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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틀려야 귀성길 뚫린다, 3000만과 심리전 펴는 이 남자

중앙일보 2019.09.09 00:04 종합 14면 지면보기
지난 2월 설 연휴에 귀성 차량이 경부고속도로에서 정체를 빚고 있다. 도로공사는 올 추석 연휴가 4일로 짧아 곳곳이 막힐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설 연휴에 귀성 차량이 경부고속도로에서 정체를 빚고 있다. 도로공사는 올 추석 연휴가 4일로 짧아 곳곳이 막힐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뉴스]

이번 추석 때 귀성길에 오르는 당신. TV·라디오를 틀거나, 스마트폰·인터넷에 접속하거나, 내비게이션을 보거나, 그도 아니면 고속도로 전광판에서라도 ‘교통 정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서 흘러나올 메시지는 둘 중 하나.
 

남궁성 도로공사 교통예보관
“차량 흐름은 사람 마음의 흐름
특정시간대 특정 길 쏠림 막으려
운전자 판단 바꾸는 역할하죠”
CCTV·헬기·드론 등서 정보 수집

① 오후 O시는 정체가 극심할 예정이니 피하는 게 좋습니다.
 
② 오후 O시 이후 정체가 점차 풀리면서 O시께 해소될 예정입니다.
 
같은 시간에 대한 교통 정보더라도 표현은 조금 다르다. 둘의 차이는 뭘까. ①은 정체 시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의도다. ‘제발 다른 시간에 움직여달라’란 뜻이 담겼다. 그래서 이동 시간대에 따라 정체 상황 차이가 큰 연휴 전날 이런 메시지가 나올 확률이 높다. 반면 ②는 도로가 종일 막힐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에 나온다. 따라서 다른 시간에 출발해도 어차피 막힌다. 그럴 때는 담백하게 현상만 전한다. 주로 추석 당일에 이런 메시지가 나온다.
  
2007년 추석 서울~합천 16시간이 계기
 
남궁성 한국도로공사 교통예보관이 교통센터 상황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도로공사]

남궁성 한국도로공사 교통예보관이 교통센터 상황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도로공사]

미묘한 차이의 해석이 담긴 교통 예보를 전달하는 ‘사령탑’이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다. CCTV와 요금소, 헬리콥터·드론, 도로공사 인력이 전국 도로 곳곳에서 수집한 실시간 교통 정보를 집계한 뒤 분석해서 언론 매체와 각종 전광판을 통해 알린다. 센터는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도 교통량 설문·분석에 한창이다. 사령탑을 이끄는 남궁성(53) 교통예보관은 “차량 흐름은 단순히 차량이 움직이는 흐름이 아니라 사람 마음의 흐름”이라며 “특정 시간에 특정 도로에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의 판단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도로공사가 교통 예보를 시작한 건 2008년. 직전인 2007년 추석 때 서울에서 경남 합천까지 16시간이 걸릴 정도로 극심한 정체를 겪은 뒤였다. 공사는 교통 정보를 전문적으로 분석해서 알릴 필요를 느꼈다. 도로교통연구원에서 교통 정보를 분석해 온 남궁 박사가 소집됐다. 연휴 내내 예보관 5~6명이 주·야간 근무조로 나눠 매시간 전국 도로 교통 상황을 파악해 언론에 브리핑하는 일이었다. 그는 “사고라든지 기상 악화같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즉시 예보를 수정해야 해 24시간 동안 긴장 속에 일한다”고 말했다.
 
교통 ‘예보(forecast)’는 세계적으로도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흔히 비교되는 기상 예보는 날씨에 대비하게 할 뿐 자연의 힘을 거슬러 강우량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교통 예보는 사람들이 이를 듣고 대비하면서 실제 교통량을 바꿀 수 있다. 기상 예보는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교통예보는 미래를 바꿔 틀리고자 애쓴다. 역설적으로 ‘잘 틀리는’ 기술(분산을 통해 미래를 바꾸는)이 교통 예보의 핵심이다.
 
그는 “좁은 땅에서 3000만 명이 동시에 움직이는 한국 명절의 특성과 발달한 정보기술(IT) 기술이 결합해 세계적으로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교통 예보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교통 예보의 실패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정보에 대한 ‘과도한 반응’. 예를 들어 오후 2시 가장 막힌다는 예보에 반응해 모든 사람이 그 시간을 피하면 다른 시간대가 정체로 몸살을 앓는다. 또 다른 하나는 정보에 대한 운전자의 ‘무반응’이다. 운전자가 예보를 무시했을 때(아무도 따르지 않았을 때) 예보 정확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어찌 보면 교통 예보가 성공하는 경우는 역설적이다. 그는 “예보를 들은 10명 중 2~3명 정도가 마음을 바꿨을 때 교통량 분산 효과가 최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실패와 성공의 드라마가 담긴 가장 인상 깊은 예보는 2009년 설 때였다고 한다.
 
“기록적인 폭설이 닥쳤어요. 경부선 서울 요금소에서 안성 휴게소까지만 6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우회도 시켜보고, 출발하지 말라고 예보도 하고 온갖 메시지를 던졌지만, 고속도로 진입량이 줄지 않았습니다. 결국 상의 끝에 ‘예보를 중단한다’는 메시지를 냈습니다. 신기한 건 그때부터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고속도로 진입을 포기했고, 정체가 눈 녹듯 풀렸습니다.”
  
"올 귀성길, 연휴 전날 오후 가장 덜 막혀”
 
시행착오 끝에 예보는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도 촉매가 됐다. 그는 “과거엔 교통 정보만 수집했다면 최근엔 특정인의 거주지는 물론, 그 사람의 태어난 곳과 현재 사는 데이터까지 분석해 차량 흐름을 예측한다”며 “소프트웨어(데이터)와 하드웨어(각종 정보수집 장치)가 진화하면서 극심한 정체가 과거 대비 상당히 줄었다”고 설명했다.
 
휴일이 4일에 불과해 ‘짧은 연휴’로 꼽히는 올해 추석 귀성길은 어떨까. 그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더라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 교통 수요는 줄지 않았다”며 “보통 연휴가 짧을수록 정체가 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년에 비춰봤을 때 연휴 시작 전날 오후에 귀성길에 오르는 게 가장 낫다”며 “서울로 돌아올 땐 명절 당일을 피하면 좋은데 고향에 1박 2일 머무는 경우가 많아 교통량을 분산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남들을 챙기면서도, 정작 그에게 추석은 없다. 그는 2008년 이후 가족과 명절을 함께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명절이면 서울에서 동생 차에 아내와 애들을 태워 본가(청주)로 내려보내곤 했다”며 “경부선 서울 톨게이트 지날 때면 일하다 잠깐 나와 인사하곤 했는데 지금도 짠하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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