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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 협상 나와라” 한·일 핵무장론 꺼냈다

중앙일보 2019.09.09 00:04 종합 1면 지면보기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일 핵무장론’을 거론하며 북한에 협상 복귀를 촉구했다. 비건 대표는 6일(현지시간) 미시간대 연설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한국과 일본이 어느 순간 자체적인 핵 능력을 재고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우리가 오늘은 북한의 핵무기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만약 이런 노력이 실패한다면 내일은 아시아 전역에 퍼진 핵 확산이란 도전에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같이 거론했다. 비건 대표는 “아시아 국가들이 핵을 개발할 기술과 능력이 있었음에도 핵보유가 더 많은 위험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포함된 핵 확장 억지 체제에 편입했던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비건 “북·미 비핵화 협상 실패 땐
아시아 핵무장 목소리 나올 수도”

비핵화와 연계, 극히 민감한 사안
국내 소식통은 “개인적 구상” 진화
폼페이오 “북핵 합의 땐 안전보장”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한·일 핵무장 자체를 금기시하는 미국에서 현직 관리가 이를 공개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비건 대표가 북한의 거부로 핵 협상이 실패할 경우 한·일 핵무장으로 갈 수도 있다는 북한판 ‘최악의 시나리오’를 거론해 압박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중국을 향해 북한 핵 포기를 이끌지 못하면 동북아 핵무장 도미노로 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 정부는 한·일 핵개발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건 대표의 말은 중국에 대한 경고”라고 밝혔다.
  
비건, 주한미군 재검토까지 거론…트럼프 속내 드러나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 둘째)이 7일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장병의 송환을 지켜보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언론을 통해 ’모든 나라는 스스로를 방어할 주권을 갖는다“며 비핵화 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 둘째)이 7일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장병의 송환을 지켜보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언론을 통해 ’모든 나라는 스스로를 방어할 주권을 갖는다“며 비핵화 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하지만 비건 대표가 핵무장을 공개 거론했다는 점에서 잠잠했던 국내의 핵무장론을 다시 자극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비건 대표는 이날 “긴장이 완화되면 우리 군대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1년 내내 훈련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주한미군 주둔과 맞교환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의에 “그 문제와는 떨어져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주둔 문제는 모든 문제에서 진전이 있을 때 사용 가능한 전략적 재검토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하면서다. 이는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주한미군 주둔과 비핵화를 연계했다는 점에서 극히 민감한 발언이다. 국내 외교 소식통은 “주한미군 관련 언급은 한국은 물론 미국 정부 내에서도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보인다”며 “협상 대표로서 개인적인 구상을 밝힌 것”이라고 진화했다.
 
한·미 정부는 공식적으론 ‘주한미군 주둔은 동맹의 문제로 비핵화와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비건 대표의 발언은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향후 주한미군을 이에 대한 맞교환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 내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주한미군이 참여하는 한·미 연합훈련을 ‘도발적’ ‘돈 낭비’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비건. [연합뉴스]

비건. [연합뉴스]

같은 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역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느 국가든 스스로 방어할 주권적 권리가 있다”며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우리는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북한이 믿는 바와 달리 북한의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미국 및 세계와 비핵화에 대해 합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정권 교체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 자위권 인정’을 놓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개발은 문제삼지 않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대표의 이날 언급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검토하는 대북 상응조치가 ‘경제제재→안전보장’으로 이동했음을 뜻한다. 동시에 미국이 ‘압박과 달래기’로 북한을 실무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블룸버그통신은 두 사람의 발언에 대해 “수개월간의 노력에도 비핵화 협상이 멈췄다는 것을 미국 정부가 시인한 셈”이라고 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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