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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치욕 잊지말자…中 124년전 침몰한 군함 인양한다

중앙일보 2019.09.08 07:00

아시아 최강 군함 서해에서 자폭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앞 바다에 복원된 정원함의 모습.[사진 위키피디아]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앞 바다에 복원된 정원함의 모습.[사진 위키피디아]

#1891년 일본 도쿄 앞바다에 두 척의 군함이 나타났다. 청나라 북양함대 소속 기함(旗艦·지휘함) 정원(定遠)함과, 같은 급의 진원(鎭遠)함이다. 러시아 니콜라이 황태자가 일본을 방문하자 청나라 실세였던 북양대신 이홍장이 주력함인 정원과 진원으로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5년 전 나가사키에 무단으로 상륙해 마찰을 일으킨 데 이은 2번째 일본 방문이었다. 이번엔 무단이 아닌 공식 방문이었지만, 정원함을 본 일본 정부는 경악했다. 독일에서 건조한 정원함은 당시로선 아시아 최대인 7670t의 배수량을 자랑하는 초대형 철갑함이었다.
청일전쟁 당시 청군을 참수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그린 당시 그림.[중앙포토]

청일전쟁 당시 청군을 참수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그린 당시 그림.[중앙포토]

#4년 뒤인 1895년 2월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앞바다 류궁다오(劉公島). 청나라 북양함대 사령부가 자리한 이곳에서 정원함은 좌초한다. 일본 해군의 어뢰에 맞았다. 정원함 함장 유보섬(劉步蟾)은 배를 서해에서 스스로 침몰시킨다. 일본군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쟁에 승리한 일본군은 정원함의 일부를 떼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같은 급인 진원함은 자국 군함으로 편입해 러일전쟁 등에 참전시켰다.
 
#2019년 9월 2일 류궁다오. 중국 국가문물국과 산둥성 수중고고연구센터 소속 학자들이 모였다. 침몰한 정원함의 위치를 찾았다는 사실을 발표하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지난 7~8월부터 침몰 추정해역에서 유인 잠수정 2대를 투입해 조사에 나서 함선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발견 당시 정원함의 선체는 심하게 훼손돼있었고, 함미 부분은 거의 깨져있었다고 밝혔다. 포격으로 인한 손상으로 추정된다.

청일전쟁 발발 125년 만에 지휘함 찾아

지난 2일 중국 국가문물국이 발견한 정원함의 유물 일부.[신화=연합뉴스]

지난 2일 중국 국가문물국이 발견한 정원함의 유물 일부.[신화=연합뉴스]

중국이 치욕의 역사를 들어 올리고 있다. 청일전쟁 발발 125년 만이다.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연구팀은 정원함 선체에서 철기·목재·탄피·동전 등 150여점의 유물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2017~2018년 정원함의 침몰 위치를 파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땅속에 묻힌 선체 일부를 드러내기 위해 두껍게 쌓인 모래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장보(姜波) 국가문물국 수중문화유산 보호센터 수중고고연구소 소장은 “중국 해군 및 전함의 역사와 갑오전쟁(청일전쟁)을 연구하는 데 있어 역사·과학적 가치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굴욕의 역사에 주목하는 중국 

류궁다오의 청일전쟁 기념관 입구. 중국은 청일전쟁을 '갑오(甲午)전쟁'이라 부른다. 전쟁이 발발한 1894년이 갑오년이었기에 붙혀진 이름이다. [사진 차이나랩]

류궁다오의 청일전쟁 기념관 입구. 중국은 청일전쟁을 '갑오(甲午)전쟁'이라 부른다. 전쟁이 발발한 1894년이 갑오년이었기에 붙혀진 이름이다. [사진 차이나랩]

중국에서 갑오전쟁 또는 1차 중일전쟁이라 불리는 청일전쟁은 중국 근현대사에서 큰 굴욕 중 하나다. 당시 ‘아시아 최강’으로 자부하던 북양함대는 일본군에 연전연패했다. 군인들의 사기 저하와 훈련 부족, 부패로 인한 불량 포탄 공급과 전술 부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북양함대 사령관 정여창(丁汝昌) 제독은 섬에 고립된 채 원병도 기대할 수 없자 자결했다. 전쟁에 패배한 청나라는 1895년 4월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했다. 랴오둥 반도, 대만,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을 일본에 할양해야 했다.

중국 류궁다오에 있는 갑오전쟁 박물관에는 당시 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재연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JTBC캡처]

중국 류궁다오에 있는 갑오전쟁 박물관에는 당시 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재연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JTBC캡처]

중국 정부는 당초 청일전쟁에 주목하지 않았다. 태도가 바뀐 것은 30여년 전이다. 패배 속에서 교훈을 찾자는 생각으로 바뀐다. 중국 정부는 1985년 류궁다오에 ‘갑오전쟁 박물관’을 세웠다. 현재 박물관 내부에는 ‘갑오전쟁 패전이라는 굴욕적인 역사는 낙후되면 곧 당하게 된다는 도리를 다시 입증했다’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 주석의 친필을 새긴 동판이 있다. 중국 정부는 96년 국가문물국 산하에 청일전쟁 당시 침몰한 군함의 인양을 추진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침몰당한 함정의 위치를 추적해왔다. 2014년에는 북양함대 소속 치원(致遠)함을 랴오닝성 단둥 앞바다에서 발견했다.

해양강국의 꿈 新북양함대로 이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해상 열병식에서 인민해방군 해군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해상 열병식에서 인민해방군 해군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비록 일본군에 패배하긴 했지만 북양함대는 현대 중국 해군의 기원이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서양기술을 받아들여 국력을 강화하자는 양무운동을 벌였다. 북양함대의 군함은 이 과정에서 건조된 중국 최초의 근대식 군함이다. 중국 정부는 현재 해양 강국을 꿈꾸며 해군 전력 증강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 해군은 랴오닝호나 산둥호 같은 항공모함을 연이어 건조했고 2022년까지 3번째 항공모함을 추가로 건조해 실전 배치하려 한다. 비운의 역사를 넘어서 '신(新) 북양함대'를 건설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1884년 독일에서 촬영된 정원함의 모습.[사진 위키피디아]

1884년 독일에서 촬영된 정원함의 모습.[사진 위키피디아]

중국 정부가 청일전쟁 당시 침몰한 군함, 특히 기함이었던 정원함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정부는 2004년 웨이하이 앞바다에 수십억 원을 들여 정원함을 복원했다. 지하2층, 지상3층, 5층 규모의 대형박물관으로 개조해 전시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지난해 6월 산둥성 류궁다오를 방문하고 있다. 시 주석은 청일전쟁 패전 유적지 등을 돌아보며 경각심을 촉구하고 해양강국 건설을 재차 강조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지난해 6월 산둥성 류궁다오를 방문하고 있다. 시 주석은 청일전쟁 패전 유적지 등을 돌아보며 경각심을 촉구하고 해양강국 건설을 재차 강조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6월 류궁다오의 과거 북양함대 주둔지와 갑오전쟁 박물관을 방문했다. 집권 이후 처음이었다. 시 주석은 류궁다오에서 “이곳에 한번 와서 느끼고 배우고 싶었다. 항상 경종을 울리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13억 중국인이 분발해 강성해질 수 있다”며 “역사의 교훈을 새겨 중국을 해양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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