춰서야 했다. 
 
벨루가는 규제 때문에 기존에 하던 B2C(소비자에게 직접 수제 맥주 판매)는 완전히 접었다. 대신 주류 공급업체와 소·도매상 간의 연결을 도와주는 B2B(기업 간 거래) 플랫폼 사업을 준비 중이다.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업이지만, 최종 소비자에게 다양한 수제 맥주를 쉽고 저렴하게 소개한다는 사업 목표를 지키겠다는 계획이다.
 
서비스 종료 후 벨루가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아듀 벨루가' 사진. [사진 벨루가]

서비스 종료 후 벨루가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아듀 벨루가' 사진. [사진 벨루가]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 대표는 벨루가 사례와 관련해 "법 문제가 아닌 정부 유권해석의 문제는 예측 가능성이 더 없다"며 "문제는 이런 경우가 아주 드물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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