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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초라한 말년…화려한 무대로 짚다

중앙선데이 2019.09.07 00:20 652호 19면 지면보기

[아티스트라운지] 대형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연출가 김광보

‘극장 앞 독립군’의 연출을 맡은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신인섭 기자

‘극장 앞 독립군’의 연출을 맡은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신인섭 기자

1920년 6월 7일,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에 대승을 거뒀다. ‘독립군의 첫 승리’인 봉오동 전투를 이끈 사람은 홍범도 장군이다.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내년 봉오동 전투 승전 100주년을 기념해 세종문화회관이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이유다. 세종문화회관 41년 역사상 최초로 시도하는 산하 예술단 통합 공연 ‘극장 앞 독립군’(20·21일)이다.
 

세종문화회관 41년 만에 처음으로
산하 7개 예술단 300여 명 출연

카자흐 고려극장 수위로 노년 보낸
‘봉오동 영웅’ 인간적 면모 세밀 묘사

스타 통한 화제몰이 유혹 떨치고
무거운 이야기 재미있게 풀어

300여 명의 출연진이 나서는 대규모 음악극이지만 스펙터클한 영웅담은 아니다. 대본을 맡은 고연옥 작가는 1940년대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에서 수위로 쓸쓸한 말년을 보낸 ‘인간 홍범도’의 이야기를 꺼냈다. 실제로 고려극장에서 ‘날으는 홍범도’란 연극을 공연했던 실화를 토대로 영웅이 노년이 되어 자기 삶을 돌아보는 메타극 형식이다.
 
대작의 연출을 맡은 서울시극단 김광보(55) 예술감독은 7개 예술단을 아우른 연습을 지휘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배우만 70~80명인데, 그 가운데를 뚫고 들어가야 하니 에너지 소모가 크네요. 각 단체별 스케줄을 피해 작업하는 것도 쉽지 않죠. 초반엔 단원들이 ‘이걸 왜 해야되나’ 라고 의미를 파악 못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나 단원들이나 의욕충만이다. 연습을 하면서 의미와 재미를 깨달은 것이다. “7월 쇼케이스 때는 땡볕에서 리허설을 하는데도 축제 분위기였죠. 타 단체 분량이 끝날 때마다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재미있는 현상이더군요. 그걸 계기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죠. 지금은 이구동성 연습이 재밌다고 합니다. 대본 중에도 그런 얘기가 나와요. ‘날으는 홍범도’ 공연을 반대하는 극장장에게 연출가가 ‘하다보니 하고 싶어졌다’고 대꾸하죠. 지금 우리 연습과정이 그래요.”
  
의병도 욕망 제대로 통제 못 하는 인간일 뿐
 
지난 7월 말 세종문화회관 대계단에서 개최한 ‘극장 앞 독립군’ 쇼케이스. [사진 세종문화회관]

지난 7월 말 세종문화회관 대계단에서 개최한 ‘극장 앞 독립군’ 쇼케이스. [사진 세종문화회관]

의문은 있다. 국내 최대 규모 대극장에서 7개 예술단체가 뭉쳐 민족 영웅의 초라한 말년을 그리는 이유가 뭘까. 실제 홍범도 장군이 ‘날으는 홍범도’ 공연을 보며 한 말이 딱 두 마디였다고 한다. ‘나를 너무 추켜세웠다’ ‘부끄럽다’.  
 
“평생을 자신과 싸워온 인물이거든요. 머슴살이를 하다가 포수를 하게 됐고, 그러다 독립운동가가 됐는데, 말년엔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죠. 화려한 영웅이 아니라 평생 일하며 살아온 모습을 비추고 싶었던 거예요.”
 
일제 강점기를 배경 삼은 흔한 문화 콘텐트처럼 소위 ‘국뽕’은 아니다. 하지만 독립군 이야기에서 민족주의를 아예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도 민족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봅니다. 어제도 역사박물관에서 쇼케이스를 30분 동안 했는데, 내가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대단히 감동적이더군요(웃음). 순간적으로 왜 이럴까 생각하니, 지금 시대가 이런 시대구나 싶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인간 홍범도’의 모습입니다.”
 
‘인간 홍범도’를 들여다보는 도구는 ‘극장’이다. ‘극장 앞 독립군’이라는 다소 심심해 보이는 제목을 고집한 것도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극장 앞’이라고 하면 아웃사이더인 것 같지 않나요. 홍범도 스스로 말했듯이 주류에서 벗어난 인물이거든요. 당시 고려인들이 척박한 상황에서도 공연을 왜 했을까, 그런 의미를 찾아보는 게 이번 작품의 의의기도 하죠.”
 
고연옥 작가의 대본은 매우 사실적이다. 독립군이라고 정의롭게만 묘사되지도 않는다. 의병이 마을 여자를 희롱하고, 돈 몇 푼에 정보를 넘기는 비루한 민낯도 드러낸다. “요즘 입에 담기 쉽지 않은 얘기인데, 인간이 뭔가요. 그네들도 인간인 거고, 인간으로서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이 담겨진 겁니다. 너무 민감한 문제라 그 정도밖에 얘기 못하겠네요.(웃음)”
 
김광보의 작품들은 셰익스피어든 한국 근대 작가든, 그 어떤 희곡을 요리하든 늘 지금의 시대상을 정확하게 투영한다. 마치 세월호 사태를 초래한 적폐를 꼬집는 듯했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사회의 기둥들’(2014), 2017년 5월 장미대선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던 ‘왕위주장자들’(2017) 등, 사건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기획한 작품들이 개막 즈음의 사회 현상과 절묘하게 맞물리곤 한다. “원론적인 의미에서 연극은 어떤 기능을 해야되는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죠. 고전 안에도 숨어있는 의미망이 있는데, 그걸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늘 촉을 세우고 있어요. 그렇게 작품을 선택하고 나면 우연찮게 여러 가지 사회적인 현상들이 연결되더군요. 이번 작품도 폐쇄 직전의 고려극장이 패망한 조선과 맞물린 느낌이잖아요. 경제적 압박이 가해져 위태로운 지금의 시국상황과도 비슷하지 않나요.”
 
‘극장 앞 독립군’에는 스타가 없다. 국공립단체의 기획공연들은 통상 외부에서 인지도 있는 스타 플레이어 한두 명을 섭외해 화제몰이를 하지만, 이번엔 세종문화회관의 브랜드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유혹은 없지 않았지만 견뎌냈죠. 7개 단체가 첫 통합 공연을 하는 마당이니 100% 자체적으로 소화하자, 300명 전 단원이 다 나와야 한다는 게 제 소신이자 고집입니다. 각 단체별 배역도 균등하게 나눴습니다. 음악극이다 보니 합창단원들도 배우로 기용했는데, 오페라를 해본 단원들이라 연기도 곧잘 하더군요.”
  
“막 올라가면 압도 당하는 느낌 받을 것”
 
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

김광보는 무대세트를 최대한 절제하고 배우 중심으로 무대를 꾸리는 ‘미니멀리즘’의 대가지만, 이번엔 1785㎡ 규모의 거대한 무대를 채우기 위해 미니멀리즘을 과감히 포기했다. “이번엔 되게 화려합니다. 바닥과 공중에 LED 영상도 많이 차지하고, 국악관현악단과 유스오케스트라를 무대 위로 올리고 가운데 합창단이 자리할 겁니다. 막이 열리면 관객이 압도적인 느낌을 받을 거예요.”
 
사실 김광보 작품의 진짜 키워드는 ‘재미’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코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존재감이 없던 서울시극단이 2015년 그가 부임한 이후 위상이 확 달라진 것도, 예술성과 대중성을 다 잡는 그의 작품들로 정기 공연을 꽉 채운 덕이다. “제가 부임할 때 서울시극단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많았어요. 대체 어떻게 변화시킬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연극 열심히 만들겠다고만 대답했었죠. 정공법으로 부딪치고 싶었던 거예요. 연극을 한다는 행위는 결국 연극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아닐까요. 요즘 연극은 그런 게 많이 퇴색된 것도 사실이죠. 지금 대학로 연극 풍토가 예사롭지 않아요. 오랜만에 대학로에 가보니 상업극이 다 장악해 버려 순수연극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더군요.”
 
연극계 침체된 분위기에서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서울시극단의 차세대 양성 프로젝트인 ‘창작플랫폼’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착을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국공립이나 민간에서도 차세대 프로그램이 많이 있는데, 적잖은 분들이 우리 프로그램이 제일 좋다고 하더군요. 1년에 딱 2명만 뽑아서 고연옥 작가와 제가 집중교육을 하니 효율적인 것 같아요. 내년에는 거기서 배출한 희곡을 내가 직접 연출할 겁니다. 내가 벌린 작업이니 스스로 마무리한다는 의미죠.”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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