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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태초에 전파가 있었다

중앙일보 2019.09.09 00:06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태희 산업2팀 기자

박태희 산업2팀 기자

태초에 있었던 건 말씀 만이 아니다. 통신 전문가들은 ‘태초에 전파(電波)가 있었다’고 말한다. 우주 공간이나 물체 주변에 흐르는 전하(電荷)가 자기장과 만나 물결치듯 파장을 만들어 퍼져나가는 현상이 천지 창조와 동시에 시작됐다는 의미다.
 
전파가 빛과 같은 속도로 이동하고, 전파마다 진동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통신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는 이 산업에서 문자 그대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선진국으로 꼽힌다. 통신 1등 국가에서 누리는 통신 복지는 외국에서 지하철을 타보면 절감한다. 시속 70~80㎞ 달리는 지하철에서 음성통화는 물론 데이터 전송, 동영상 감상이 원활한 곳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런던 지하철에선 아예 무선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한국과 세계 최초 5G 개통을 다툰 통신강국 미국도 뉴욕 지하철에서 3G·4G 신호를 잡으려면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런 한국도 아직 완벽히 구축 못한 분야가 있다. 지하철 와이파이다. 3G·LTE 같은 데이터 통신망이 아니라 와이파이 만으로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끊김 없이 쓰는 건 아직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투자비도 많이 든다.
 
주요 주파수와 활용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주요 주파수와 활용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지하철 와이파이가 가능하려면 지하철 터널을 따라 촘촘히 와이파이 기기가 설치돼야 한다. 문제는 전파에는 직진의 성질이 있는데 지하철 터널은 구불구불 이어진다는 점이다. 터널 기둥이나 벽에 부착된 와이파이 기기가 쏜 전파가 터널을 따라 가다 금세 벽에 부딪힌다. 통신 전문가들은 “지하철 터널엔 평균 100~150m 간격으로 와이파이 기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촘촘히 기기를 설치한다고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는 것도 아니다. 접속 망을 끊임 없이 새로 잡아야해 ‘로딩 중’ 창이 뜨기 일쑤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모두 공공 와이파이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됐다. 여기엔 지하철·버스 와이파이도 포함된다. 공약이 원활히 이행되면 한국은 물론 세계 통신사(史) 한페이지가 새로 쓰일 큰 작업이다.  
 
이 사업이 출발부터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이른바 ‘조국 펀드’와 그 운용사인 코링크PE가 투자한 회사가 서울 지하철 공공 와이파이 사업권을 통신사업자 자격조차 없는 상태에서 따냈다가 자격을 상실했다. 이 회사의 자회사는 서울 버스 와이파이 사업도 따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전하는 그 서적에는 죄에는 값이 따른다는 말씀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박태희 산업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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