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하경 칼럼] 문재인 대통령은 왜 ‘조국 내전’을 방치하는가

중앙일보 2019.09.09 00:04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대한민국이 두 쪽으로 갈려졌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내전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조국은 이 정부의 존재 이유인 평등·공정·정의의 깃발을 흔들어 온 진보의 스타였다. 하지만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가 비판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신자유주의 적폐를  오직 자신을 위해 예외적으로 승인했다. 실력주의로 포장한 현대판 카스트제도를 향유한 강남좌파의 위선과 언행불일치가 민심을 분노하게 했다.
 

살아 있는 권력 칼대라고 하더니
권력이 총동원돼 말리고 나서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명하란 뜻
임명 철회하면 국민 재신임할 것

1993년 김영삼 정부의 박희태 초대 법무장관은 딸의 대학 입학이 위법도 아닌 편법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열흘 만에 사표를 던졌다. 지금까지 조국에게 쏟아진 불법·편법 의혹은 박희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유독 그에게 집중된 행운이 우연의 결과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조국은 한 달째 버티고 있고,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국민 통합의 책무가 있는 대통령이 전쟁 같은 증오의 대결을 수습하지 않는다. 주권자인 국민은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다.
 
무수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조국 인사 청문회는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 말의 성찬으로 끝났다. 페날티킥을 얻고도 골을 넣지 못한 무능한 야당은 비난 여론에 몸살을 앓고 있다. 국민들이 믿을 건 검찰뿐이다. 검찰은 청문회가 열리기 전 수십 곳을 압수수색했고,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조국의 부인을 전격 기소했다.
 
청와대와 여권은 “검찰 적폐” “내란 음모 수준” “미쳐 날뛰는 늑대” “이기주의에 기반한 칼춤”이라며 공격했다 . 문 대통령이 한 달 전 칼잡이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도 칼을 대라고 주문한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검찰의 조국 수사에 여권이 펄펄 뛰는 것은 대통령에게 항명하라고 사주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누가 미쳐 날뛰는 늑대인가.
 
여러 경로로 확인한 윤석열 검찰의 상황 인식을 정리하면 이렇다. “박근혜 정부든, 문재인 정부에서든 공직자의 농단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검찰과 정권이 살 수 있다. 만일 최순실·정유라 사건을 지금처럼 검찰이 조기에 정리하고 최순실을 쳐냈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숨기려다 저 꼴이 난 것이다. 검찰이 예방주사를 놓고 있는데 적폐로 몰고 있다. 어이가 없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검찰은 대통령의 언명대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데 권력은 아직도 주구(走狗)를 원한다. 전설의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는 30년 전 피끓는 젊은 검사 시절 출입기자인 필자에게 “사건 수사를 하면 반드시 피의자가 청와대와 선이 닿는 인물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공들여 수사 해 놓으면 권력자에게 손을 써서 방해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대의 서글픈 풍경이었다.
 
홍준표는 옷 벗을 각오로 상부의 압력에 맞서 연거푸 거악(巨惡)을 잡아들여 영웅이 됐지만 , 이건 기적 같은 예외였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180도 달라졌다. 검찰총장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공식 면허증을 받았고, 그 잉크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이걸 회수하겠다고 검찰에 눈을 부라리고 총질하는 건 대통령의 언어를 허언(虛言)으로 만들겠다는 하극상이다.
 
느닷없이 적폐로 몰린 조국 수사 검사들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다. 박상기 법무장관이 압수수색을 사전에 보고 받지 못해 윤석열 총장에게 전화해 “다음에는 미리 귀띔해 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과거 정권의 청와대는 수시로 검찰을 간섭했다. 오죽하면 검찰총장이 화장실에 갈 때도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었겠는가. 지금은 어떠한가. 진영의 입맛에 따라 가짜뉴스가 생산·유통되는 혼돈의 시대에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체를 규명하려는 검찰은 국민의 유일한 희망이다.
 
믿었던 모든 가치를 송두리째 전복시킨 조국 스캔들로 국민은 절망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방치한 박근혜를 몰아내고 ‘정의의 아이콘’ 문재인을 선택했는데 권력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최순실 딸 정유라는 말 타서 금메달 받고 대학 갔는데 조국 딸은 무얼 하고 특권을 누렸는가”라는 20대의 질문에 586세력은 할 말을 못 찾고 쩔쩔맨다. 이런데도 “조국을 지켜야 우리가 산다”는 진영논리로 검찰을 적폐 세력으로 모는 것은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궤변과 요설(妖說)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참모들의 입을 닫아야 한다. 박근혜는 최순실을 지키려다 중도와 합리적 보수를 잃고 탄핵의 나락에 떨어졌다. 문 대통령이 무리해서 조국을 보호한다면 중도와 합리적 진보를 잃을 것이다. 두 번 연속 상처받은 민심을 어느 누가 달래줄 수  있는가. 소수 세력으로 전락한 한 줌의 진보 진영이 지켜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해 임명을 철회하고, 철저한 수사를 요청해야 한다. 이런 회복력(resilience)을 보여주면 국민은 대통령을 재신임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조국을 살리고 모든 것을 잃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이하경 주필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