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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상에 씨앗을 뿌린 농사 여신, 자청비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2019.09.06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41)

'규화보전'의 절대무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래 성이었던 남성을 버리고 여성이 되어가는 내용을 담은 영화 <동방불패>. [중앙포토]

'규화보전'의 절대무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래 성이었던 남성을 버리고 여성이 되어가는 내용을 담은 영화 <동방불패>. [중앙포토]

 
영화〈동방불패〉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일월신교의 최고 교주. ‘규화보전’의 절대 무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래 성이었던 남성을 버리고 여성이 되어간 인물. 동방불패는 본래 〈소오강호〉라는 김용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였는데, 이러한 인물형에는 개인의 전인격적 완성에 성 정체성 확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던 작가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규화보전’의 절대 무공은 ‘여성 되기’보다 ‘남성 버리기’에 초점이 있는 듯하다. 절대 무공을 위해 거세해야 하는 남성이란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확고한 권위와 아집을 뜻하진 않을까. 그것마저 내려놓아야 절대 무공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동방불패처럼 완전히 성별 구분을 없앤 건 아니지만,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 데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는 우리 신화의 인물로 ‘자청비’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남장을 한 채 활약하는 데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되었던 〈뮬란〉과도 비교될 수 있지만, 결국 아버지의 딸로 돌아가는 뮬란에 비해서는 자청비가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한다.
 
자청비는 어느 날 냇가에서 우연히 만난 하늘 옥황 문선왕의 아들, 문곡성 문도령과 함께 거무선생에게 글을 배우게 되었다. 자청비는 남장을 한 채 문도령과 한 방에서 지냈는데, 삼 년쯤 되었을 때 문도령은 배필이 마련되었으니 그만 돌아오라는 옥황의 전갈을 받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진 제주특별자치도청 홈페이지]

[사진 제주특별자치도청 홈페이지]

 
자청비도 따라나서, 삼 년 묵은 때나 씻고 가자며 개울에서 함께 목욕하기를 청한 뒤 비로소 여성인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확인했으나 문도령은 정표로 박씨를 남긴 채 하늘로 돌아가야 했다.
 
자청비의 집에는 정수남이라는 동갑내기 하인이 있었는데 게으르고 탐욕스러웠다. 자청비는 정수남이 자신에게 흑심을 드러내 이놈을 혼내려 죽여버렸다가 환생꽃으로 다시 살려냈다.
 
그러나 자청비의 부모는 이 일로 몹시 화를 내며 자청비를 집에서 쫓아냈다. 하염없이 헤매다 주모할미네에 거처를 정하게 되었는데, 주모할미는 문도령의 혼인식 때 쓸 비단을 짜고 있었다. 자청비가 비단에 자기 이름을 수놓아 보내면서 문도령이 자청비가 있는 곳을 알게 되어 둘은 재회하였다.
 
문도령의 부모는 아무나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며 백탄과 숯불 위에 칼 선 다리를 놓고, 그 다리를 건너오는 이를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문도령의 정혼자는 실패하고 자청비가 성공하여 자청비가 드디어 문도령의 배필이 되었는데, 이때 자청비가 발뒤꿈치를 살짝 베어 피가 나는 바람에 이를 치맛자락으로 쓸어 두니 이것이 월경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자청비는 거무선생의 삼천 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고, 소 아홉 마리를 함부로 먹어버린 정수남의 죄를 벌하기 위해 목숨을 빼앗았고, 정수남의 혼이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해괴한 짓을 하자 그걸 찾아내어 혼을 내준 뒤 환생꽃으로 본디 모습을 찾게 하였다.
 
이런 능력이라면 세상을 구하고도 남을 것이나, 부모에게 자식의 너무 심하게 뛰어난 능력, 게다가 겁도 없이 그걸 마구 휘두르는 태도는 집 밖으로 내쫓아 벌을 주어야 할 무서운 것이 되고야 말았다. 하물며 여자아이가 함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자청비는 어찌 보면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하늘의 시험도 통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이로써 여성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인 월경이 시작되었다는 상징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자청비가 마음껏 자기 능력을 펼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 이가 바로 문도령이었으니, 사랑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자청비가 문도령 때문에 고생하게 되는 내력은 인간 세상에 전쟁이 일어난 연유로 시작된다. 자청비 이야기의 뒷부분을 좀 더 들여다본다.
 
인간 세상에 큰 전쟁이 일어나 혼란스러워지자 하늘나라에 원조를 청하였다. 하늘나라에서는 문도령을 시기하던 이들이 있어, 이들이 문도령을 도원수로 삼아 전쟁터에 내보내려 하였다. 문도령이 이 때문에 걱정하자 자청비는 문도령을 대신하여 도원수로 나섰다. 그리고 문도령에게는 자신이 남장하고 다니던 시절 인연을 맺었던 사라장자의 딸에게 잠시 가 있다가 모월 모일에 돌아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자청비가 난을 평정하고 하늘나라로 돌아온 뒤 약속한 날이 지나도록 문도령은 사라장자의 딸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느라 돌아올 줄을 모르고 있었다. 자청비는 화가 나서 옥황상제에게 청하여 하늘 옥황의 갖은 곡식 종자를 얻어서는 하늘을 떠나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부모님을 만나 인사한 후 정수남을 데리고 세상 농사를 돌보러 나가, 밭도 갈아주고 하늘 곡식 종자를 나누어주어 풍년이 들게 하니, 이로써 자청비는 중세경, 정수남은 하세경이 되었다.
 
그리고 자청비의 남편 문도령이 상세경이 되어 이들이 인간 세상의 농사일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 자청비가 하늘에서 갖은 곡식 종자를 받아올 때 메밀 씨를 깜빡 잊고 안 가져와 뒤에 다시 올라가 받아 오니, 이것이 지금껏 메밀이 다른 곡식보다 늦게 되는 연유이다.
 
<세경본풀이>의 주인공, 자청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신의 욕망과 힘으로 움직였다. [사진 제주특별자치도청 홈페이지]

<세경본풀이>의 주인공, 자청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신의 욕망과 힘으로 움직였다. [사진 제주특별자치도청 홈페이지]

 
이 이야기는 〈세경본풀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 무속신화이다. 우리 무속신화는 이렇게 누군가 신이 된 내력, 인간 세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내력을 풀이한다. 이 이야기에서 자청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신의 욕망과 힘으로 움직였다.
 
문도령에게 실망하였을 때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씨앗을 가지고 내려와 농사를 관장하는데, 남성과 맺은 인연을 이어가는 데 연연하기보다 자신만의 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는 그 자유를 실현할 능력과 기백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고, 꼭 기억하고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여성 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청비야 그렇다 치고, 그렇게 속 썩이고 아무런 역할도 못 했던 문도령이 상세경, 농경을 다스리는 신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신이 되었다는 결말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었는데, 문도령은 하늘 옥황 문선왕의 아들로서 하늘 그 자체를 상징한다는 신화적 해석이 제시된 바 있다. 이 길고도 복잡한 신화 서사를 하늘(문도령)-인간 세상(자청비)-땅(정수남)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자청비(自請妃)라는, 스스로 여인이 되기를 청하였다는 이름의 이 인물은 남성성, 여성성의 틀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과 목표에 충실한 새로운 여성상, 혹은 건강한 여성상을 제시하는 인물로 으뜸이다. 성 역할에 대한 경계가 전혀 없고, 마음에 들면 노력하여 취하였고,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가차 없이 떠날 줄을 알았다.
 
그렇게 떠날 때 그저 대책 없이 도망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헤아리고 다음 할 일을 도모했다. 하늘 옥황에게서 씨앗을 받아와 인간 세상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애초에 자청비가 보였던, 정수남을 죽이고 살리고 할 줄 알았던 능력에서부터 이미 예비되어 있었다.
 
생명을 관장한다는 것만큼 이 세상에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거기에 하늘은 가끔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인간 세상이 어떠하든지 제멋대로 볕도 주었다가 비바람도 주었다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 휘둘려서야 인간이 살 수 있겠는가. 자청비가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문도령을 가차 없이 떠나 인간 세상에 종자를 나누어주고 농사일을 돌봐주었다는 것에는 그러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모성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자청비의 생산성, 여성의 힘

자청비가 농사를 관장하는 신이 된 것은 '출산과 육아' 같은 생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은 아니다.[사진 pixabay]

자청비가 농사를 관장하는 신이 된 것은 '출산과 육아' 같은 생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은 아니다.[사진 pixabay]

 
흔히들 여성성을 이야기할 때 모성 혹은 모성애를 중심에 두곤 한다. 그러면서 또한 대지의 여신, 대모신(大母神)을 떠올리곤 한다. 이때 대지를 여신에 등치 시키는 방식은 ‘생산’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여성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에만 복무하는 기능적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자청비는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했기 때문에 농사를 관장하는 신이 된 것이 아니다.
 
자청비의 생산력, 혹은 생산성이란, 태어나게 하고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죽이기도 하는 데에서 발휘된다. 즉 남성성에 대치되는 여성성으로서가 아니라, 그 구분 자체를 넘나드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신직神職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인간은 본래 양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이 양쪽으로 분리하고 나서 잃어버린 반쪽을 찾으려 헤매고 다닌다고 했다. 지금 세상의 갈등은 분리된 양쪽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무게중심이 쏠려 있었기에 발생하고 강화되어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적 편향을 제거해 버린다고 하여 해결될 수 있을까. 어차피 우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개개인의 개체로서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내 안의 남성성, 내 안의 여성성을 모두 인지 및 인정하고 그것의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이 사회의 남성과 여성을 함께 평등한 개체로 인정하고 그 둘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태도가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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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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