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영기의 시시각각] 윤석열 검찰, 죄 있는 곳에 갔을 뿐

중앙일보 2019.09.09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현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은 이 나라가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자산을 임기의 반도 지나기 전에 철저히 붕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집권당 사람들은 이제는 조사한 사람조차 겸연쩍어할 여론조사나 드루킹처럼 집단 조작된 댓글을 들이대며 엊그제 자기들이 했던 말을 뒤집고 있다. 그들은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때 “권력에 굽힘 없는 강력한 원칙주의자로 국민의 신망을 받아왔고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큰 믿음을 줬다”고 찬양했다. 그러더니 지금은 “서초동 검찰이 여의도까지 왔다” “미쳐 날뛰는 늑대”라고 저주한다. 검찰이 죄가 있는 청와대 권력자나 국회의원을 수사해 처벌받게 하는 일은 고유한 업무 영역이다. 검찰이 여의도로 가든, 청와대가 있는 효자동으로 가든 문제삼을 바가 못된다. 죄가 있는 곳에 검사는 가는 것이다.
 

조국 무너져도 대통령 안 무너져
이 정권 큰 잘못은 신뢰자본 파괴
심리적 내전상태, 국가 비극 초래

특별히 이 정권은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두 명의 대통령과 한 명의 대법원장, 무수한 재벌들의 범죄 혐의를 낱낱이 까서 법의 심판대에 올렸다. 잔인한 정의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이뤄낸 그들의 최대 업적이 적폐청산이었다. 적폐수사의 대상이 단지 과거 정권이나 야당 사람들에게서 대통령의 비서 출신 한 명으로 옮겨갔다는 이유로 저토록 언행이 표변하는가에 신뢰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 정권의 탄생 때 정의의 필봉을 휘둘렀던 한겨레신문사의 기자 수십 명이 “조국을 비판하는 칼럼이 일방적으로 삭제됐다. 조국에 관한 의혹들에 침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민주당 기관지라는 오명을 종종 들었다”며 ‘한겨레가 부끄럽다’는 성명서를 냈을까. 한겨레신문 기자들의 외침은 권력에 독립적이어야 할 언론 본연의 사명을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권의 조국 감싸기가 얼마나 도를 넘었는지 방증하는 사례라 할 수도 있겠다.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당사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이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윤 총장은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살아있는 권력에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고 한 게 45일 전이었다. 그런 정권이 윤석열이 지휘하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부정하고 자기 편이라며 기어이 조국씨를 법무장관에 임명한다면 정직을 가르치는 하늘의 도는 과연 있는 것인가.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검찰을 뒤통수치는 언행불일치 아닌가. 대통령의 언행불일치는 국가의 언행불일치로 인식된다. 국가원수의 신뢰 파괴가 국격의 저하로 이어짐은 자명하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조국씨가 검찰 개혁의 적임자이기에 약간의 하자가 있어도 국민께서 이해해 달라고. ‘조국이 무너지면 문재인도 무너진다’는 거짓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빼놓고 상식 있는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게 있다. 검찰 개혁은 국회에서 입법조치로 하는 것이다. 사법부가 판결로 검찰 권력의 비대함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한 개혁이다. 이에 비하면 법무부 장관이 할 수 있는 검찰 개혁은 실무적 차원일 뿐이다. 행정부가 검찰을 개혁한다 해도 국민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범죄 혐의를 간직한 채 법무장관에 오른 조국이 어떤 개혁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이 기대하고 조국이 실행하겠다는 검찰 개혁이 검사 인사권을 쥐고 흔들어 정권 입맛대로, 자기들 편의대로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겠다는 구상이라면 국민은 두려움에 휩싸이고 나라의 신뢰 체계가 깨지는 건 불 보듯 환하다.
 
조국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믿음과 이 나라가 성립해 쌓은 신뢰자산만큼 귀하지 않을 것이다. 조국 개인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문 대통령이 심리적 내란 상태에 빠진 국가를 회복하기 위해 결단하시길 간구한다. 조국을 버린다고 대통령을 버릴 국민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읍참마속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안도할 것이다. 더 이상 전임 대통령의 비극을 되풀이할 순 없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